견훤은 자신을 내쫓은 아들을 피해 왕건을 찾았다. 본인이 세운 후백제를 왕건에게 쥐어주고 멸망에 앞장섰다.
이수만은 SM엔터테인먼트를 하이브에게 넘겼다. 자신을 등진 SM 경영진과 카카오, 얼라인 파트너스 3개 진영이 합쳐진 연합군에 대항하기 위해서.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 창업한 SM은 이수만의 프로듀서 인생의 전부였다. 부와 명예를 쥐어준 'SM 제국' 안에서 영원한 선생님으로 군림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썩은 것은 곪아 터지기 마련.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이수만이 SM 가치를 떨어뜨린다며 그의 개인 회사 라이크기획을 문제삼았다. 이수만은 음악 자문 명목으로 연간 100억 원 이상을 챙겼다. 라이크기획이 아니더라도 2092년까지 로열티 명목으로 수백 억을 챙길 수 있는 별건 계약도 있었다.
얼라인은 독립적인 감사가 선임돼야 한다는 주주제안을 했다. 승리의 여신은 얼라인의 편이었다. 이수만과 전혀 관계가 없는 새 감사가 선임되면서 라이크기획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연관이 없는 사업이 정리됐다.
SM은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조기 종료한 뒤 그를 완벽히 배제한 'SM 3.0'을 발표했다. 또 긴급 이사회를 열고 카카오에 유상증자 형태로 1119억 규모의 123만 주를 발행하기로 했다. 증자를 완료하면 카카오가 SM 지분의 9.05%를 확보해 2대 주주가 된다.
이수만이 가진 카드는 많지 않다. 그가 가진 SM엔터테인먼트의 18.45% 지분이 전부. 이마저도 카카오가 2대 주주가 되면 16%대로 희석된다. 이수만의 백기사는 하이브였다. 하이브는 이수만의 지분 중 14.8%를 4228억 원에 인수했다. 이 거래도 하이브는 단숨에 SM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기업결합을 위한 사전 승인이 필요하지 않은 지분 한도가 15%라 14.8%까지만 인수했으나 공개매수 등을 통해 최대 40%의 지분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수만은 2020년부터 자신의 지분을 놓고 저울질을 해왔다. 그가 제시한 지분의 가치는 1조로 알려져있고 이외에도 회사 운영과 프로듀싱 등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CJ와 카카오는 이수만 지분 인수를 포기했으나 얼라인의 등판으로 SM 내부에 균열이 생겼다.
이수만은 자신을 밀어낸 SM 임직원에 배신감을 느끼고 칩거하고 있었다. 그는 우군이 되어주겠다는 하이브의 손을 잡았다. 라이크기획과 SM 간 계약 종료일로부터 3년간 일부 수수료를 받기로 했는데, 하이브와의 합의 과정에서 이를 받지 않기로 했다. 또 개인 차원에서 보유하던 SM 관계사 지분도 하이브에 양도해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하이브는 주당 12만 원에 SM 소액 주주가 보유한 지분 공개매수에도 나선다. 공개 매수를 위한 자금 조달은 이미 마친 상태. SM 경영권 분쟁은 개인을 넘어 기업 차원이 됐다.
SM은 하이브의 이수만 지분 인수에 "모든 적대적 M&A에 반대한다"며 반발했다. 카카오는 SM의 추가 지분 인수 계획은 없다고 밝혔으나 이수만의 가처분 신청(우호 지분 확보를 위한 신주 발행은 위법이라고 주장) 제기, 하이브가 전면에 나선만큼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SM을 삼킨 하이브를 보고 누구는 이수만의 노욕, 누군가는 두 대형 기획사의 시너지를 기대한다고 한다. 하이브의 독점으로 K팝의 다양성이 적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긴박하게 돌아간 이수만의 SM 정벌기. SM엔터테인먼트의 미래는 어떻게 바뀔까.
우빈 텐아시아 기자 bin0604@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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