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 변화 꾀하는 아시아 출신 영화인
보수적인 아카데미에 부는 아시아 바람
정이삭 "미나리가 갈등 봉합하는 계기가 되길"
尹 "아들들 미국서 내가 공격 받을까 걱정"
보수적인 아카데미에 부는 아시아 바람
정이삭 "미나리가 갈등 봉합하는 계기가 되길"
尹 "아들들 미국서 내가 공격 받을까 걱정"
미국사회에서 아시아인 혐오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국계 노인이 길거리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하는 등 미국 사회가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스테이션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아시아인들이 '마이너리티(소수자)'에게 보수적인 것으로 이름 높은 오스카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아시아계 감독 작품인 '미나리'와 '노매드랜드'는 가장 미국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주요 부문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아시아에 뿌리를 둔 이들이 미국 사회의 정서를 가장 잘 담은 작품을 내놓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미나리'의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후보, 미국 이민 2세대인 스티븐 연이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 한국계 미국인인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과 중국계 미국인인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은 작품상과 감독상의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이들은 아시아와 미국에 대한 경험을 모두 갖고 있다. 윤여정은 조영남과 이혼 전까지 결혼생활을 미국에서 보내 영어에 능통하다. 그녀의 두 아들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스티븐 연은 한국에서 태어나 4살 때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 갔다.정이삭 감독은 미국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이민 2세대로, '미나리'는 미국사회에 정착하는 가족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작품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중국에서 태어나 영국과 미국에서 10대 시절을 보냈고 미국에서 정치학, 영화학을 공부했다. 이번에 노미네이트된 영화의 제목처럼 '유목민의 세계'에서 살아온 셈. '노매드랜드'를 포함해 자오 감독의 작품들에서는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마이너리티의 삶의 팍팍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일까. 이들은 미국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발언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정이삭 감독은 영화 전문 매체 데드라인과 인터뷰에서 "'미나리'의 주제 의식이 아시아 커뮤니티를 벗어나 다른 공동체로도 널리 퍼지고 있다는 점이 더욱 기쁘다"며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폭력 행위가 급증한 것에 낙심했지만 '미나리'가 통합을 가져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최근 아들들이 자신의 미국 방문을 염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아들은 오스카 시상식을 위해 미국에 가려는 나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아들은 길거리에서 어머니가 다칠 수 있다고 했다"며 "증오범죄 가해자들은 노인을 노리고 있다. 경호원이 필요하다. 이것(아시안 증오범죄)은 끔찍한 일이다. 아들은 내가 공격 받을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던 봉준호 감독도 아시안 증오범죄 문제에 대해 의견을 냈다. 봉 감독은 얼마 전 미국 채프먼대학의 영화·미디어 예술 칼리지의 온라인 강연에서 "인류의 일원으로서 아시안 증오범죄와 흑인 인권운동(BLM)을 유발한 사회를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창작자들과 영화 제작자들은 이러한 이슈를 다룰 때 더 대담해져야 하고 거기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봉 감독을 올해 아카데미 시상자로 참여한다.
미국사회에서 아시안 혐오가 심화되고 있기에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계 감독들의 작품 수상 여부는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보수적'이라고 비판 받아왔던 아카데미와 '다양성의 나라' 미국에서 아시안으로 살아온 이들이 수상까지 하게 됐을 때, 아시안 증오범죄에 대해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내던지며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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