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한국영화에는 없었던 비주얼이다.
그래서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화제성은 충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영화 '사냥의 시간'이다.
영화 '사냥의 시간' 포스터 / 사진제공=넷플릭스


극장 개봉을 목표로 했던 '사냥의 시간'은 코로나19와 해외 콘텐츠 판매 등의 문제로 진통을 겪고 마침내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 4월 말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됐다.

'사냥의 시간'은 기획 단계부터 영화 팬들의 큰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다. 충무로를 이끌어갈 청춘 배우로 주목 받고 있는 이들이 대거 캐스팅됐을 뿐만 아니라 장편영화 데뷔작 '파수꾼'을 통해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윤성현 감독의 신작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파수꾼'에 출연했던 이제훈, 박정민이 또 한 번 윤 감독과 의기투합한 점도 호기심을 자극한 포인트다. '사냥의 시간'이 국내외 영화 팬들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던 비결을 세세히 살펴봤다.충무로 차세대 주자들이 뭉쳤다

'사냥의 시간'에는 이제훈, 최우식, 안재홍, 박정민, 박해수 등 충무로의 핫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촬영 당시부터 이목이 집중됐다. 이들은 독립영화, 단편영화 등을 통해 기본기를 다지고 찬찬히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구축해왔다.

영화 '사냥의 시간' 스틸 / 사진제공=넷플릭스
준석 역의 이제훈은 친구들을 이끄는 강렬한 모습부터 추격자에게 쫓기는 극한상황에서의 초조한 감정 연기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장호 역의 안재홍은 머리를 삭발하고 탈색을 하는 등 외적인 모습까지도 세밀하게 표현했다. 기훈 역의 최우식은 자신에게 소중한 친구들과 가족,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상수 역의 박정민은 정보원 역할로 극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박해수는 추격자 한 역으로 극의 긴장감을 드라마틱하게 끌어올렸다.

대세 배우들이 모인 만큼 이들 스스로도 서로와의 작업에 흥미를 드러냈다. 이제훈은 "또래 배우들과 희희낙락대며 촬영장에서 농담하고 수다 떠는 것만으로도 힘이 됐다. 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이렇게 하나하나 찍어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영화적 동지를 또 얻었다. 이들은 한국영화를 이끄는 젊은 배우들"이라고 칭찬했다. 최우식은 "이들은 떠들며 놀다가도 카메라 앞에서는 돌변했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 다른 이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 일하더라. 서로에게 뒤처지기 싫어서 선의의 경쟁처럼 재밌고 치열하게 연기했다"고 밝혔다.

영화 '사냥의 시간' 이제훈(왼쪽), 박정민 / 사진제공=넷플릭스
이제훈과 박정민은 '파수꾼'에서도 친구 사이인 기태와 희준 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제훈은 "'사냥의 시간' 속 인물 관계가 '파수꾼'의 기태와 희준을 오마주한 듯 해서 찍으면서도 '파수꾼' 때 생각이 많이 났다"면서 "이제는 박정민이라는 배우 없이 한국 영화를 논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어디서든 사랑 받는 배우가 됐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20대 때 함께 연기했고 30대 때도 했는데 40대가 됐을 때 또 연기하면 어떨까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고 말했다.

이제훈은 윤 감독에 대한 깊은 신뢰도 드러냈다. 그는 윤 감독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사이라 굳이 설명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조차도 나와 맞닿아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헬조선'이란 표현에 궁금증 느끼다영화 '파수꾼'으로 제32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윤성현 감독은 9년 만에 두 번째 장편으로 '사냥의 시간'을 내놓았다.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말이다.

'파수꾼'과 '사냥의 시간'은 형제처럼 닮았으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구성의 측면에서 윤 감독은 "'파수꾼'은 감정에서 오는 리얼리티에 초점을 맞춘 영화로, 드라마 중심에다 이야기 구조도 복잡하다. '사냥의 시간'은 표현주의적이고 이야기 구조도 단순하고 직선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냥의 시간'은 인물의 감정보다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에 초점을 맞췄다. 시네마틱한 음악과 사운드, 배우들의 표정으로 이뤄지는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 '사냥의 시간' 최우식 스틸 /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소재의 측면에서 보면 '파수꾼'은 미숙한 10대들의 삶을 날카롭게 조명했고, '사냥의 시간'은 희망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무기력함을 이야기했다. 윤 감독은 "시나리오를 처음 썼던 2016년 당시 젊은 친구들이 한국사회를 지옥(헬조선)에 빗대서 자주 이야기했다"면서 "청년들이 생존에서 느끼는 감정과 사회적 박탈감을 정서적으로 표현하면서 지옥을 얘기했다고 생각한다. 우화적으로 지옥 같은 세상을 시각화해서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윤 감독은 "당시 젊은이들은 한국사회든, 조직사회든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컸던 것 같다"면서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젊은이들이 희생돼야 하는 사회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네 청년들이 어딜 가든 쫓아오는 한의 모습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음울한 '헬조선'이 연상된다. 다만 영화가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근본을 다방면에서 고민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만 해 한계점을 가진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 생생하게 전해지다

윤 감독은 낙후된 경제와 극단적 빈부격차의 모습이 강조된 새로운 세계관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이 겪는 갈등과 고민을 담아냈다. 정체불명의 추격자에게 내몰리는 네 친구들의 모습은 극한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압도적인 스릴감을 선사한다.

영화 '사냥의 시간' 스틸 / 사진제공=넷플릭스


붉은색과 푸른색을 오가는 강렬한 색감과 입체적인 사운드도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요소로 활용됐다. 윤 감독은 "영화의 본질인 서스펜스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연출적인 영역의 장면 구성과 사운드, 음악에 대해서도 고심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또한 "사운드가 지닌 힘을 최대한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영화적 구성과 사운드가 지닌 힘으로 영화가 가진 미덕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최우식은 윤 감독이 '체험적인 영화'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는 "영화 '그래비티'를 보면 실제로 내가 (우주에 있는 듯) 체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이번 영화의 대본을 읽으면서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추격자에게 쫓길 때 극도로 겁에 질리는 그 느낌이 전해질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한 "'부산행'이 한국영화로는 좀비 소재를 처음 시도했다면 '사냥의 시간'은 장르적 체험을 처음 시도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 '사냥의 시간' 이제훈 / 사진제공=넷플릭스


외신들도 숨 막힐 듯한 긴장감과 시네마틱한 체험을 선사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들은 "멈추지 않는 긴장의 연속"(할리우드리포터) "네 명의 주인공을 추적하는 끈질긴 킬러가 윤성현 감독의 분위기 있는 스릴러에서 가장 멋진 부분"(버라이어티) "풍부한 상상력을 갖춘 훌륭한 스릴러"(더업커밍) "흥미진진하며 기술적으로 인상적이고 스릴러 장르의 근원을 찬양하는 재미있는 작품"(언컷무비즈)이라고 호평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장센

'사냥의 시간'은 스트리트 패션부터 그래피티까지 차별화된 콘셉트로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여줬다. 이는 국내외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포인트였다. 이에 '사냥의 시간'은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한국 영화로는 처음 초청됐다. 윤성현 감독과 이제훈, 안재홍, 박정민, 박해수는 지난 2월 열린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전 세계 취재진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사냥의 시간'은 영화제 상영관 중 가장 큰 규모인 프리드리히슈타트 팔라스트 극장 1600여석을 매진시켰다.

영화 '사냥의 시간'의 배우 박정민(왼쪽부터), 안재홍, 이제훈, 박해수가 2월 22일(현지시간)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이제훈은 해외에서도 이같이 환영받은 이유로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한국이라는 배경 설정을 꼽았다. 그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즐기고 선호하는 분들이 많기에 이 작품을 좋아해주신 것 같다. 사운드에도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인데, 큰 사운드를 즐긴 분들도 많다"며 "한국의 근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표현한 부분을 흥미로워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냥의 시간'에는 그래피티, 스트리트 패션, 힙합 음악 등 서브 컬쳐 요소들이 활용돼 다크한 분위기를 심화시켰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회라는 배경 설정을 감안하면서도 캐릭터마다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각각 차별화를 뒀다. 이제훈은 꾸미지 않은 듯 하면서도 카리스마 있게, 안재홍은 소년의 느낌을 가미한 흑인 스트리트 패션으로, 최우식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로, 박정민은 일상적이고 편안한 스타일로 연출했다. 추격자 역인 박해수는 오랜 총기 사용으로 의상이 마모되는 부분까지 고려했다.

영화의 공간과 미술은 빈티지한 분위기를 고조시키지만 지나치게 강렬해 일반 관객들이 쉽게 접근하긴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한 스토리가 과도하게 직선적으로 그려지면서, 훌륭한 미장센과 어우러지지 못해 겉치장만 화려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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