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오지은씨에게
SBS 에서 극중 드라마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 위해 앤서니(김명민)가 부랴부랴 찾아 나섰던 톱스타 성민아(오지은). 콧대 깨나 높아 보이는 싸늘한 안색의 그녀가 낯이 익긴 한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누군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 거 아시죠? 알듯 말듯, 생각이 날듯 말 듯 하면 정말 사람 미칠 노릇이잖아요. 하도 답답해 결국엔 드라마 홈페이지를 찾아가 해결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요. 세상에! 성민아, 그 쌀쌀맞고 도도한 그녀가 JTBC 시트콤 의 지은이였다니. 지난 여름까지 매일 같이 반년이 넘도록, 그야말로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사이건만 그런 지은이를 알아보질 못한 거예요. 어디 그뿐인가요. KBS 일일극 로 또 반년 넘게 만났었으니 매일 본 게 햇수로 3년인데 말이죠. 시트콤 때 워낙 정이 폭 들었다 보니 마치 둘도 없는 친구 딸이 벼락출세라도 한 양 신기하고 대견했어요. “어머, 어머 우리 지은이가 웬일이래.” 그 늦은 시간에 어디다 전화도 걸 수 없는 노릇인지라 “저런 대담한 화장도 어울리네, 저런 야한 옷도 잘 소화할 줄 아네” 라며 오밤중에 한참을 자문자답으로 시간을 보냈네요.

성민아가 오지은 씨라는 게 처음엔 몰입이 안 되었어요

그만큼 변신이 폭이 컸던 겁니다. 사실 의 외로워도 슬퍼도 늘 꿋꿋한 순수녀 봉이에서 의 철딱서니 없는 된장녀 지은으로 변신할 때도 놀라기는 했어요. 처음엔 잘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죠. 가족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 삶의 모토이지 싶은 봉이와 청담동으로 대변되는 부를 향한 열망으로 가득한 지은의 갭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사실 봉이였을 때는 워낙 모든 이의 관심이 동해(지창욱) 쪽으로 쏠려 있는 통에 명색이 여자 주인공이어도 아쉽게 별 활약을 못했어요. 마냥 착한 역할이 늘 그렇듯 오히려 대치 점에 있는 악녀 새와(박정아)가 더 화제가 되지 않았나요? 그런데 그렇게 착하고 자기 앞가림 잘하던 봉이가 지은 역으로 자리를 옮기더니만 어찌나 얌통머리 없는 짓들을 천연덕스럽게 잘해내던지. 솔직히 초반엔 명품 밝히고 돈 많은 남자 밝히는 품새가 하도 마음에 안 들어 제가 좀 미워했다는 거 아닙니까. 머리 나쁜 애가 영악하기까지 하니 꼴불견이라고요. 그랬는데 시간이 흐르는 사이 모두가 지은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됐죠. 시트콤 안의 인물들은 물론 지켜보는 시청자들도.그런 천방지축이 이번엔 까칠한 매력을 뿜어내는, 무려 톱스타인 거예요. 게다가 기획사 사장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는 처지가 됐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성민아가 오지은 씨라는 걸 알고 나니 적어도 그날 당일만큼은 도통 몰입이 안 되더라는 점이에요. 지은이의 상상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거든요. 왜 시트콤에 그런 에피소드가 가끔 나오잖아요. 그러나 부작용이라 할 그 같은 증상은 다행히 단 하루에 그치고 말았으니 걱정 붙들어 놓으세요. 그런데요, 성민아가 꽤 흥미로운 인물이더군요. 물론 이고은(정려원) 작가에게 함부로 구는 것이 마뜩치 않긴 해도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앤서니가 “의 여주인공이 된다면”이라고 답하자 그 한 마디에 운명의 주사위를 다시 던져보는 호승심, 옛 연인 앤서니를 살리고자 과감히 5억이라는 큰돈을 투자하는 용기, 진짜 톱스타급 여배우답잖아요.

보다 오지은 씨의 성장이 궁금해요

사실 매일매일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겨운 드라마 이 과연 시청자 앞에 실체를 드러낼 수 있을지, 그건 그다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이야기 전개상 앤서니가 갖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제국 회장(박근형) 무리에게 승리하리란 건 불을 보듯 빤하니까요. 지금 관심이 가는 건 앤서니의 마음을 얻고 싶어 하는 여배우 성민아의 미래, 그리고 연기자 오지은 씨의 또 다른 성장입니다. 성민아 역으로 인해 오지은 씨가 얼마나 달라질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죠? 그 동안 일일극과 시트콤, 사극을 통해 여러 중견배우들에게서 호흡이며 속도 조절, 시선처리를 제대로 배웠지 싶은데요. 이번엔 실력파 상대역으로부터 한 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얻었네요. 흔한 얘기지만 부디 초심을 잘 살려 스펀지처럼 많은 걸 흡수하기를, 그러나 성민아에게 그 오만함과 가식만큼은 결코 배우질 않기를 바랍니다.

정석희 드림.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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