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주부의 집을 훑던 카메라가 돌연 방송국 스튜디오를 비춘다. 단상 위 두 남자는 주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스포츠 중계하듯 이야기한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주부의 드라마는 돌연 아침방송 풍의 정보 프로그램으로 돌변하고, 극심한 게으름과 배고픔을 참지 못한 주부의 일상은 요리 방송 하나를 뚝딱 만들어 낸다. TBS에서 화요일 밤 12시 55분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는 신선한 포맷의 작품이다. 로 알려진 쿠수미 마사유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30분의 이야기를 다양한 툴 속에서 전개한다. 매 회 시작은 구전동화 풍의 애니메이션으로 이뤄지고 중간 중간 뮤직비디오나 요리 레시피 설명 화면 등이 삽입된다. 2회에선 전자레인지만 사용해 완성할 수 있는 간단 요리 레시피가 공개됐고, 게으른 주부의 다이어트를 소재로 한 3화에선 ‘만두 맛 덮밥’과 함께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인 다이어트 공식’이 소개됐다. 주부의 지루한 일상이 포착해 낸 작지만 유용한 정보가 드라마를 가득 채운다. 일종의 ‘생활정보 잡지형 드라마’인 셈이다.

시청률 부진에 맞서는 뉴 타입 드라마

4분기 가을, 겨울 일본 드라마의 분위기가 좋다. 기무라 타쿠야의 게츠쿠 ,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드라마 연출작 , 장수 추리물 등 기대작들은 예상만큼의 호평을 받고 있고, 와 같이 새로운 형식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작품도 다수다. 먼저 코미디언 콤비 바나나맨의 히무라를 주인공으로 한 는 매회 여주인공과 연출자, 그리고 각본가가 바뀌는 콘셉트의 옴니버스 드라마다. ‘야수와 미녀 드라마’의 새로운 변주로, 10회 동안 코미디언과 여배우의 10가지 조합을 시도한다. 방영 시간 60분 전체가 애드리브로 이루어지는 드라마도 있다. 3인조 여자 아이돌 그룹 노스리브와 릴리 프랭키가 출연하는 은 토크 쇼와 음악 방송, 그리고 드라마가 뒤섞인 구조다. 도쿄의 새 상징 스카이트리 근처 한 카페에 매회 게스트가 등장한다는 설정으로, 배우들은 즉흥성을 발휘해 이야기를 꾸려간다. 10월 21일 방영된 1회에 가수 BENI, 배우이자 연출가인 이케다 테츠히로 등이 출연해 토크와 라이브를 선보였다. 마치 잡지의 좌담 페이지 혹은 토크쇼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드라마 시청률의 부진은 이제 지겨운 과제다. 로맨틱 코미디와 청춘물로 황금기를 구가했던 일본 드라마는 2000년대 들어 좀처럼 새로운 방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SNS가 중심이 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대중이 50분 길이의 드라마를 시간 맞춰 찾아본다는 건 어쩌면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시즌 드라마의 새로운 시도들이 돋보인다. 이야기의 리듬을 쪼개고,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뒤섞기 시작했다. 네슬레의 제작으로 방영되고 있는 는 과 비슷한 콘셉트로 매회 새로운 게스트들의 만남을 주선한다. 카페는 만남의 장소라는 모토 아래 가수와 만화가, 배우와 영화감독 사이의 연을 소소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중간에 삽입되는 에피소드 형식의 네슬레 CF는 드라마의 중간 광고, 그리고 드라마 제작사와 스폰서 관계에 대한 새로운 입장처럼 보인다. 지난 10여 년간 급변한 드라마 시청 환경은 일본 드라마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일본 드라마의 지금이 심상치 않다.



글. 정재혁 자유기고가
편집.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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