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바타 쥰페이가 출연하고, 동방신기가 엔딩곡을 부른 영화 의 주인공은 마츠리다. 포토그래퍼를 꿈꾸는 대학생 신페이(미조바타 쥰페이)와 어린 시절 소꿉친구 카오리(키나미 하루카)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가 큰 틀을 두르고 있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중부 지방 코치시의 대표 축제 요사코이 마츠리에 집중한다. 꿈을 위해 도쿄로 떠난 신페이, 고향에서 축제를 준비하는 카오리, 그리고 둘의 재회 등 크고 작은 드라마가 모두 요사코이 마츠리의 화려한 결말을 위해 차곡차곡 쌓인다. 아사히TV의 창립 60주년 기념 영화로 제작된 은 코치시의 전면적인 협조를 받아 일종의 축제 홍보 작품처럼 완성됐다. 뜨거운 여름날 방황하던 두 청춘의 꿈과 희망, 그리고 축제의 열기가 이뤄낸 하나의 결실은 일본의 여름 마츠리가 지향하는 드라마 그대로일 것이다.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지키는 마츠리
마츠리라 불리는 일본의 축제는 지역별로, 그리고 계절별로 수백 개에 이른다. 특히 여름이면 고유의 전통과 양식을 갖춘 지역 마츠리 외에도 록 페스티벌, 하나비 대회라 불리는 불꽃축제, 그리고 중·고등학교의 문화제가 거의 매주 일본 열도 어딘가에서 흥을 돋운다. ‘제사를 지내다’란 동사에서 파생된 마츠리는 본래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형식에서 기원했다. 초기에는 신사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종교 행사로 이뤄졌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정월 대보름 행사로 시작된 아키타현 오가시의 나마하게 마츠리, 전염병을 퇴치하는 행사로 고안된 교토의 기온 마츠리,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의 도쿄 칸다 마츠리 등은 각각 유래는 달라도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는 지역과 마을의 대축제란 점에서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행해지는 대부분의 마츠리가 신사보다 마을 상인회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의 요사코이 마츠리처럼, 일본의 축제는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지키는 문화적 의식이다.
일본의 미술가 오카모토 타로는 마츠리를 일본의 원초적 색채가 남아있는 유일한 문화라고 했다. 그는 기묘한 탈을 쓰고 취하는 우스꽝스러운 춤사위, 강렬한 단색이 교차하는 의상과 깃발 등에서 일본 고유의 미적 감각을 보았다. 우리에게는 다소 선정적으로 보이는 오카야마의 알몸 축제, 카와사키의 남근 축제도 그에게는 고대 일본사회의 근원을 맞추어보는 퍼즐 조각일 것이다. 오카모토는 마츠리를 일본의 현재가 잃어버린 과거의 조각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지금 마츠리는 일본에서 일상의 판타지가 되었다. 오카모토가 주목했던 고대의 이색적인 문화는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일본의 일상이 잃어버린 역동적인 에너지로 그려진다. 여름이면 각종 방송국에서, 쇼핑몰에서, 상점가에서, 그리고 놀이공원에서 마츠리란 이름의 행사를 갖는다. 쿠루리가 자신의 고향 교토에서 주최하는 ‘교토음전’, 시부야에서 열리는 여성 크리에이터들의 합동 전시 ‘시부카루 마츠리’ 등 작지만 이색적인 축제도 많다. 여름의 열기 속 마츠리의 해방감을 통해 일본인은 일상의 일탈을 꿈꾸는 것이다.
일상에서 가질 수 있는 판타지, 마츠리
야마시타 토모히사와 나리미야 히로키의 2003년도 여름 드라마 에서도 마츠리는 매우 인상적이다. 모든 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답답하기만 한 10대 소년들에게 마츠리는 무언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시간, 그리고 상황으로 다가온다. 동정을 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연애 감정을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같은. 여름날 마츠리는 일상의 이면 혹은 세상의 뒷면을 감지하게 한다. 사소하지만 큰 용기, 작지만 큰 사건이 스멀스멀 축제의 기운을 타고 올라온다. 학교가 배경인 문화제의 흥도 비슷한 맥락이다. 1년 4계절 열리는 마츠리지만 일본 마츠리의 백미는 여름이다. 일상의 에너지를 모아 축포로 터뜨리는 마츠리의 흥분은 여름의 뙤약볕, 그리고 김을 뿜어내는 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우리는 어딘가 벌어진 틈에서 새어 나올 드라마를 기대한다. 교정의 청춘들이, 마을의 주민들이, 그리고 공연장의 록 팬들이 뜨거운 햇살 속에서도 여름을, 마츠리를 환영하는 것은 모두 일상의 작은 판타지를 기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일본의 마츠리는 어쩌면 가장 가까운 마법의 시간이다.
글. 정재혁 자유기고가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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