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지산은 뜨거웠다. 비유가 아니라,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하염없이 녹아내리는 고무인형이 된 듯 한 기분을 느끼게 한 폭염 속에 10만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들 각자가 들은 음악, 즐긴 무대의 온도 역시 당연히 모두 다를 것이다. 그 라디오헤드와 그 스톤 로지스가 왔고, 그 들국화와 그 장필순이 노래했다. 검정치마와 페퍼톤스처럼 의외의 순간을 만들어낸 이들도 있었고 제임스 블레이크처럼 관객의 온도차가 극명하게 갈린 무대도 있었다. 그래서 올해도 맥주 다섯 잔을 기준으로 남기는 의 무대 평가 역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인 점수가 아니다. 행복했거나 경이로웠던 순간을 즐겁게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김희주
너무 덥고 이른 시간 무대에 선 제임스 이하는 힘겨워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만나지 못한 채 흘러간 세월을 꼽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찡그린 얼굴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더운 바람에 스며들어 흔적을 만들며 성난 공기의 온도마저 누그러뜨렸다. 황효진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던 더위 속에서 제임스 이하 역시 견디기 어려웠던 것일까. “쏘 핫 앤 브라이트. 와이? 와이?”라 말하는 목소리는 한껏 지친 표정과 오버랩 돼 절규하는 것처럼 들렸다. 미성은 여전했지만, 새삼 그의 나이를 되짚어 볼 수밖에.
강명석첫날 그린 스테이지의 실질적인 헤드라이너. 조휴일의 무심하거나 시크한 무대매너는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했고, 조마조마했던 라이브는 연주력을 즐길 만큼 좋아졌다. 그 큰 스테이지를 꽉꽉 채운 관객들이 ‘좋아해줘’에 모두 뛰는 날이 올 줄이야.
황효진
공연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 머물던 물음표 하나. 조휴일이 이렇게 라이브를 잘했었나? 안정적인 보컬, 흥분한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도 흔들리지 않는 애티튜드에서는 록 스타의 면모가 빛났다. 심지어 순진한 학생 같기만 하던 외모조차 잘생겨 보일 정도였달까.
김희주
“형, 죽지 마요!” 어느 관객이 외친 절규 같은 외침에 속으로 ‘Amen’이라 되뇌었다. 첫 곡부터 ‘떼창’이 터져 나오는 그 들국화의 음악을 그 전인권의 목소리로 들었다는 것만으로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을 감사했다. 작년에 UV가 있었다면 올해 지산을 구원한 건 들국화다.
황효진전인권은 조금 야위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단단하고 쨍쨍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들국화가 다시 무대에 섰고, 노래를 불렀으며, 연주를 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들은 박제된 전설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서의 건재함을 증명해냈다.
강명석
처음부터 끝까지 라디오헤드. 공연으로 만난 2012년의 라디오헤드에 낯설어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라디오헤드인 걸 어쩌나. 차우진
멤버보다 소리를 강조하는 공연용 영상이나 이후에 집중된 셋 리스트 모두 공부‘만’ 좋아하고 진지하기‘만’한 전교 1 등을 보는 느낌. 하지만 공연이 끝나자 이 밴드는 댄스 그룹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섹시 댄스머신 톰 요크.
강명석
달리의 그림처럼 모든 게 녹아내려도 현실적이었던 토요일 낮, 페퍼톤스는 그들의 무대 중 가장 힘껏 노래했고, 기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렸다. 소리로 맥주 한 모금 마신 것 같은 초현실적인 경험을 준 그들에게 감사를.
김희주
페퍼톤스 음악에 슬램하는 남자들이라니! 이제 정말 ‘록 밴드’라 불러야겠다. 여자 보컬들의 예쁜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마치 고등학생처럼 노래하고 연주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게다가 비음으로 득음한 신재평의 보컬은 이제 더 이상 조마조마하지 않다.
강명석
단독 공연에서 들려준 세미 오케스트라 편성을 페스티벌로 가져온 것은 흥미로운 시도였다. 하지만 보컬이 다른 사운드보다 크게 잡히고, 고음 쪽 소리들이 날카로워 소리의 디테일이 잘 살지 못했다. 나른하기를 기대했지만, 조금은 예민해졌던 공연.
김희주
‘루시드폴’이 아닌 ‘with 조윤성 세미 심포닉 앙상블’에 명백하게 방점이 찍힌 무대. 야외 록 페스티벌에 설 수 있는 아티스트와 레퍼토리가 있다 없다는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여기보다 더 어울렸던 장소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희주
눈으로 말하는 미남자의 매력에 홀려 음악이 좋은지 어떤지 몰라도 몽롱해진 사람들 사이로 어깨를 부딪히며 뒤돌아 나가는 사람들의 투덜거림이 있었다. 어쨌든 방구석에서 방바닥 긁으며 듣던 음악을 거의 똑같이 재현한 라이브는 경이로운 경험.
차우진
록 페스티벌에 안 어울린다, ‘듣보잡’이다 등의 비판(?)에도 불구, 레코딩의 소리를 실시간으로 똑같이 재현하고 극단적으로 높은 베이스 볼륨에 ‘물리적으로’ 몸을 흔든 공연은 토 나올 만큼 인상적이었다. 맥주 많이 마셨으면 큰일날 뻔. 게다가 잘생겼네?!
황효진
불지옥 같던 햇볕과 북적이는 인파에 시달렸던 시간을 단숨에 지워냈다. 막 떠오르기 시작한 달, 숨소리 하나하나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는 장필순의 음색, 그리고 함춘호의 기타. 믿을 수 없을 만큼 근사해서, 현실로 곧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차우진: 맥주 0
CCM 앨범 의, 하나뮤직에서 푸른곰팡이로 이어진 신석철, 김정렬, 함춘호, 박용준과의 무대. “조금 알 것 같아요”를 부를 때 장필순은 그들 모두에게, 또 관객들에게 “감사해요, 사랑해요”라고 속삭였다. 한 잔의 맥주도 방해가 될 만큼 경건하고 뭉클한, 심지어 아름다웠던 공연.
황효진
비디 아이가 오아시스의 곡을 부를 때 함성이 훨씬 컸던 것, 인정한다. 오아시스가 헤드라이너였던 2009년 지산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 날 강력한 로큰롤로 우리를 미쳐 날뛰게 한 건 비디 아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차우진
뒤에서 “우아아 역시! 이제 락페에 온 기분난다! 그런데 원래 두 명 아니냐? 한 놈은 어디갔냐?”란 말이 들렸다. 오늘의 유머. ‘노엘 없는 오아시스’ 비디 아이는 본의 아니게 오아시스 카피 밴드 같은 인상도 준다. 그냥 재결합해서 만담개그를 제공하라! (응?)
황효진
다소 불안한 음정도, 탄력을 잃은 근육도 중요치 않았다. 관객의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고, 노래가 끝날 때마다 “캄사합니다”를 외치는 이안 브라운의 사랑스러움은 어떤 헤드라이너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밤, 빅탑에 있던 모두가 그에게 반했다.
차우진
자기 얼굴 프린트의 티셔츠를 입은 이안 브라운의 한국어 인사, 존 스콰이어의 10여 분 기타 솔로가 콱 박힌 공연. 중간의 실수도 사소했을 만큼 그저 감격했다. 물론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리암 갤러거가 객석에 뛰어들어 함께 슬램했던 때지만.
일러스트레이션. 그루브모기
사진제공. CJ E&M
글. 강명석 기자 two@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글. 차우진(대중문화평론가) 기자
김희주
너무 덥고 이른 시간 무대에 선 제임스 이하는 힘겨워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만나지 못한 채 흘러간 세월을 꼽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찡그린 얼굴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더운 바람에 스며들어 흔적을 만들며 성난 공기의 온도마저 누그러뜨렸다. 황효진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던 더위 속에서 제임스 이하 역시 견디기 어려웠던 것일까. “쏘 핫 앤 브라이트. 와이? 와이?”라 말하는 목소리는 한껏 지친 표정과 오버랩 돼 절규하는 것처럼 들렸다. 미성은 여전했지만, 새삼 그의 나이를 되짚어 볼 수밖에.
강명석첫날 그린 스테이지의 실질적인 헤드라이너. 조휴일의 무심하거나 시크한 무대매너는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했고, 조마조마했던 라이브는 연주력을 즐길 만큼 좋아졌다. 그 큰 스테이지를 꽉꽉 채운 관객들이 ‘좋아해줘’에 모두 뛰는 날이 올 줄이야.
황효진
공연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 머물던 물음표 하나. 조휴일이 이렇게 라이브를 잘했었나? 안정적인 보컬, 흥분한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도 흔들리지 않는 애티튜드에서는 록 스타의 면모가 빛났다. 심지어 순진한 학생 같기만 하던 외모조차 잘생겨 보일 정도였달까.
김희주
“형, 죽지 마요!” 어느 관객이 외친 절규 같은 외침에 속으로 ‘Amen’이라 되뇌었다. 첫 곡부터 ‘떼창’이 터져 나오는 그 들국화의 음악을 그 전인권의 목소리로 들었다는 것만으로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을 감사했다. 작년에 UV가 있었다면 올해 지산을 구원한 건 들국화다.
황효진전인권은 조금 야위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단단하고 쨍쨍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들국화가 다시 무대에 섰고, 노래를 불렀으며, 연주를 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들은 박제된 전설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서의 건재함을 증명해냈다.
강명석
처음부터 끝까지 라디오헤드. 공연으로 만난 2012년의 라디오헤드에 낯설어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라디오헤드인 걸 어쩌나. 차우진
멤버보다 소리를 강조하는 공연용 영상이나 이후에 집중된 셋 리스트 모두 공부‘만’ 좋아하고 진지하기‘만’한 전교 1 등을 보는 느낌. 하지만 공연이 끝나자 이 밴드는 댄스 그룹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섹시 댄스머신 톰 요크.
강명석
달리의 그림처럼 모든 게 녹아내려도 현실적이었던 토요일 낮, 페퍼톤스는 그들의 무대 중 가장 힘껏 노래했고, 기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렸다. 소리로 맥주 한 모금 마신 것 같은 초현실적인 경험을 준 그들에게 감사를.
김희주
페퍼톤스 음악에 슬램하는 남자들이라니! 이제 정말 ‘록 밴드’라 불러야겠다. 여자 보컬들의 예쁜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마치 고등학생처럼 노래하고 연주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게다가 비음으로 득음한 신재평의 보컬은 이제 더 이상 조마조마하지 않다.
강명석
단독 공연에서 들려준 세미 오케스트라 편성을 페스티벌로 가져온 것은 흥미로운 시도였다. 하지만 보컬이 다른 사운드보다 크게 잡히고, 고음 쪽 소리들이 날카로워 소리의 디테일이 잘 살지 못했다. 나른하기를 기대했지만, 조금은 예민해졌던 공연.
김희주
‘루시드폴’이 아닌 ‘with 조윤성 세미 심포닉 앙상블’에 명백하게 방점이 찍힌 무대. 야외 록 페스티벌에 설 수 있는 아티스트와 레퍼토리가 있다 없다는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여기보다 더 어울렸던 장소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희주
눈으로 말하는 미남자의 매력에 홀려 음악이 좋은지 어떤지 몰라도 몽롱해진 사람들 사이로 어깨를 부딪히며 뒤돌아 나가는 사람들의 투덜거림이 있었다. 어쨌든 방구석에서 방바닥 긁으며 듣던 음악을 거의 똑같이 재현한 라이브는 경이로운 경험.
차우진
록 페스티벌에 안 어울린다, ‘듣보잡’이다 등의 비판(?)에도 불구, 레코딩의 소리를 실시간으로 똑같이 재현하고 극단적으로 높은 베이스 볼륨에 ‘물리적으로’ 몸을 흔든 공연은 토 나올 만큼 인상적이었다. 맥주 많이 마셨으면 큰일날 뻔. 게다가 잘생겼네?!
황효진
불지옥 같던 햇볕과 북적이는 인파에 시달렸던 시간을 단숨에 지워냈다. 막 떠오르기 시작한 달, 숨소리 하나하나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는 장필순의 음색, 그리고 함춘호의 기타. 믿을 수 없을 만큼 근사해서, 현실로 곧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차우진: 맥주 0
CCM 앨범 의, 하나뮤직에서 푸른곰팡이로 이어진 신석철, 김정렬, 함춘호, 박용준과의 무대. “조금 알 것 같아요”를 부를 때 장필순은 그들 모두에게, 또 관객들에게 “감사해요, 사랑해요”라고 속삭였다. 한 잔의 맥주도 방해가 될 만큼 경건하고 뭉클한, 심지어 아름다웠던 공연.
황효진
비디 아이가 오아시스의 곡을 부를 때 함성이 훨씬 컸던 것, 인정한다. 오아시스가 헤드라이너였던 2009년 지산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 날 강력한 로큰롤로 우리를 미쳐 날뛰게 한 건 비디 아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차우진
뒤에서 “우아아 역시! 이제 락페에 온 기분난다! 그런데 원래 두 명 아니냐? 한 놈은 어디갔냐?”란 말이 들렸다. 오늘의 유머. ‘노엘 없는 오아시스’ 비디 아이는 본의 아니게 오아시스 카피 밴드 같은 인상도 준다. 그냥 재결합해서 만담개그를 제공하라! (응?)
황효진
다소 불안한 음정도, 탄력을 잃은 근육도 중요치 않았다. 관객의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고, 노래가 끝날 때마다 “캄사합니다”를 외치는 이안 브라운의 사랑스러움은 어떤 헤드라이너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밤, 빅탑에 있던 모두가 그에게 반했다.
차우진
자기 얼굴 프린트의 티셔츠를 입은 이안 브라운의 한국어 인사, 존 스콰이어의 10여 분 기타 솔로가 콱 박힌 공연. 중간의 실수도 사소했을 만큼 그저 감격했다. 물론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리암 갤러거가 객석에 뛰어들어 함께 슬램했던 때지만.
일러스트레이션. 그루브모기
사진제공. CJ E&M
글. 강명석 기자 two@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글. 차우진(대중문화평론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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