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일본에서 과 이 개봉했다.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를 담은 두 영화가 예상 외의 흥행을 기록하자 많은 이들이 놀랐다. 일본의 3대 메이저 영화사 중 하나로 최근 몇 년 동안 업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토호에서 이런 영화를 기획했다는 것부터 화제였다. 두 영화를 만든 카와무라 겐키 프로듀서는 서른 네 살의 젊은 영화인이다. 2005년의 , 2008년의 역시 그의 작품이다. 카와무라 겐키는 만화나 소설 원작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에도 새로운 영화적 작법을 고민해 비범한 재미와 성취를 이룬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그가 평범한 남자의 분투기에 일본의 서브 컬처와 J-POP의 맛을 더한 ‘웃픈 연애담’ 와 일본식 우주 영화라 할 수 있을 를 들고 제 16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를 찾았다. “일본에서도 이단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라며 쓴웃음을 짓는 동시에 “J.J 에이브람스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카와무라 겐키를 부천에서 만났다.
“만드는 사람보다 본 사람들이 여러 이야기를 하는 결말이 좋다”
이번 PIFAN에서 공개된 와 는 아직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하지 않았다. 어떤 작품인가?
카와무라 겐키: 는 전혀 인기가 없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모테키(인기가 극에 달하는 시기)’를 맞아 여러 미녀들과 얽히는 굉장히 단순한 스토리 안에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끄러운 연애 이야기를 담았다. 를 보고 “아, 연애라는 것은 역시 아프네”라는 생각을 했다. 연애의 그런 면을 일본 특유의 서브 컬처와 결합해 일종의 다큐멘터리이자 음악극으로 그리고 싶었다. 원래 원작 만화가 있고 드라마로 먼저 만들어졌지만 영화 내용은 전부 오리지널 스토리다. 단 3개월 만에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서 만화가와 감독과 내가 여러 실화를 모아서 만들었다. 그래서 굉장히 리얼하고 애처로운 연애 감정이 가득 들어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 여러 J-POP 음악들로 색을 입혔다. 대사로 말하지 않아도 흐르는 음악을 들으면 감정을 알 수 있게끔, 어떤 의미로 뮤지컬적인 느낌으로 완성되었다.
반면에 는 ‘꿈’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가족 관객이나 좀 더 보편적인 대중을 타깃으로 한 느낌이 들었다.
카와무라 겐키: 도 역시 만화가 원작인데 어린 시절 우연히 함께 U.F.O를 본 형제가 우주비행사가 되자는 약속을 한다. 그로부터 19년 후 동생은 진짜 나사(NASA)의 우주비행사가 되어서 곧 달에 가게 되지만 형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형이 회사에서 잘리게 되고 그 시점에 다시 한 번 우주비행사에 도전하게 된다. 우주라고 하는 굉장히 커다란 무대와 형제라고 하는 가장 작은 관계성이 대비를 이루는 영화다. 는 엔딩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카와무라 겐키: 결말에 대해 꿈이라고 한 사람도 있고 해피엔딩이라고 한 사람도 있고 여러 해석이 나왔지만 그렇게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게 좋다고 본다. 좀 더 확실하게 결론을 짓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부러 그렇게 했다. 관객들이 보고 난 뒤에 ‘어랏?’ 하는 기분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특히 지금 같은 트위터의 시대에는 만드는 사람이 이런 것이야 라고 완결시키는 것보다 확산되면서 본 사람들이 직접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쪽이 더 좋다. 개인적으로도 이나 같은 결말을 좋아한다. 뭐랄까, 관객에게 짐을 안긴다고 할까? 보고 나서 개운하지 않은 마음에 한 동안 잠들 수 없는 느낌이 좋다. (웃음)
그러고 보면 도 ‘~랄까’라는 대사로 끝나는 엔딩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카와무라 겐키: 일본에서는 그 대사 때문에 “이 영화는 실패다”라고 말한 평론가가 많았다. 반면에 그 대사 때문에 ‘우왓!’이라고 느꼈다는 관객도 많았고. 평이 갈렸다. 내가 만든 영화들은 마지막에 관객이 스스로 무언가를 갖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가 ‘모테키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굉장히 흥행했는데 이런 성공을 처음부터 예상했나?
카와무라 겐키: 사실 기획을 시작할 때는 결과를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부터 시작할 뿐이다. 다만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닿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여러 시도를 하게 된다. 각본을 만들 때, 캐스팅을 할 때, 카메라 감독을 정할 때, 음악을 넣을 때 각 단계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세계, 이를테면 지금 일본의 인디 음악이나 서브 컬처의 중요한 씨앗이 된 요소들을 토호라는 메이저 회사를 통해 풍성한 결과로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쉽게 질리는 편이라 새로운 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타입”
확실히 부터 , 과 등 그간 당신이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은 토호의 색깔과 다른 것은 물론 기존의 일본 상업 영화의 궤적 안에서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카와무라 겐키: 27살에 을 처음 기획했다. 시작부터 인터넷 게시판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로 만든다는 특이한 시도를 할 기회가 있었던 거다. 의 경우도 데스 메탈 음악 이야기인데 나는 이것을 독립 영화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도 내용만 놓고 보면 상업 영화로 만들어지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메이저 회사에서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이런 엔터테인먼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은 해외에서도 여러 상을 받았고 이런 일본 영화도 있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은 분들이 많았다. 명백히 대중적인 소재와 이야기를 메이저 회사의 예산과 규모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디의 정체성을 가진 이야기를 가능한 메이저 회사의 타이틀로 만들어 나가는 것, 이것이 프로듀서로서 나의 정체성인 것 같다.
토호라는 업계 1위의 메이저 회사에 당신 같은 프로듀서가 있다는 게 의외다.
카와무라 겐키: 기획으로 승부하는 타입의 프로듀서인건데 나는 일본에서도 “특이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웃음) 이게 가능한 이유가 토호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나 포켓몬스터 시리즈 같은 크고 안정적인 타이틀을 여러 편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들을 통해 흥행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나 같은 프로듀서가 할 수 있는 시도들이 있는 것이다.
당신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자신만 경쟁력이 무엇이라고 보나?
카와무라 겐키: 나는 쉽게 질리는 편이라 어쨌든 새로운 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의 기반이 된 서브 컬처도 원래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의 경우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나온 작품이다. 나는 관심사가 넓고 취미가 많다. 음악도 좋아하고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를 다 좋아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아이템을 모아서 감독, 배우와 음악 등 모든 요소를 가장 좋은 조합으로 구성하고 또 가장 좋은 타이밍에 영화로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테마와 감독의 작가성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감독을 고를 때부터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많이 신경 쓴다. 확실히 은 나카시마 테츠야의 색깔이 더해져서 영화가 더 특별해진 것 같다.
카와무라 겐키: 은 좀 이상한 이야기지만 관객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시대적인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감독을 고를 때부터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특히 상당히 어두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갖고 있는 풍성한 영상미와 음악 센스로 이를 돌파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 공개되었을 때 평론가들로부터 “저런 건 영화가 아니다. 뮤직 비디오다” 같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된 초반의 30분이야말로 의 정수가 아닌가?
카와무라 겐키: 확실히 영화적이지는 않았으니까. 좀 더 스토리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평론가들한테 혹평을 받아도 흥행에 성공하기도 하고 의외로 해외에서는 굉장히 높이 평가받기도 하는 법이니까. 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니까. (웃음)
일본은 영화 뿐 아니라 만화, 소설 등 서사를 갖고 있는 콘텐츠가 무수히 많다. 이것들이 영화를 만드는데 좋은 소스인 동시에 지나치게 원작에 종속된 영화들이 많다는 평가도 있다.
카와무라 겐키: 확실히 일본은 이야기의 형태를 가진 아웃풋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영화가 ‘one of them’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연히 만화나 소설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애니메이션이 더 좋은 사람도 있다. 반면에 한국은 다른 것에 비해 영화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크리에이터와 작품이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하지만 나는 프로듀서기 때문에 솔직히 오리지널 시나리오든 원작이 있든 전혀 상관이 없다. 어쨌든 재미있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원할 뿐이다. 그럼 그 많은 소설과 만화 원작들 중 영화로 만드는 작품들은 어떤 기준에서 고르나?
카와무라 겐키: 영상으로 표현될 때 원작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점이 있거나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이 캐릭터가 필요해!” 같은 마음에서 원작으로 삼을 때가 있지 않나. 특히 만화는 우리처럼 각본이라는 문자의 세계관에 갇힌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발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나오는 캐릭터 발상이 전혀 다른데 그런 새로움이 필요하다. 도 그림에서 탄생한 캐릭터가 있고 거기서 이야기가 확장된다.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 캐릭터들은 문자로부터는 탄생할 수 없다.
“미래가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지금 세대의 공통된 테마”
많은 관심사 중 왜 하필이면 영화를, 그 중에서도 프로듀서를 하고 싶었나?
카와무라 겐키: 만화도 소설도 음악도 영상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집어넣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영화니까. 게다가 관객이 돈을 지불하고 일부러 영화관까지 와서 재미있거나 재미없거나 어쨌든 2시간 동안 앉아서 봐야 한다는 꽤 허들이 높은 엔터테인먼트라는 점이 나에게는 오히려 재미있다고 할까. 그리고 현장에서 집중해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재미도 물론 있겠지만 나는 조합하는 게 더 좋았다. 내 안에 있는 많고 넓은 관심사를 엮어내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만든다는 것은 역시 프로듀서가 아니면 안 된다.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다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 J.J 에이브람스 같은 사람 정도라고 보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영화계는 자국 내 영화 팬들이 갈수록 적어진다고 들었다. 글로벌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타깃이 넓어지는 만큼 기획 단계에서 고려할 부분도 많아지지 않나?
카와무라 겐키: 물론 그렇다. 하지만 노린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예를 들어 이나 같은 작품이 글로벌 마켓을 의식하고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 해외에서 굉장히 흥행했지만 제작 단계에서는 그런 부분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월드 와이드가 되기보다 자신들의 발밑을 응시하는 쪽이 세계의 관객에게도 재미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슈퍼 도메스틱(Super Domestic)’이라고 할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 자기 나라에 있는 문제를 얼마나 제대로 바라보고 만들어 내느냐가 결과적으로 힘을 가진다고 본다. 왕가위의 영화도 그랬고 봉준호 감독이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영화도 그렇다. 그래도 이렇게 영화제에서 해외 관객을 만나면 ‘역시 통한다’ 싶은 부분만큼 ‘아, 다르게 받아들이는구나’ 싶은 부분도 있지 않나?
카와무라 겐키: 의 경우, 한국 남성들은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소심하지 않다고 알고 있다. 이런 남자는 인기가 없지 않나? 하지만 연애에 있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콤플렉스 같은 건 통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그래서 연애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버둥거리는 느낌은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았다. 사실 외국 영화를 볼 때는 어쩔 수 없는 위화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같은 아시아인들이 미국 영화를 볼 때도 ‘미국적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중심에 있는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면 재미있게 보지 않나. 나라가 다르다고 해서 굉장히 다르게 받아들여지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 영화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업계의 프로로서 당신이 볼 때 한국 영화는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나?
카와무라 겐키: 최근에는 역시 한국 영화에서 자극을 받는 경우가 진짜 많다. 특히 은 2000년대 10년 간 세계에서 넘버원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창동 감독의 이나 김기덕 감독의 도 좋아한다. 이창동 감독은 캐릭터의 강렬함이 압도적이다. 매 번 그의 영화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정도까지 파워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일본인은 만들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 마음은 여전한가? (웃음)
카와무라 겐키: 물론이다. (웃음) 봉준호나 나홍진 같은 새로운 세대의 감독과 나 같은 세대가 느끼는 세계에 대한 위화감이 통한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같은 영화에서도 느껴지는, 미래가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 더 이상 세상이 좋아질 것 같지 않은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 공통된 테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에서 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언젠가 꼭 그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예를 들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카와무라 겐키: 지금 일본이 원전 문제를 겪고 있는데 이걸 일본인이 스스로 영화로 만드는 것이 내게 있어서는 지나치게 생생하고 직접적이라 어렵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미국인은 를 찍을 수 없는 것처럼. 의 조커는 9.11이라는 미국인이 갖고 있는 공포의 상징이라고 본다. 이를 당사자인 미국인은 그려낼 수 없지 않을까? 영국인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찍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봉준호 같은 이웃 나라의 감독이 와서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를 둘러 싼 여러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보고 찍는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누가 봉준호 감독에게 얘기를 해주지 않으려나? 촬영이 어서 끝나야 할 텐데. (웃음)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만드는 사람보다 본 사람들이 여러 이야기를 하는 결말이 좋다”
이번 PIFAN에서 공개된 와 는 아직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하지 않았다. 어떤 작품인가?
카와무라 겐키: 는 전혀 인기가 없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모테키(인기가 극에 달하는 시기)’를 맞아 여러 미녀들과 얽히는 굉장히 단순한 스토리 안에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끄러운 연애 이야기를 담았다. 를 보고 “아, 연애라는 것은 역시 아프네”라는 생각을 했다. 연애의 그런 면을 일본 특유의 서브 컬처와 결합해 일종의 다큐멘터리이자 음악극으로 그리고 싶었다. 원래 원작 만화가 있고 드라마로 먼저 만들어졌지만 영화 내용은 전부 오리지널 스토리다. 단 3개월 만에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서 만화가와 감독과 내가 여러 실화를 모아서 만들었다. 그래서 굉장히 리얼하고 애처로운 연애 감정이 가득 들어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 여러 J-POP 음악들로 색을 입혔다. 대사로 말하지 않아도 흐르는 음악을 들으면 감정을 알 수 있게끔, 어떤 의미로 뮤지컬적인 느낌으로 완성되었다.
반면에 는 ‘꿈’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가족 관객이나 좀 더 보편적인 대중을 타깃으로 한 느낌이 들었다.
카와무라 겐키: 도 역시 만화가 원작인데 어린 시절 우연히 함께 U.F.O를 본 형제가 우주비행사가 되자는 약속을 한다. 그로부터 19년 후 동생은 진짜 나사(NASA)의 우주비행사가 되어서 곧 달에 가게 되지만 형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형이 회사에서 잘리게 되고 그 시점에 다시 한 번 우주비행사에 도전하게 된다. 우주라고 하는 굉장히 커다란 무대와 형제라고 하는 가장 작은 관계성이 대비를 이루는 영화다. 는 엔딩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카와무라 겐키: 결말에 대해 꿈이라고 한 사람도 있고 해피엔딩이라고 한 사람도 있고 여러 해석이 나왔지만 그렇게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게 좋다고 본다. 좀 더 확실하게 결론을 짓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부러 그렇게 했다. 관객들이 보고 난 뒤에 ‘어랏?’ 하는 기분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특히 지금 같은 트위터의 시대에는 만드는 사람이 이런 것이야 라고 완결시키는 것보다 확산되면서 본 사람들이 직접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쪽이 더 좋다. 개인적으로도 이나 같은 결말을 좋아한다. 뭐랄까, 관객에게 짐을 안긴다고 할까? 보고 나서 개운하지 않은 마음에 한 동안 잠들 수 없는 느낌이 좋다. (웃음)
그러고 보면 도 ‘~랄까’라는 대사로 끝나는 엔딩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카와무라 겐키: 일본에서는 그 대사 때문에 “이 영화는 실패다”라고 말한 평론가가 많았다. 반면에 그 대사 때문에 ‘우왓!’이라고 느꼈다는 관객도 많았고. 평이 갈렸다. 내가 만든 영화들은 마지막에 관객이 스스로 무언가를 갖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가 ‘모테키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굉장히 흥행했는데 이런 성공을 처음부터 예상했나?
카와무라 겐키: 사실 기획을 시작할 때는 결과를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부터 시작할 뿐이다. 다만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닿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여러 시도를 하게 된다. 각본을 만들 때, 캐스팅을 할 때, 카메라 감독을 정할 때, 음악을 넣을 때 각 단계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세계, 이를테면 지금 일본의 인디 음악이나 서브 컬처의 중요한 씨앗이 된 요소들을 토호라는 메이저 회사를 통해 풍성한 결과로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쉽게 질리는 편이라 새로운 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타입”
확실히 부터 , 과 등 그간 당신이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은 토호의 색깔과 다른 것은 물론 기존의 일본 상업 영화의 궤적 안에서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카와무라 겐키: 27살에 을 처음 기획했다. 시작부터 인터넷 게시판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로 만든다는 특이한 시도를 할 기회가 있었던 거다. 의 경우도 데스 메탈 음악 이야기인데 나는 이것을 독립 영화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도 내용만 놓고 보면 상업 영화로 만들어지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메이저 회사에서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이런 엔터테인먼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은 해외에서도 여러 상을 받았고 이런 일본 영화도 있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은 분들이 많았다. 명백히 대중적인 소재와 이야기를 메이저 회사의 예산과 규모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디의 정체성을 가진 이야기를 가능한 메이저 회사의 타이틀로 만들어 나가는 것, 이것이 프로듀서로서 나의 정체성인 것 같다.
토호라는 업계 1위의 메이저 회사에 당신 같은 프로듀서가 있다는 게 의외다.
카와무라 겐키: 기획으로 승부하는 타입의 프로듀서인건데 나는 일본에서도 “특이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웃음) 이게 가능한 이유가 토호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나 포켓몬스터 시리즈 같은 크고 안정적인 타이틀을 여러 편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들을 통해 흥행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나 같은 프로듀서가 할 수 있는 시도들이 있는 것이다.
당신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자신만 경쟁력이 무엇이라고 보나?
카와무라 겐키: 나는 쉽게 질리는 편이라 어쨌든 새로운 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의 기반이 된 서브 컬처도 원래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의 경우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나온 작품이다. 나는 관심사가 넓고 취미가 많다. 음악도 좋아하고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를 다 좋아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아이템을 모아서 감독, 배우와 음악 등 모든 요소를 가장 좋은 조합으로 구성하고 또 가장 좋은 타이밍에 영화로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테마와 감독의 작가성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감독을 고를 때부터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많이 신경 쓴다. 확실히 은 나카시마 테츠야의 색깔이 더해져서 영화가 더 특별해진 것 같다.
카와무라 겐키: 은 좀 이상한 이야기지만 관객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시대적인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감독을 고를 때부터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특히 상당히 어두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갖고 있는 풍성한 영상미와 음악 센스로 이를 돌파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 공개되었을 때 평론가들로부터 “저런 건 영화가 아니다. 뮤직 비디오다” 같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된 초반의 30분이야말로 의 정수가 아닌가?
카와무라 겐키: 확실히 영화적이지는 않았으니까. 좀 더 스토리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평론가들한테 혹평을 받아도 흥행에 성공하기도 하고 의외로 해외에서는 굉장히 높이 평가받기도 하는 법이니까. 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니까. (웃음)
일본은 영화 뿐 아니라 만화, 소설 등 서사를 갖고 있는 콘텐츠가 무수히 많다. 이것들이 영화를 만드는데 좋은 소스인 동시에 지나치게 원작에 종속된 영화들이 많다는 평가도 있다.
카와무라 겐키: 확실히 일본은 이야기의 형태를 가진 아웃풋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영화가 ‘one of them’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연히 만화나 소설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애니메이션이 더 좋은 사람도 있다. 반면에 한국은 다른 것에 비해 영화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크리에이터와 작품이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하지만 나는 프로듀서기 때문에 솔직히 오리지널 시나리오든 원작이 있든 전혀 상관이 없다. 어쨌든 재미있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원할 뿐이다. 그럼 그 많은 소설과 만화 원작들 중 영화로 만드는 작품들은 어떤 기준에서 고르나?
카와무라 겐키: 영상으로 표현될 때 원작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점이 있거나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이 캐릭터가 필요해!” 같은 마음에서 원작으로 삼을 때가 있지 않나. 특히 만화는 우리처럼 각본이라는 문자의 세계관에 갇힌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발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나오는 캐릭터 발상이 전혀 다른데 그런 새로움이 필요하다. 도 그림에서 탄생한 캐릭터가 있고 거기서 이야기가 확장된다.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 캐릭터들은 문자로부터는 탄생할 수 없다.
“미래가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지금 세대의 공통된 테마”
많은 관심사 중 왜 하필이면 영화를, 그 중에서도 프로듀서를 하고 싶었나?
카와무라 겐키: 만화도 소설도 음악도 영상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집어넣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영화니까. 게다가 관객이 돈을 지불하고 일부러 영화관까지 와서 재미있거나 재미없거나 어쨌든 2시간 동안 앉아서 봐야 한다는 꽤 허들이 높은 엔터테인먼트라는 점이 나에게는 오히려 재미있다고 할까. 그리고 현장에서 집중해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재미도 물론 있겠지만 나는 조합하는 게 더 좋았다. 내 안에 있는 많고 넓은 관심사를 엮어내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만든다는 것은 역시 프로듀서가 아니면 안 된다.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다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 J.J 에이브람스 같은 사람 정도라고 보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영화계는 자국 내 영화 팬들이 갈수록 적어진다고 들었다. 글로벌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타깃이 넓어지는 만큼 기획 단계에서 고려할 부분도 많아지지 않나?
카와무라 겐키: 물론 그렇다. 하지만 노린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예를 들어 이나 같은 작품이 글로벌 마켓을 의식하고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 해외에서 굉장히 흥행했지만 제작 단계에서는 그런 부분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월드 와이드가 되기보다 자신들의 발밑을 응시하는 쪽이 세계의 관객에게도 재미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슈퍼 도메스틱(Super Domestic)’이라고 할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 자기 나라에 있는 문제를 얼마나 제대로 바라보고 만들어 내느냐가 결과적으로 힘을 가진다고 본다. 왕가위의 영화도 그랬고 봉준호 감독이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영화도 그렇다. 그래도 이렇게 영화제에서 해외 관객을 만나면 ‘역시 통한다’ 싶은 부분만큼 ‘아, 다르게 받아들이는구나’ 싶은 부분도 있지 않나?
카와무라 겐키: 의 경우, 한국 남성들은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소심하지 않다고 알고 있다. 이런 남자는 인기가 없지 않나? 하지만 연애에 있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콤플렉스 같은 건 통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그래서 연애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버둥거리는 느낌은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았다. 사실 외국 영화를 볼 때는 어쩔 수 없는 위화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같은 아시아인들이 미국 영화를 볼 때도 ‘미국적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중심에 있는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면 재미있게 보지 않나. 나라가 다르다고 해서 굉장히 다르게 받아들여지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 영화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업계의 프로로서 당신이 볼 때 한국 영화는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나?
카와무라 겐키: 최근에는 역시 한국 영화에서 자극을 받는 경우가 진짜 많다. 특히 은 2000년대 10년 간 세계에서 넘버원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창동 감독의 이나 김기덕 감독의 도 좋아한다. 이창동 감독은 캐릭터의 강렬함이 압도적이다. 매 번 그의 영화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정도까지 파워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일본인은 만들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 마음은 여전한가? (웃음)
카와무라 겐키: 물론이다. (웃음) 봉준호나 나홍진 같은 새로운 세대의 감독과 나 같은 세대가 느끼는 세계에 대한 위화감이 통한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같은 영화에서도 느껴지는, 미래가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 더 이상 세상이 좋아질 것 같지 않은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 공통된 테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에서 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언젠가 꼭 그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예를 들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카와무라 겐키: 지금 일본이 원전 문제를 겪고 있는데 이걸 일본인이 스스로 영화로 만드는 것이 내게 있어서는 지나치게 생생하고 직접적이라 어렵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미국인은 를 찍을 수 없는 것처럼. 의 조커는 9.11이라는 미국인이 갖고 있는 공포의 상징이라고 본다. 이를 당사자인 미국인은 그려낼 수 없지 않을까? 영국인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찍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봉준호 같은 이웃 나라의 감독이 와서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를 둘러 싼 여러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보고 찍는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누가 봉준호 감독에게 얘기를 해주지 않으려나? 촬영이 어서 끝나야 할 텐데. (웃음)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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