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이 있다. 괜히 한 번 트집 잡고 싶고, 나한테 아무리 억울하다고 따져도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커녕 키득키득 웃음부터 나오게 하는 사람. 덩치가 커서도, 성격이 과묵해서도 안 된다. 대신 장난기 많은 남동생 같은 이미지를 풍겨야 한다. 딱, 개그맨 박성광이다. “당해도 불쌍하다고 생각 안 하고, 불쌍해도 맞는 게 웃긴 캐릭터를 많이 했어요. 개그에서는 진짜 갖기 어려운 장점이죠.” 웃길 수만 있다면 못생긴 얼굴이나 뚱뚱한 몸매도 운명이자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개그맨에게 자신이 잘할 수 있고, 그래서 꾸준히 쌓아 온 캐릭터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보물이다. KBS 무대에서 박성광은 늘 억울한 캐릭터였다. 알코올에 의존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외칠 정도로 세상에 불만이 많았고(‘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여자친구의 속내를 모르는 것도 억울한데 무조건 내 잘못으로 몰아가는 상황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우리 성광 씨가 달라졌어요’) 안쓰러운 남자였다. ‘발레리NO’도 박성광 특유의 억울한 표정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민망한 소재를 다룸에도 보기 불편한 코너가 아닌, 발레리노들의 ‘똥줄 타는’ 긴장감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건 그래서다.
최근 박성광은 뮤지컬 의 아부쟁이 영업과장 역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 은갈치 양복에 빨간 넥타이, 촌스러운 잠자리 안경만으로도 얄미운 직장상사 스타일이 완성되는데, 여기에 박성광이 에서 쌓아 온 캐릭터가 더해지니 영락없는 박 과장이다. “실없는 말 많이 하고, 성질부리고, 틱틱 거리고, 놀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약간 까불까불 하다는 점이 나랑 아주 비슷한 것 같아요. 대신 이번에는 술 취한 부분이 안 나오더라고요. 오히려 사장이 취해서 말리는 역을 하게 됐는데 해보니까 내가 할 때 받아주는 사람들이 엄청 힘들었겠구나 싶어요. (웃음)” 계속해서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는 박성광은 “피곤해도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지, 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뮤지컬 무대에 대한 애착이 크다. 최근까지 KBS 과 영화 촬영, 뮤지컬 연습을 병행하느라 바쁜 와중에 자신이 자주 듣는 음악 다섯 곡을 추천해왔다.
1. 버벌진트(Verbal Jint)의
“요즘 엄청 꽂혀 있어요. 처음에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어요. 신선하기도 하고, 어둡고 공격적인 단어사용도 인상적이더라고요.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해요.” 박성광의 첫 번째 추천 곡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는 최근 tvN 에서 차치수(정일우)가 양은비(이청아)에 대한 마음을 ‘모욕감’이라 정의할 때 갑자기 툭 튀어나오면서 더욱 화제가 된 곡이다. 버벌진트는 이번 앨범 에 대해 “이성에게 끼 부리는 제 평소 태도가 반영”된 앨범이라 말했다. ‘넌 나란 남자에게 모욕감을 줬어 / 내 자신을 탓해도 늦었어’라는 임팩트 있는 오프닝과 직설적인 랩 가사가 인상적이다. 2. 이석훈의
박성광의 두 번째 추천 곡은 이석훈의 첫 솔로 앨범 에 수록된 ‘안녕…열렬한 사랑이여’다. “라이브로 들었을 때 정말 좋았어요. 목소리도 좋고, 가사도 좋잖아요. 제목 보세요, 제목부터 확 와 닿지 않나요?” 녹음을 단 10분 만에 끝낸 것으로 알려진 ‘안녕…열렬한 사랑이여’는 이별한 남자의 감정이 과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더 쓸쓸함이 묻어나는 노래다. 비록 타이틀곡 ‘정거장’보다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번 들으면 계속 듣게 되는 힘이 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열창하기보다는 누군가가 옆에서 나지막이 읊조리는 느낌의 곡인데, 그 절제된 분위기가 청자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3. 슈퍼주니어의
최근 종영한 에서 군산서 순경 김대성 역을 맡았던 박성광은 함께 출연한 배우 최시원이 속한 그룹 슈퍼주니어의 ‘Mr. Simple’을 추천했다. “(최)시원이랑 드라마 을 촬영하면서 이 친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어요. 차가워 보였는데 엄청 착하더라고요. 교회도 진짜 열심히 다니고. 저랑 비슷한 것 같아요. (웃음)” ‘Mr. Simple’이 공개된 후 슈퍼주니어의 과거 히트곡 ‘Sorry Sorry’와 ‘미인아’와 비슷한 느낌의 곡이라는 지적이 많았으나, 리더 이특이 직접 “끝까지 들어보시면 그 곡들과 또 다른 새로운 느낌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어쨌든 슈퍼주니어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곡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4. 김광석의
“군대 선임이 강타의 ‘스물 셋 (My Life)’이라는 노래를 듣더라고요. 그때 전 스물한 살이었는데, 스물셋이 되면 제가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진짜 스물셋이 됐을 때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었는데, 서른은 저한테 죽어도 안 올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장송곡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런데 스물여덟 살 때부터 이 노래의 진가를 알게 됐어요.” 2012년을 앞두고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에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요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만큼 복잡한 마음을 잘 설명해주는 곡이 또 있을까.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조금씩 잊혀가고,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점점 더 멀어져간다. 꼭 서른 즈음의 나이가 아니더라도, 지나간 청춘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저리게 공감할만한 가사다. 5. Stevie Wonder의
“뮤지컬은 드라마가 중심이 되면서도 음악이나 춤으로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해서 개그나 연극과는 또 다르다”라며 힘들더라도 노래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박성광의 마지막 추천 곡은 ‘Lately’다. 우리나라 가수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팝송 중 하나다. 성시경과 김범수는 각각 와 앨범에 ‘Lately’ 리메이크 곡을 수록했고, 한국의 스티비 원더라 불리는 김건모를 비롯해 휘성, 박효신, 준수 등이 무대에서 부른 바 있다. 자신에게서 마음이 떠난 여자를 바라보며 이별을 예감하는 남자의 마음을 가사로 써내려갔지만, 안타까운 가사와는 별개로 멜로디가 참 아름다운 곡이다.
개그맨들이 드라마, 영화, 뮤지컬 영역에 진출할 때 주로 코믹연기나 감초 연기를 맡는 것에 대해 박성광은 “운명”이라 말한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근데 개그맨을 했기 때문에 이런 기회도 주어지는 거고, 극복하는 수밖에 없죠. 실력이 못나서라기보다는 역할이 그런 거니까 익숙해져야 하고요.” 비록 지금은 뮤지컬에 집중하며 연기에 대한 갈증을 채우고 있지만, 틈틈이 복귀도 준비하고 있다고. “드라마, 영화, 뮤지컬 하는 와중에 행사도 다녔어요. 로 복귀했는데 연기하다가 잘 안돼서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정신도 없고, 노래도, 춤도 힘들지만, 열심히 하고 있어요.”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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