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회 월 EBS 저녁 8시
사소한 일까지 다 기억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순간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가 바로 아이들이다. 그래서 동물을 키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내겠다는 기획의도와 ‘일기’라는 제목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14살 주완은 생후 6개월까지 “자기가 싼 똥을 먹던”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구찌’ 때문에 고생했던 때를 자세히 설명하고, 이름을 ‘구찌’로 지은 이유에 대해 주완이 “엄마가 명품 백을 들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말하자 동생 12살 은주는 “그 때 엄마의 속마음을 알게 됐다”고 받아친다. 남매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가는 는 아이와 동물이 함께 노는 훈훈한 장면보다는 동물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에 더 집중한다.

한창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나이에 누군가를, 그것도 말 못하는 동물을 키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남매는 예전과 달리 좀처럼 손을 내주지 않는 ‘구찌’의 반항을 “요즘 사춘기가 와서 자존심이 세진 것”이라 이해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구찌’의 모습을 강요하지 않고 ‘구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사료를 먹지 않을 땐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사과를 건네고, 한창 이성에게 관심 많은 시기임을 고려해 미리 점 찍어둔 “신랑감”인 ‘샤방이’와의 데이트 자리까지 마련한다. 현재 사춘기를 겪고 있거나 이미 지나보냈을 남매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구찌’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춘기 자녀가 어느 날부터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화부터 내거나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는 부모들을 떠올려보면 주완이와 은주의 행동은 놀라우면서도 기특하다. 를 단지 귀엽고 천진난만한 일기장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쓰고 어른들이 새겨들어야 할 일기다.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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