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주먹을 버리고 서부마을로 도망친 전사가 그 곳 사람들과 지내면서 따뜻한 사람으로 변하지만, 악당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과의 약속을 깨고 씁쓸한 최후를 맞이한다. 9일 제 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작발표회를 가진 는 큰 그림만 놓고 보자면 전형적인 서부영화라 할 수 있겠지만, 이승무 감독은 “기존 서부영화와는 반대로 동양인이 서양의 공간을 구원하는 이야기”로 전복을 시도한다. 그런 면에서 는 서부영화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황야의 석양 외에도 “와일드한 서부와 환상적인 동양”이 결합된 영상을 보여준다. 가령 안개 자욱한 산을 등지고 전사가 칼날을 휘두르는 장면은 동양 산수화 같고, 전사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아이는 늘 밝은 원색톤의 배경과 함께 등장한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도 아닌 종합적인 동양의 판타지”는 영상 뿐 아니라, 전사의 외형적인 모습이나 검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감독은 “어느 나라에도 저런 무사는 없을 것이다. 옷이나 액션을 디자인할 때도 특정 국가를 떠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 , 를 제작한 배리 오스본이 이승무 감독의 를 선택했으며, 강한 동양전사 역에는 장동건이 캐스팅됐다. 지극히 서부적인 공간을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전사와 사랑에 빠지는 소녀 린은 영화 의 케이트 보스워스가, 흉측한 얼굴로 서부마을을 위협하는 악당은 영화 의 대니 휴스턴이 소화할 예정이다. 가 또 하나의 서부영화에 머무를지 아니면 새로운 영화 문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서부 장르와 동양적 판타지, 거친 액션과 비극적인 사랑이 작품 안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공존하느냐에 달려있다. 올 12월,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개봉한다.
시나리오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이승무 감독: 보통 서구의 영화는 서양인들이 들어와서 동양인을 구한다는 설정인데, 왜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이 서양의 공간을 구제하는 얘기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영화기술과 문법으로 전형적인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다.

이번 작품은 배우 장동건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의 어떤 면을 보고 캐스팅하게 됐나.
배리 오스본: 주인공을 찾는 작업이 굉장히 어려웠다. 처음에는 강한 전사였다가 점점 여자와 아이 그리고 공동체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감정의 변화는 소화하기 어렵다. 영화 나 를 보면서 장동건이 전사 역할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제프리 러쉬와 연기, 굉장히 가슴 떨리는 경험”

그렇다면 배우로서 그런 역할을 소화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장동건: 전사는 감정의 변화를 곧이곧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평범하지 않은 무사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는데, 그 때의 표정이나 반응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사전에 감독님과 많은 조율을 거쳤다.

해외 촬영은 어땠나. 당신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사실상 동양인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셈인데.
장동건: 영화 현장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인종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예전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촬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국 배우와의 작업이 처음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특히, 제프리 러쉬와 함께 연기했던 건 굉장히 가슴떨리는 경험이었다.

국내 정상을 거쳐 이제 할리우드까지 진출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갈증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장동건: 다들 할리우드 진출에 초점을 두는데, 개인적으로는 그저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 그리고 앞으로 해나가야 할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배우로 살아오면서 한 가지의 목표를 이루려고 살아왔던 것 같지도 않고, 아직까지 뭘 이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아기 아빠가 된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장동건: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의 기분은 정말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좋다는 말보다는 이상하다는 느낌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아이는 우리를 반반씩 닮았는데, 신생아인데도 이목구비가 아주 뚜렷하고 병원에서 근래에 보기 드문 얼굴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웃음) 아기 이름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세 개의 후보 중에서 선택할 생각이다.



글. 부산=이가온 기자
사진. 부산=채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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