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어린이 수술기금 횡령사건‘, 이제는 깨끗하게 해결되신 건가요?“
얼마 전 KBS 에 출연하신 이상용 선생님께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했다며 MC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저 역시 그제야 ‘맞다, 그 때 그 사건은 어떻게 된 거지?’ 했습니다. 1996년 11월에 MBC 녹화 중 도중 하차하셨다니 무려 15년 전의 일이네요. 좋은 일 하는 줄만 알았던 뽀빠이 이상용이 엄청난 공금을 착복했다며 세상이 온통 떠들썩했던 것도 기억나고, 심지어 재단의 도움으로 심장병 수술을 받은 어린이들이 모여 구명운동을 벌였다는 것까지 기억나는데 수사 결과만큼은 도무지 기억이 없더군요. 당시 뉴스와 기사를 보고는 ‘그렇게 청렴하다더니 웬일이래.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니까’ 하고 말았던 것 같아요.
모른 척 했던 지난 날을 사과드립니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 결과는 명백한 무혐의였다지요? 수사를 맡은 검사가 속속들이 뒤져보더니만 어떻게 이리 실속 없이 살았느냐, 위에서는 구속하라는 압박이 있지만 내가 옷을 벗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막아주겠다고 나서서 무혐의 처리될 수 있었다고요? 하늘이 도우신 일이지 뭐겠어요. 그러나 누명을 벗은 건 천만다행이었지만 언론이 정정보도에 태만했던지라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선생님의 무고함을 알지 못한 채 살아온 거 아니겠습니까. 정정 보도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과 동시에 8년 째 인기리에 방송되던 MBC 에서 바로 하차하셨고 프로그램 자체가 하루아침에 폐지되어 버렸으니 명예 회복을 할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던 거죠. 아마 몇 달 후 를 통해 복귀하셨다면 만 천하에 억울함을 알릴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다면 누가, 왜, 무슨 이유에서 그 같은 허무맹랑한 사건을 일으켰던 걸까요?
워낙 이미지가 좋다보니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수차례 받았으나 그때마다 ‘나는 단 몇 년이 아니라 평생 사랑 받고 싶다’며 거절해온 끝에 생긴 일이라 정치성 보복이라는 설은 있지만 확인할 길이 있어야죠. 뭔가 막고 싶은 크나큰 사건이 있기에 그를 덮을만한, 사회에 파장을 일으킬만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터트린 게 아닌가 싶지만 그 또한 확인할 길이 없고요. 그러다 2005년 시골 어르신들의 삶을 돌아보는 MBC 으로 돌아와 지금껏 진행하고 계시지만 고백하자면, 늘 그렇듯 문제 있는 연예인의 어영부영한 복귀쯤으로 여겼고, 그래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또한 몇 년 전부터 간혹 억울하심을 토로하는 기사를 언뜻, 언뜻 보긴 했어도 그 역시 무심히 넘겼어요. 그 점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우리는 내가 안 한 말을 누가 했다고 우겨도 복장이 터질 판인데 그토록 억울한 일을 당하셨건만 내 일 아니라고 나 몰라라 했으니 어찌나 송구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아드님의 무고함을 널리 알리고자 무혐의를 입증해주는 문서를 복사해 대전역에서 나눠주시던 아버님께서 화병으로 그만 돌아가셨다는 얘길 듣고 나니 더욱 마음이 아프더군요. 부디 지금처럼만 우리 곁에 남아주세요
그러나 선생님은 무너지지 않으셨어요. 한 동안은 미칠 듯 괴로웠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여행 가이드 생활을 하셨다는 말씀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인기 MC가 여행 가이드를 할 결심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예요. 게다가 쉰을 훌쩍 넘는 연세였으니 보통 사람 같으면 체면 때문에라도 엄두를 못 낼 일이고요. 매일 14시간 30분의 버스 투어로 단 하루를 쉬지 않고 13개월 동안 미국 전역을 돌고 도셨다는데, 가족을 향한 그 책임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잠깐의 실패와 좌절에도 폐인이 되고 마는 많은 심약한 이들에게 귀감이 될 얘기였어요.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매일 아침 60kg 역기를 50개씩 들어 몸과 마음 모두가 건강한 선생님의 삶은 의 초보 MC 네 사람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을 겁니다. ‘강호동과 유재석 중 누가 오래 갈까요?’라는 우문에 ‘오래 사는 놈이 오래 갈 것’이라 답하신 재치를 비롯하여 두루 피가 되고 살이 될 교훈을 많이 남기신 점, 아마 잊지 못하겠지요. 15년간의 KBS , 8년간의 , 그리고 6년 째 진행하고 계신 등, ‘장수 MC’라는 수식어가 허명이 아님을 증명하는 자리였으니까요. 모처럼 존경할 수 있는 어르신을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70에 가까운 노장께 심야 골든타임을 기꺼이 할애해드린 제작진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부디 지금과 같은 마음 오래도록 지켜주시길 부탁드려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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