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는 표민수 감독이 공표했던 대로 “시트콤과 드라마의 경계에 존재”한다. 그것은 시트콤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송재정 작가와 드라마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낸 표민수 감독의 만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 인물들은 다분히 시트콤적이다. 가식과 까칠함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진수(강지환)와 맨손으로 살쾡이도 때려잡는 승연(함은정), 일에서는 완벽한 프로처럼 보이지만 사랑에선 서툴기 짝이 없는 은영(박시연)과 지원(정웅인)까지. 다들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을 배반하며 웃음을 만들어내는 이들이다. 그들이 부딪치며 튀어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시트콤이 노리는 코미디에 가깝다. 그러나 네 남녀들이 그동안 외면했던 사랑의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면 상황은 멜로드라마로 급변할 수밖에 없다. 이 시트콤과 멜로드라마의 간극을 는 어떻게 채워갈까? 위근우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를 말한다. /편집자주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 날, 사는 게 재미가 없는 승연(은정) 홀로 오도카니 지키고 있던 ‘궁전 커피’에 비에 젖은 남자가 들어온다. 승연은 그 상황이 순정 만화라면, 그 남자와 자신이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라면? 나중에 사랑에 빠지게 되든 어떻든, 일단 승연이 그 남자와 티격태격 다투게 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승연은 그가 화를 내기에 충분할 만큼의 민폐를 끼치게 된다. 하지만 그 남자 진수(강지환)는, 화를 내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웃으면서 예의 바르게 승연을 도와준다. 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만나는 첫 시퀀스에서부터 클리셰에 가까운 상황을 만들어놓고서도 인물들의 행동에서 예상한 바를 아주 조심스럽게 비껴나간다. 수많은 드라마에서 반복 되어온 ‘나다운 게 뭔데?’ 같은 대사가 등장할 타이밍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은영(박시연)은 쿨한 게 매력인데, 계속 아프고 울면 매력이 없지.” 은영은 진수의 이 말에 뻔하게 받아치는 대신 “뭐이래, 억울하다. 괜히 쿨하게 컨셉 잡아서”라고 정말 쿨하게 대답한다. 물론 이런 장면들만으로 가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와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로부터 의 매력이 시작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살아있는 캐릭터가 변화해간다
는 철저히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잘생기고 매너 좋고 겸손하기까지 한” 베스트셀러 작가 이진수가 실은 “미칠락 말락”하는 “개쓰레기 개그지”였던 것처럼, 속 인물들은 대개 이중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개중 멀쩡해 보이는 은영도 그렇다. “가만히 보면 민폐녀 스타일”이라며 은근히 승연의 흉을 보다가, 바로 자신이 샤워하다 넘어져 진수에게 민폐를 끼치고 마는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성공한 쿨한 여성’의 그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일단은 일 잘하고 유능한 것으로 묘사되는 지원(정웅인)은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가장 찌질하고 못난 모습을 보이며, 멋진 수석 바리스타 동욱(박재정)이 과묵한 이유는 심각한 사투리 때문이다. 반대로 민폐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을 것만 같았던 승연은 의외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분명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캐릭터는 변화의 여지를 차단한 평면적인 것이 아니다. 이들은 틀에 갇히지 않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자유롭게 오간다. 시트콤처럼 캐릭터 위주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점차 미니시리즈에 어울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가도, 인물들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는 이야기 속에 어울리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캐릭터가 변화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다. 그래서 는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소재가 비슷한 작품들과 차별화 되는 성장담이 될 기회를 얻는다. 만약 다른 드라마였다면 승연의 캐릭터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마추어였다가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프로 비서’가 될 만 한 잠재된 재능을 펼쳐 나가는 방향으로 변해갔을 것이다. 하지만 승연은 처음부터 자신이 견지했던 바,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승부를 보고 있다. 그 캐릭터의 방식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녀는 진수가 “미련하다”고 표현한 바로 그 우직함으로 현미경을 보고 따라 깎아서라도 진수와 똑같은 방식으로 연필을 깎으며 그에게 맞추어간다. 의 성장은 아마추어가 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나 다운 나’가 되는 것이다. 일적인 면에서 프로가 되는 것만이 성장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글만은 꾸준히 쓰는 진수나, 이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은영과 지원에게 성장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입체적이되 불완전한 것으로 묘사되는 이들의 캐릭터는 캐릭터 그 자체 내에서 ‘더 나아질 여지’를 비워 놓고, 성장하고 변화해 간다.
가 끝까지 지켜야할 진짜 매력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인물들을 성장하고 변화하게 만드는 동력이 ‘사랑’ 밖에 없다는 게, 이제 천천히 드라마로 진입해가는 가 맞닥뜨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캐릭터의 매력에만 기대어 러브라인에 이야기를 집중시키는 드라마는 단조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영의 말만 듣고 마지막 단계만 남긴 도미노를 무너뜨린 승연에게 진수는 말했다. “이제는 라인도 못 타는 거야? 누구 줄에 서야 살아남을 지 판단이 안돼?” 이 부분에서 승연은 은영의 줄에 섰다는 이유로 잠시 해고까지 되는 끔찍한 상황을 견뎌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 때 승연의 상황처럼 누구 줄에 서야 살아남을지를 판단하는 것만이 의 전부인 상황이 온다면, 그건 곧 이 드라마가 가진 진짜 매력과 재미가 사라져 버렸다는 의미다. 누가 누구와 연결 되느냐에만 온 힘이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들이 에서 어떻게 자신의 방식대로 살고 사랑하는지를 지켜보게 하는 것, 그게 라는 드라마가 “척하면 착”하고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글 윤이나
“척 좀 하지 마, 제발. 엄청 진심인 척.” 은영(박시연)은 툭하면 진수(강지환)에게 말한다. 은영이 과거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지겨운 진드기일 뿐인 지원(정웅인)의 등장에 고민하거나 샤워 중 넘어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진수는 은영에게 평소보다 친밀한 태도를 보이고, 그 때마다 은영은 ‘척’ 좀 하지 말라고, 가식적으로 굴지 말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은영 역시 자기 생일 챙기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진수를 위해 별다른 축하를 해주지 않고, “몰라줘야 좋아하는데 어떡해? 모르는 척 해야지”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서로를 위해 종종 연기를 한다. 이런 이중적 관계 안에서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사건을 통해 SBS 의 서사 역시 두 개 층위로 진행된다.과거가 만들어낸 가면 놀이 vs 추억을 만들어가는 현재
굳이 “는 시트콤과 드라마의 경계에 존재하는 작품”이라는 표민수 감독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들고양이를 잡으려다 살쾡이를 잡아온 승연(함은정)의 에피소드와 다분히 멜로드라마적인 진수와 은영의 관계에서 두 개 장르의 혼재를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물론 코믹한 소동극과 진지한 멜로를 동시에 시도한 작품은 무수히 많았다. 가 흥미로운 건, 그 두 가지 세계를 연결하는 방식 때문이다. 앞서 말한 진수와 은영의 서로에 대한 연기는 상대방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감정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은영의 오랜 친구이자 진수의 죽은 부인인 희수를 사이에 둔 둘의 관계에 대해 사람들은 “작가와 출판사 사장 관계, 딱 거기까지만”(지원)을 허용하고, 그 때문에 “갑과 을, 고용인과 피고용인, 웬수”로 맺어진 가면 놀이를 통해서만 둘은 자신들의 감정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즉 실제로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인 그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연출한다.
하지만 단지 거기서 그쳤다면 는 흥미로운 설정을 무한 반복하는 함정에 빠졌을지 모른다. 얼핏 수많은 캔디 캐릭터의 변주 정도로 보이는 승연의 존재가 전체 서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 이 지점이다. 진수에게 “미련한 게 장점”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우직한 ‘생 아마추어’ 비서는 스스로 필요하다 여기면 진수가 하지 말라는 일도 기어코 벌이며 그가 그어놓은 선 안쪽으로 계속해서 들어온다. 오랜 지인인 은영과 지원, 그리고 출판사 직원들에게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진수가 승연에게만큼은 진심으로 화를 내거나 웃어주는 건 그래서다. 은영이 “대단하네요. 난 갈수록 힘들던데”라며 승연과 진수의 관계를 부러워한 건 빈말이 아니다. “변하는 게 사람이야. 이 개그지야!”라고 일갈했지만 정작 본인도 과거의 기억과 감정 안에서 진수와의 가면 놀이를 하는데 그쳤던 그녀에게, 승연과 진수가 만드는 현재진행형의 소소한 사건은 부러울 수밖에 없다.
, 진짜 멜로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를 이끄는 건, 튼튼하다고 믿었던 두 가지 세계 사이 벽의 균열이다. 그리고 그 균열 안에서 이 작품이 품고 있던 멜로드라마의 속살은 온전히 드러난다. 이제 은영은 자신을 돈독 오른 사장으로 대하는 진수의 태도에 의연할 수 없고, 흔들리는 은영의 태도를 감지한 진수 역시 자신의 호텔방에 잠든 은영을 농담으로만 대할 수 없다.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눈빛이 다를” 수 있느냐는 은영의 말은 이제 아무 일 없었던 척 시트콤 놀이를 하는 건 불가능해졌다는 걸 뜻한다. 자칫 빤해 보일 수 있는 은영의 기습 키스가 가벼이 느껴지지 않는 건 그래서다. 감정의 둑은 무너졌고 이제 남은 것은 서로의 감정 혹은 자신의 감정과의 힘겨운 대면이다. 시트콤의 외피가 붕괴되며 정확히 반환점을 돈 이 작품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한 건 그래서다. 둘 사이에 승연과 지원, 동욱이 낀 오각 관계의 결말이 궁금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겠지만, 덕분에 그들은 온전히 현재를 사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현재진행형의 뜨거움을 안고 는 피상적이지 않은 진짜 멜로를 보여줄 수 있을까.
글 위근우
글. 위근우 eight@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 날, 사는 게 재미가 없는 승연(은정) 홀로 오도카니 지키고 있던 ‘궁전 커피’에 비에 젖은 남자가 들어온다. 승연은 그 상황이 순정 만화라면, 그 남자와 자신이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라면? 나중에 사랑에 빠지게 되든 어떻든, 일단 승연이 그 남자와 티격태격 다투게 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승연은 그가 화를 내기에 충분할 만큼의 민폐를 끼치게 된다. 하지만 그 남자 진수(강지환)는, 화를 내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웃으면서 예의 바르게 승연을 도와준다. 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만나는 첫 시퀀스에서부터 클리셰에 가까운 상황을 만들어놓고서도 인물들의 행동에서 예상한 바를 아주 조심스럽게 비껴나간다. 수많은 드라마에서 반복 되어온 ‘나다운 게 뭔데?’ 같은 대사가 등장할 타이밍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은영(박시연)은 쿨한 게 매력인데, 계속 아프고 울면 매력이 없지.” 은영은 진수의 이 말에 뻔하게 받아치는 대신 “뭐이래, 억울하다. 괜히 쿨하게 컨셉 잡아서”라고 정말 쿨하게 대답한다. 물론 이런 장면들만으로 가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와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로부터 의 매력이 시작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살아있는 캐릭터가 변화해간다
는 철저히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잘생기고 매너 좋고 겸손하기까지 한” 베스트셀러 작가 이진수가 실은 “미칠락 말락”하는 “개쓰레기 개그지”였던 것처럼, 속 인물들은 대개 이중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개중 멀쩡해 보이는 은영도 그렇다. “가만히 보면 민폐녀 스타일”이라며 은근히 승연의 흉을 보다가, 바로 자신이 샤워하다 넘어져 진수에게 민폐를 끼치고 마는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성공한 쿨한 여성’의 그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일단은 일 잘하고 유능한 것으로 묘사되는 지원(정웅인)은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가장 찌질하고 못난 모습을 보이며, 멋진 수석 바리스타 동욱(박재정)이 과묵한 이유는 심각한 사투리 때문이다. 반대로 민폐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을 것만 같았던 승연은 의외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분명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캐릭터는 변화의 여지를 차단한 평면적인 것이 아니다. 이들은 틀에 갇히지 않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자유롭게 오간다. 시트콤처럼 캐릭터 위주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점차 미니시리즈에 어울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가도, 인물들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는 이야기 속에 어울리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캐릭터가 변화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다. 그래서 는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소재가 비슷한 작품들과 차별화 되는 성장담이 될 기회를 얻는다. 만약 다른 드라마였다면 승연의 캐릭터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마추어였다가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프로 비서’가 될 만 한 잠재된 재능을 펼쳐 나가는 방향으로 변해갔을 것이다. 하지만 승연은 처음부터 자신이 견지했던 바,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승부를 보고 있다. 그 캐릭터의 방식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녀는 진수가 “미련하다”고 표현한 바로 그 우직함으로 현미경을 보고 따라 깎아서라도 진수와 똑같은 방식으로 연필을 깎으며 그에게 맞추어간다. 의 성장은 아마추어가 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나 다운 나’가 되는 것이다. 일적인 면에서 프로가 되는 것만이 성장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글만은 꾸준히 쓰는 진수나, 이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은영과 지원에게 성장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입체적이되 불완전한 것으로 묘사되는 이들의 캐릭터는 캐릭터 그 자체 내에서 ‘더 나아질 여지’를 비워 놓고, 성장하고 변화해 간다.
가 끝까지 지켜야할 진짜 매력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인물들을 성장하고 변화하게 만드는 동력이 ‘사랑’ 밖에 없다는 게, 이제 천천히 드라마로 진입해가는 가 맞닥뜨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캐릭터의 매력에만 기대어 러브라인에 이야기를 집중시키는 드라마는 단조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영의 말만 듣고 마지막 단계만 남긴 도미노를 무너뜨린 승연에게 진수는 말했다. “이제는 라인도 못 타는 거야? 누구 줄에 서야 살아남을 지 판단이 안돼?” 이 부분에서 승연은 은영의 줄에 섰다는 이유로 잠시 해고까지 되는 끔찍한 상황을 견뎌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 때 승연의 상황처럼 누구 줄에 서야 살아남을지를 판단하는 것만이 의 전부인 상황이 온다면, 그건 곧 이 드라마가 가진 진짜 매력과 재미가 사라져 버렸다는 의미다. 누가 누구와 연결 되느냐에만 온 힘이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들이 에서 어떻게 자신의 방식대로 살고 사랑하는지를 지켜보게 하는 것, 그게 라는 드라마가 “척하면 착”하고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글 윤이나
“척 좀 하지 마, 제발. 엄청 진심인 척.” 은영(박시연)은 툭하면 진수(강지환)에게 말한다. 은영이 과거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지겨운 진드기일 뿐인 지원(정웅인)의 등장에 고민하거나 샤워 중 넘어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진수는 은영에게 평소보다 친밀한 태도를 보이고, 그 때마다 은영은 ‘척’ 좀 하지 말라고, 가식적으로 굴지 말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은영 역시 자기 생일 챙기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진수를 위해 별다른 축하를 해주지 않고, “몰라줘야 좋아하는데 어떡해? 모르는 척 해야지”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서로를 위해 종종 연기를 한다. 이런 이중적 관계 안에서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사건을 통해 SBS 의 서사 역시 두 개 층위로 진행된다.과거가 만들어낸 가면 놀이 vs 추억을 만들어가는 현재
굳이 “는 시트콤과 드라마의 경계에 존재하는 작품”이라는 표민수 감독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들고양이를 잡으려다 살쾡이를 잡아온 승연(함은정)의 에피소드와 다분히 멜로드라마적인 진수와 은영의 관계에서 두 개 장르의 혼재를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물론 코믹한 소동극과 진지한 멜로를 동시에 시도한 작품은 무수히 많았다. 가 흥미로운 건, 그 두 가지 세계를 연결하는 방식 때문이다. 앞서 말한 진수와 은영의 서로에 대한 연기는 상대방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감정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은영의 오랜 친구이자 진수의 죽은 부인인 희수를 사이에 둔 둘의 관계에 대해 사람들은 “작가와 출판사 사장 관계, 딱 거기까지만”(지원)을 허용하고, 그 때문에 “갑과 을, 고용인과 피고용인, 웬수”로 맺어진 가면 놀이를 통해서만 둘은 자신들의 감정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즉 실제로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인 그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연출한다.
하지만 단지 거기서 그쳤다면 는 흥미로운 설정을 무한 반복하는 함정에 빠졌을지 모른다. 얼핏 수많은 캔디 캐릭터의 변주 정도로 보이는 승연의 존재가 전체 서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 이 지점이다. 진수에게 “미련한 게 장점”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우직한 ‘생 아마추어’ 비서는 스스로 필요하다 여기면 진수가 하지 말라는 일도 기어코 벌이며 그가 그어놓은 선 안쪽으로 계속해서 들어온다. 오랜 지인인 은영과 지원, 그리고 출판사 직원들에게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진수가 승연에게만큼은 진심으로 화를 내거나 웃어주는 건 그래서다. 은영이 “대단하네요. 난 갈수록 힘들던데”라며 승연과 진수의 관계를 부러워한 건 빈말이 아니다. “변하는 게 사람이야. 이 개그지야!”라고 일갈했지만 정작 본인도 과거의 기억과 감정 안에서 진수와의 가면 놀이를 하는데 그쳤던 그녀에게, 승연과 진수가 만드는 현재진행형의 소소한 사건은 부러울 수밖에 없다.
, 진짜 멜로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를 이끄는 건, 튼튼하다고 믿었던 두 가지 세계 사이 벽의 균열이다. 그리고 그 균열 안에서 이 작품이 품고 있던 멜로드라마의 속살은 온전히 드러난다. 이제 은영은 자신을 돈독 오른 사장으로 대하는 진수의 태도에 의연할 수 없고, 흔들리는 은영의 태도를 감지한 진수 역시 자신의 호텔방에 잠든 은영을 농담으로만 대할 수 없다.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눈빛이 다를” 수 있느냐는 은영의 말은 이제 아무 일 없었던 척 시트콤 놀이를 하는 건 불가능해졌다는 걸 뜻한다. 자칫 빤해 보일 수 있는 은영의 기습 키스가 가벼이 느껴지지 않는 건 그래서다. 감정의 둑은 무너졌고 이제 남은 것은 서로의 감정 혹은 자신의 감정과의 힘겨운 대면이다. 시트콤의 외피가 붕괴되며 정확히 반환점을 돈 이 작품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한 건 그래서다. 둘 사이에 승연과 지원, 동욱이 낀 오각 관계의 결말이 궁금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겠지만, 덕분에 그들은 온전히 현재를 사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현재진행형의 뜨거움을 안고 는 피상적이지 않은 진짜 멜로를 보여줄 수 있을까.
글 위근우
글. 위근우 eight@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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