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철(박정범)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125’로 시작한다.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에게만 붙여지는 번호다. 목숨을 걸고 탈북했지만, 남한 사회에 진입하고 정착하기란 목숨을 내놓아도 어려운 일이다. 탈북자라는 꼬리표에 제대로 된 취업은 녹록치 않고 아르바이트 역시 위험을 무릅쓴 일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다. 차들이 쌩쌩 달려오는 추운 길에서 하루 종일 벽보를 붙이거나, 커터 칼을 들이밀며 생명을 위협하는 건달들과 싸워야 하는 전쟁 같은 일상. 찢겨진 포스터처럼 너덜거리는 삶의 백그라운드, TV 속 개그맨은 해 맑은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다. “다들 집에 10억쯤은 있잖아요!”
악이던 선이건 간에 절대적인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30년을 살았던 남자에게, 돈이 지배하는 이 무방비도시에서 나를 믿고 따르라고 말하는 예수님은 대안의 절대자다. 그리고 교회에는 한 여자가 있다. 비록 노래방을 운영하며 캔 2개로 맥주 3잔을 만들어내는 비법을 전수하고, 도우미 아가씨들을 부리는 현실의 ‘마리아’지만 그 모든 것이 “인간이 나약해서 짓는 죄”라고 기도하며 회개한다. 하지만 연정은 끝내 발화되지 못하고, 우정은 길바닥에 버려진다. 그저 길에서 주운 강아지 백구만이 이 땅에서 승철이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로 존재한다.
찬송가 속 레퀴엠
속 탈북자는 사람고기 먹어봤냐며 울며 포효하지 않는다. 총과 무술로 다져진 비장한 특수부원도 아니다. 그저 내 고향 함경도 무산엔 먹을 게 너무 없었다고, 배가 고파서 싸움을 했다고, 그러다 친구를 죽였노라고 덤덤하게 고해할 뿐이다. 영화는 섣부른 연민으로 감정적 강요를 가하지도, 탈북자들을 비극의 역사가 잉태한 피해자로서 비장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버려진 개처럼 도시를 쏘다니는 전승철의 삶을 함께 뛰며 혹은 멀리서 바라보며 기록한 차가운 일지, 혹은 사실적 일기에 가깝다.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을 거머쥐고, 제 40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대상, 제 13회 도빌아시안영화제 심사위원상 등을 수상하며 국, 내외적 찬사를 이끌어낸 무서운 데뷔작 는 감독 박정범이 대학시절 만난 친구 전승철의 삶에서 추출된 이야기다. 단편 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는 장편 에서 감독은 직접 승철을 연기한다. 노래방 도우미들에 둘러싸여 디스코리듬의 찬송가를 부르고, 해고당하고 나오는 길에도 배당된 광고전단을 뿌리는 이 요령 없는 남자가 세상에 이리 저리 치이며 만들어내는 엇박의 몸짓은 일견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후 한참동안 마음을 맴도는 것 역시 승철의 풀샷, 정확하게 그 몸의 움직임이다. 슬픔도 분노도 기쁨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얼굴과 달리 뭉툭하고 둔해 보이는 남자의 몸은 오히려 가장 선명하게 현재의 감정을 드러낸다. 철거촌에서 버려진 장롱에 관처럼 몸을 뉘인 승철과 백구, 쓰레기봉지를 뒤지는 백구를 발견하고 우두커니 쳐다보고 서있는 이들의 투 샷은 라스트신에서 서글프게 반복, 변주된다.
어느 밤, 무산에서 온 사나이는 무정한 도시의 네온사인 아래 선다. 죽은 것들을 등지고 삶을 택한 게 어디 이번이 처음이던가. 이 주검들은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이 거리를 뒹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산다.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
글. 백은하 기자 o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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