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의 ‘나는 가수다’는 자기모순의 쇼다. 최고의 연주자와 음향을 세팅한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박정현이 ‘비 오는 날의 수채화’의 하이라이트를 부를 때는 음악을 끊고 인터뷰를 집어넣는다. 중간평가 결과는 마치 가수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한 것처럼 그들이 혼자일 때 전달하지만, 실제 탈락자는 그들을 모아놓고 발표한다. ‘나는 가수다’는 가장 음악이 부각돼야할 때 예능의 불가피함을 늘어놓고, 가장 예능적이어야할 때 음악의 고귀함으로 회피한다. 지난 몇 달간 프로 가수들의 서바이벌을 홍보 포인트로 삼은 쇼가 김건모의 탈락에 재도전 기회를 준 건 판단미스에 의한 해프닝이 아니다. 최고의 가수들 중 누군가는 탈락한다. 예능과 음악이 정면충돌한 상황에서 ‘나는 가수다’는 둘 다 원했고, 둘 다 놓쳤다.

이소라는 김건모의 탈락을 인정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김건모는 제작진이 제시한 재도전을 받아들였다. ‘나는 가수다’가 두 사람을 뮤지션으로 존중했다면 그들의 감정이 나오는 순간을 최대한 부드럽게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예능에 충실했다면 재도전은 없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이소라와 김건모가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재도전을 제시했다. 인터넷에는 두 사람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그러나, 두 사람은 ‘리얼’리티 쇼에서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다. 출연자의 솔직한 반응은 리얼리티 쇼의 필수요소다. 문제는 두 사람의 반응이 서바이벌이라는 리얼리티 쇼의 전제 자체를 깨는 핑계로 이용됐다는데 있다. 쇼의 전제가 깨지면서 두 사람은 리얼리티 쇼의 출연자가 아니라 쇼를 망친 뮤지션이 됐다.

뮤지션과 대중, 그 어느 쪽도 존중하지 않는 제작진

뮤지션은 하루아침에 동네북이 됐고, 쇼는 프로그램을 지탱할 큰 동력을 잃어버렸다.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원래 이해하기 어려운 쇼다. ‘나는 가수다’가 지금처럼 되지 않으려면 뮤지션들은 탈락의 순간에 감정을 억누르며 서로를 격려해야 하고, 어울리지 않는 곡도 2주에 한 번씩 놀라운 편곡으로 대중을 감탄시켜야 한다. 청중도 장르, 창법, 연주 방식에 대한 선호도에 상관없이 가장 좋은 음악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가수다’는 뮤지션과 대중에 대한 신화가 현실이 돼야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이소라는 울었고, 김건모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편곡은 무성의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반면 10% 정도의 평가단은 김건모의 노래를 최고의 무대로 꼽기도 했다.그러나 김영희 PD는 김건모의 탈락이 노래 마지막에 바른 립스틱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그의 발언은 ‘나는 가수다’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설명하는 열쇠다. 그는 이 가수들의 노래가 누군가에게 실망을 줄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 2주 동안, ‘나는 가수다’는 거의 모든 것을 음악에 의존했다. 가수들의 노래는 중간평가에서, 리허설 과정에서, 쇼의 마지막에서, 다시 쇼의 처음에서 계속 반복됐다. 이소라와 백지영의 노래는 쇼의 맥락과 상관없이 미리 공개됐다. 이런 음악의 사용은 음악이 갖는 힘에 대한 맹신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 뛰어난 가수들의 무대는 무조건 훌륭한 것이고, 무조건 감동적인 것이어야 한다.

가수가 살린 프로그램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그래도 그 노래가 통하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대중의 무지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는 노래의 하이라이트에 인터뷰를 삽입한다. 인터뷰의 내용은 가수나 노래에 대한 설명이나 ‘나는 가수다’를 “새로운 음악 쇼”라 말하는 자화자찬에 가까운 멘트다. ‘나는 가수다’는 마치 어설픈 음악팬처럼 음악과 대중을 대한다. ‘진짜 가수’들은 언제나 무슨 음악이든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다. 대중은 음악이나 쇼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니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음악을 모르는 건 자기 자신이다. 김영희 PD는 과거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에게 ‘양심 냉장고’를 줬다. 그 때 김영희 PD는 현실을 바로 잡으면서 예능의 재미를 실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중이 서바이벌 쇼에서 가수의 무대에 실망하고, 냉정하게 탈락시키는 건 바로잡아야할 현실이 아니다. 가수가 그 결과에 힘들어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김영희 PD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가수들은 경쟁을 통해 최선의 무대”를 연출하고, 대중은 그들 모두에게 환호를 보내면서 누가 탈락하든 박수를 치며, 가수들은 탈락자를 훈훈하게 격려하며 웃는 현실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의 이상은 3회만에 망가졌다. 이소라나 김건모가 이상한 사람이거나 대중이 잔인해서도 아니다. 다만 김영희 PD가 무지했을 뿐이다. 음악을 듣고 감동할 줄은 알았지만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소라나 김건모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 대중을 가장 자극하는 서바이벌 쇼를 만들면서도 쇼를 보는 대중의 심리는 몰랐기 때문에 재도전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가 아는 것은 서바이벌 쇼 안에서 뮤지션과 대중이 모두 만족할 수 있다는 자신의 공익적인 이상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의 재도전 논란은 한편으로는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이어질 불행의 전조처럼 보인다. 앞으로 ‘나는 가수다’에서 이런 무리수는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김영희 PD가 지금처럼 쇼와 음악을 대하면 ‘나는 가수다’의 본질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 뮤지션들은 룰렛이 어떤 노래를 선택하든 미션을 완벽하게 소화해야 하고, 탈락자가 발표 돼도 감정에 초연해야 한다. 또한 대중의 취향에 상관없이 그들을 무조건 감동 시킬 수 있어야 하고, 대중은 그런 가수들의 모습에 박수치며 “레전드!”를 외쳐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누군가 또다시 이소라나 김건모처럼 될 수 있다. 그건 뮤지션의 지옥이다. ‘나는 가수다’의 출연 가수들이 발표한 음원이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둘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적과 별개로 지금 김영희 PD가 만들어내는 무대는 대중에게 음악과 뮤지션의 현실을 왜곡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지금 김영희 PD가 할 일은 음악과 대중에 대한 어설픈 개입이 아니라 쇼를 쇼답게 만드는 일이다. 뮤지션들은 명예를 걸고 노래한다. 하지만 김영희 PD가 지금까지 무대가 절실한 뮤지션들을 모아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 외엔 무엇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기 보다는 쇼를 위해 더 재밌는 연출을 해주길 바란다. 보다 못한 시청자들이 ‘너는 PD냐’라고 묻기 전에.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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