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이 이번에 복싱 대회에서 우승했다며? 대충 운동했던 게 아닌가봐?
사실 나도 예전에 이시영이 TV 나와서 남자들 앞에서 복싱 어쩌고 할 때 좀 우습게 봤었는데, 그런 수준이 아니더라고. 지난해 11월에는 전국 생활체육 복싱대회에 출전해서 우승하고, 2월에는 신인 아마추어 복싱전에서 우승했다는 얘길 듣고 많이 놀랐는데, 결국에는 전국 신인 아마추어 복싱선수권 대회에서까지 우승했으니 진짜 대단한 거 같아.
그 전에 우승했던 대회들이랑 이번에 우승한 대회는 다른 거야?
다르지. 그 중에서 가장 성격이 다른 건, 전국 생활체육 복싱대회인데, 말 그대로 생활체육 다시 말해 취미로 복싱을 하는 사람들의 대회야. 물론 취미라고 해도 아예 배우지 않은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참가비만 내면 너도 나갈 수 있는 대회야. 다시 말해 선수 개념은 아닌 거지.
그럼 이번에 나간 건 선수로 나간 거고?
그렇다고 볼 수 있어. 지난 2월에 나갔던 대회랑 이번 대회 모두 아마추어 대회인데, 여기에 나가려면 아마추어 복서 라이선스를 얻어야 돼. 그러니까 아마추어 요리사, 아마추어 산악인 같은 단어를 수식하는 그런 아마추어의 개념이 아닌 거야. 그런 식의 아마추어는 아까 말한 생활체육에 가깝고, 복싱에서의 아마추어는 아마추어 ‘선수’라고 보면 돼. 물론 그 과정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야. 프로 복싱 라이선스의 경우에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지만 아마추어 복싱 라이선스는 공식적인 스파링, 즉 연습 경기를 뛰면 나오는 거니까. 어쨌든 두 개 대회 모두 생활체육 대회보다는 수준이 높은 경기고, 그 중에서도 이번에 우승한 전국 신인 아마추어 복싱선수권은 말 그대로 전국 최고의 신인을 뽑는 대회니까 지금 이시영의 경력으로 출전할 수 있는 대회 중에서는 가장 수준이 높은 대회지. 거기서 우승을, 그것도 결승전에서 상대 선수를 RSC승으로 이겼으니 대단한 일인 거야. RSC승이 뭐…
말하고 있잖니. RSC는 레프리 스톱 콘테스트의 준말인데, 한쪽의 실력이 너무 우세해서 게임이 안 되거나 상대방의 부상이 너무 심할 때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고 한 쪽에 승리를 주는 걸 말해. 그만큼 결승전에서도 이시영이 압도적이었다는 뜻이지.
어떻게 그렇게 잘하지? 재능이 있나?
우선 타고난 신체조건에서 남들보다 유리한 게 있어. 첫 번째는 왼손잡이라는 거, 두 번째는 팔 길이가 길다는 거.
팔 길이가 길어서 유리하다는 건 알겠다. 팔이 긴 쪽이 짧은 쪽보다 때리기 편할 거 아니야.
그렇지. 그도 그렇고, 거리 싸움에서도 유리해. 스트리트 파이트 말고 거리를 재는 싸움. 복싱을 비롯한 격투기에선, 나는 때리기 편하고 상대방은 때리기 어려운 거리를 유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 그러기 위해서 앞에 나온 손, 오른손잡이의 경우에는 왼손을 이용해서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거야. 잽은 알지? 앞에 나온 손으로 가볍게 툭툭 치는 거. 이 잽으로 상대방을 때려서 데미지를 주는 것도 있지만, 계속 그렇게 앞에 나온 주먹을 내밀면서 툭툭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가늠하다가, 사정권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면 그 때 강력한 펀치 콤비네이션을 날리는 거지. 이 때 잽을 날리는 팔의 길이가 길면 상대방은 나한테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가 맞을 확률도 줄어드는 거야. 그러다가 거리가 맞는다 싶으면 나의 긴 팔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거고. 잽이 어쩌고 이런 건 잘 몰라도 어쨌든 팔이 길면 유리하단 건 잘 알겠어. 그런데 왼손잡이는 왜 유리하단 거야?
내가 아까 앞에 있는 손으로 잽을 한다고 했지? 그 동작을 거울을 보고 해봐. 네가 왼손을 내밀 때마다 거울에 있는 애는 오른손으로 네 왼손을 막지?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를 만나면 딱 그런 장면이 만들어지는 거야. 왼손으로 잽을 날리려 할 때마다, 역시 같이 뻗는 상대방의 오른손에 걸리거든. 그러면 깔끔하게 거리를 재고 자신의 싸움을 펼치는 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지.
그런데 그건 거울 속에 있는 애도 똑같이 불편한 거잖아.
오, 정확한 지적이야.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와 싸우며 겪는 불편을, 왼손잡이 역시 오른손잡이에게 느껴. 단지 왼손잡이들은 오른손잡이 복서와 연습을 자주 하며 익숙해질 수 있는데, 왼손잡이 자체가 흔하지 않다보니까 오른손잡이는 그러기 어려운 거지. 같은 능력과 체급이면 왼손잡이가 유리하다는 게 복싱에서의 정설이야.
역시 타고난 게 있어서 지금 이렇게 잘하는 거구나.
게다가 운동도 굉장히 열심히 한 거 같아. 주먹을 쉬지 않고 뻗고 계속 스텝을 밟는다는 게 정말 구토가 느껴질 정도로 힘든 일인데, 결승전 영상을 보면 이시영은 자기보다 훨씬 어린 십대와 싸우면서 상대적으로 더 쌩쌩한 몸놀림을 보여주더라고.
그러면 진짜 연예 뉴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런던 올림픽도 나가는 거야?
분명 범상치 않은 능력이긴 한데, 그래도 올림픽은 어렵지 않을까. 아까 이번 대회에 대해 이시영의 경력으로 출전할 수 있는 최고의 대회라고 했는데, 올림픽은 아마추어 복서가 도전할 수 있는 궁극의 무대라고 할 수 있어. 그야말로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나갈 수 있는 거니까 올림픽은 좀 어려울 거 같아. 한국 여자 아마추어 복싱은 남자에 비해 저변이 얇은 편이지만, 어쨌든 국가대표 수준의 아마추어 복싱은 진짜 엘리트 중의 엘리트 거든.
그럼 그렇게 국가대표 하고 아마추어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 프로로 가는 건가?
아니, 아니. 대부분의 스포츠에서는 프로가 아마추어보다 실력이 우위라고 할 수 있지만 복싱은 전혀 달라. 아마추어 복싱의 경우 헤드기어를 쓰고 상대방을 얼마나 정교하게 맞추느냐가 중요하다면, 프로 복싱은 상대에게 얼마나 충격을 주느냐가 중요해. 그러다보니 오히려 테크닉에서는 엘리트 아마추어 복서들이 웬만한 프로 복싱 랭커들보다 우위에 있을 때가 많아. 예전처럼 프로 복싱이 흥행을 하고 프로 복서에게 많은 파이트머니가 돌아가던 시절에는 엘리트 아마추어 복서들이 프로 전향을 많이 했지만, 요즘처럼 프로 복싱이 침체된 시기에는, 실업팀이나 지역 체육회 소속 아마추어 복서들이 오히려 프로 전향을 꺼리고 있지. 어쨌든 프로와 아마추어를 실력으로 구분할 수는 없어. 그래서 아시아선수권대회 은메달리스트인 여자 아마추어 복서 김효민 선수가 프로에 데뷔했을 때, 바로 여자 프로 복싱 챔피언감으로 언급됐던 거고. 개인적으로 이시영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건 무리라고 보지만 오히려 프로 복서 라이선스를 따는 건 지금이라도 가능하다고 봐.
아무튼 이시영은 진짜 복싱을 제대로 하는 거구나. 좀 멋있는데?
응. 배우가 연기나 잘하고, 영화 홍보나 열심히 하라는 지적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게 본업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자기를 불태운다는 건 확실히 멋진 거 같아. 너처럼 스포츠 좋아하는 남자애들에게는 완전 이상형이겠네? 얼굴도 예쁘고 운동도 잘하고.
아니라고는 못하겠는데 나는 그래도 계속 흥미를 가지고 스포츠에 대해 물어봐주는 사람이 더 재밌더라.
뭐가 계속이야. 그냥 가끔 물어본 건데.
응. 가끔이었는데 오늘로 백 번째네.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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