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태어나면서부터 당신들과 틀린 사람이야.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난 무죄로 풀려날 테니까.”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SBS 마지막 회에서 유력한 대권 주자인 강준혁(박영지)의 딸이자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인 강서연(황선희)이 검거되는 순간, 저런 섬뜩한 소리를 하더군요. 법의학자 윤지훈(박신양) 선생의 목숨과 맞바꾼 체포 현장이었지만 어쩌면 강서연이라는 악녀가 또 다른 권력과 재력 뒤로 몸을 숨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찝찝했습니다. 빼도 박도 못할 정황 증거를 다 갖췄음에도 정신질환이든 뭐든 내세워 빠져나갈 구멍을 어떻게든 만들어 내고 말 것만 같아서 말이죠. 그런데 우연인지 같은 날 MBC 에서도 재벌가 JK그룹의 고명딸 조현진(차예련)이 비슷한 요지의 출신 타령을 한지훈(지성) 변호사에게 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제일 화나는 게 뭔지 알아? 내가 니들한테 놀아났다는 거야. 니들이 날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어!”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신을 어찌 감히 너희 같은 하찮은 부류가 좌지우지 하려 들 수 있느냐는 거죠.

돈 가지고 가족끼리 의절하는 세상이라니요

그래요. 어찌 된 일인지 요즘 TV에는 보통 사람들 보다 자칭 타칭 ‘로열패밀리’들이 넘쳐 납니다. 그냥 좀 산다 싶은 정도가 아니라 대화 속에 오가는 돈이 몇 백억을 넘나드는 엄청난 부자들 말이에요. MBC 만 봐도 그렇고 이정연(이민정) 씨가 나오는 SBS 도 마찬가지죠. 재산을 두고 형제지간에 암투가 벌어지는 건 일상다반사, 부모 자식 사이에도 속고 속이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집니다. 그저 드라마 속 얘기만은 아니지 싶은 게, 현재 우리나라 재벌 사이에도 형제의 난에 얽힌 일화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가 하면 실제로 어머니와 아들이 돈 때문에 의절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지난 번 ‘행복해지는 법 2부’에서 ‘행복의 비밀코드’를 알려주더군요. 행복은 원하는 것에 대한 가진 것의 비례라고 합니다. 원하는 것을 줄이면 누구든 행복해지기 마련인데 인간이라는 게 미련해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걸 바라게 되는지라 평생 만족을 모르는 삶을 살게 되는 거래요. 왜 소위 로열패밀리들이 노상 싸움질인지 이해가 가시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연 씨의 전 약혼자 김도현(장혁) 변호사의 꿈이 바로 로열패밀리 입성이었죠. “정연아, 나 부자 될 거야. 그냥 부자가 아니라 네가 상상하는 이상, 그 보다 천배 만 배 부자가 될 거야. 난 이미 그 길을 가고 있어. 넌 내 손만 잡고 따라 오면 돼. 너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네가 잡고 있는 이 손, 놓칠지 몰라.” 정연 씨에게 자신을 따라오길 종용했지만 그의 솔직한 바람은 유인혜(김희애) 대표의 손을 잡는 거였을 겁니다. 놓칠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아니라 놓고 싶다는 고백이었을 거라는 얘기에요. 유 대표가 언젠가 물었거든요. 도현 씨 과거 중에 꿈을 가로막는 게 있다면 버릴 수 있느냐, 그게 정연 씨여도 버릴 수 있느냐고요. 진정한 의미의 로열패밀리는 바로 정연 씨 가족이지 싶어요

“내 눈에 도현 씬 능력만 판 게 아니라 영혼까지 판 사람처럼 보여. 그래서 무서워.” 정연 씨의 우려대로 이미 도현 씨는 유 대표에게 영혼을 넘기고 말았더군요. 그런데 도현 씨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어요. 유 대표가 별의 별 감언이설로 도현 씨를 꼬드기긴 했지만 유 대표가 원하는 건 앞만 보고 달리는 힘 좋은 경주마일 뿐, 로열패밀리 입성을 허락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보세요. 도현 씨를 발탁한 최국환(천호진) 변호사는 이미 보기 좋게 토사구팽 당하고 말았잖아요. 이용할 가치가 있을 때까지는 한 배를 타겠지만 위기의 순간이 오면 가차 없이 버려질 게 빤하다고요. 그런데 한때 천재 소리를 들었다는 도현 씨가 돈에 눈이 어두워지니 판단력을 잃고 마네요.

제가 정연 씨에게 편지를 쓰게 된 까닭은 도현 씨를 어서 구해내라는 소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반대로 어서 깨끗이 잊으라는 조언을 하기 위해서랍니다. 김도현이 이번에 유 대표를 돕고자 치밀하게 계획했고 성공시킨 일이 바로 일명 ‘작전’이었어요. 저는 주식에는 문외한지만 작전이라는 게 순수한 일반투자자들을 파멸로 이끄는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것쯤은 압니다. 그런데 자신의 성공이 많은 이들의 눈물과 한숨을 발판으로 세워졌음을 한 번도 염두 둔 적이 없는, 또한 기업 인수합병 시에도 수많은 협력 업체들의 사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김도현. 어쩌면 냉혹한 유 대표와 끼리끼리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난 번 정연 씨가 유 대표의 1억 원에 달한다는 목걸이 선물을 단박에 거절했을 때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버님이 정연 씨를 반듯하게 잘 키우셨더라고요. 진정한 의미의 로열패밀리는 바로 정연 씨 가족이지 싶어요. 그러므로 거듭 당부합니다. 근묵자흑이라 했어요. 유 대표와 김도현이 이끄는 기업 론아시아의 만행으로 아버님께서 크나큰 타격을 입으셨음은 분하기 그지없지만, 부디 복수니 뭐니 얽히려 들지 마시고 김도현과는 하루라도 빨리 인연을 끊길 바랍니다. 그게 정연 씨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일 테니까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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