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을 사세요.” 매년 12월 31일 저녁이 되면 시부야의 쇼핑몰 109 앞에는 여고생들이 박스를 깔고 노숙을 한다. 전자제품의 성지 아키하바라 거리는 오타쿠 차림의 남자들로 성황을 이룬다. 시부야나 아키하바라처럼 극성스럽진 않지만 쇼핑의 거리 긴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월 1일 백화점을 비롯 대다수의 쇼핑몰과 가게가 개최하는 ‘복주머니(福袋, 후쿠부쿠로) 세일’을 두고 일본인들은 전날부터 혹은 이틀 전부터 단단히 준비를 한다. 가게의 주요 아이템을 무작위로 넣어 구성한 복주머니는 구성물의 가격이 복주머니 판매가격보다 높을뿐더러 새해 첫 구매란 의미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월1일부터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일본의 쇼핑가는 복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300년 전통의 복주머니 뽑기

최근엔 옷, 전자제품, 음식 등 일반적인 상품 뿐 아니라 독특한 구성을 취한 복주머니도 나와 화제다. 여행상품, 콘도 이용권, 고급 승용차 자유 렌트권 등을 모은 여행사의 복주머니는 행운과 함께하는 새해 첫 여행 콘셉트로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쇼핑몰 파르코 시부야점은 극장을 하루 빌려 영화를 볼 수 있는 상영관 대여권을 복주머니 속에 넣었다. 산악 다큐멘터리 와 연계해 마련된 이 상품은 1월21일 개봉하는 영화 를 정해진 날짜 중 하루를 골라 시부야 시네퀸토 극장에서 볼 수 있는 티켓이다. 혼자 보든, 지인이나 가족을 초대해 함께 보든 자유다. 내용물이 판매 전부터 공개된 조금 색다른 상품이지만 이 복주머니는 1월 17일 판매를 앞두고 많은 블로그와 게시판 상에 오르내리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극장 1개관을 빌려 나만의 상영회를 연다는 이벤트와 행운을 기원하는 복주머니가 구미 좋게 결합한 예다.

복주머니의 시작은 에도시대의 다이마루 백화점이다. 백화점 다이마루가 팔고 남은 짜투리 상품들을 모아 ‘복주머니’에 넣어 팔았던 게 기원이라 알려져 있다. 이후 복주머니는 일본에서 일종의 세일 전략으로 자리 잡으며 300년 넘게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일각에선 재고 처리를 위한 업체의 상술이란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일본인들은 그럼에도 새해에 절을 찾아가 오미쿠지(おみくじ, 신사에서 참배인이 길흉을 점쳐 보는 제비)를 뽑듯 복주머니를 산다. 복주머니는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복권처럼도 느껴진다. 설령 필요 없는 물건이 나올지언정 복을 산다는 기분, 혹은 선물로 주고받으며 복을 나눈다는 심리는 새해를 시작하는 소비자들에게 뿌리치기 힘든 유혹 아닐까. 소비자든, 판매자든, 그리고 극장을 찾는 사람이든 새해 복을 바라는 기분은 모두 똑같을 테니 말이다.

글. 정재혁 자유기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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