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KBS2 밤 9시 55분
은조(문근영)는 어쩌면 늘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효선(서우)에게 다정히 구는 걸 차갑게 바라보며 서있을 때도 실은 그녀가 자신을 불러주길, 그 상처를 봐주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강숙(이미숙)이 그들 모녀를 위해 연기하느라 바쁠 때 은조를 돌아본 건 기훈(천정명)이었고, 그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은조의 상처는 어느새 아물어 있었다. 첫 주가 은조, 강숙 모녀의 운명과 그들 사이로 “노크도 없이” 끼어 들어온 효선 등 여성 캐릭터에 집중했다면, 기훈을 위해 열어둔 문처럼 은조의 마음이 열린 3회는 본격적인 멜로드라마 진입을 위한 포석이었다. 그리고 독한 여성들의 대결이 중심인 작품에서 장식에 그칠 것 같던 멜로가 의외로 마음을 크게 움직일 거라는 예상은 기훈이 단순히 기능적 캐릭터에 머물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은조보다도 먼저 “숨기 전문”이었으며, 일찌감치 “거지” 취급을 받고 자란 기훈은 그저 여주인공의 상처를 감싸주기 위한 키다리아저씨가 아니라 진짜 아픔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편이 돼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하마터면 진짜로 믿을 뻔 했잖아요”라고 내뱉는 기훈의 눈물고인 눈은, “날 의지해도 괜찮다”라는 대성(김갑수)의 다정한 말에 믿을까 말까 순간 망설였던 은조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닮았다. 그리고 마침내 기훈이 은조의 이름을 불렀을 때, 몇 번이나 그 음성을 되뇌던 은조의 속마음과 표정을 잡아내는 공들인 연출은 그들의 감정에 힘을 더한다. 그들 멜로의 전개가 기훈이 떨어뜨린 비녀의 행방만큼이나 궁금한 것은, 빛과 그림자처럼 다르지만 똑같은 어둠을 품고 있는 둘의 운명과 그 서정적인 화면 때문이다.

글. 김선영(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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