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입장에서 봤을 때 사실 좀 재수 없는 캐릭터”라며 깔깔 웃었다. 하지만 또 이내,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 정말 한번쯤 떠올려 보게 되는 캐릭터”라고 눈을 빛내며 이야기했다. 작은 얼굴에 큰 눈, 그리고 시원한 미소를 늘 머금는 큰 입. 김소현은 그렇게 또렷한 인상을 지니고 순간순간 시원한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맡았던 ‘엠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발레무용수에서 화려하게 프리마돈나로 데뷔한 속 크리스틴처럼 2001년, 김소현은 성악가에서 뮤지컬 배우로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시작한 첫 번째 뮤지컬 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녀는, 이후 , , , 등을 거치며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누군가에게는 SBS 의 히스테릭한 정씨부인으로 기억되기도 하겠지만, 그녀는 이제 “이 역할 하면 김소현”이라고 힘주어 얘기할 수 있는 작품들로 기억되길 꿈꾸고 있다.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 부르며 지낸지 벌써 8년, 인터뷰 내내 ‘사랑’에 대해 놓치지 않고 얘기하던 김소현은 첫사랑 같은 를 No.1 뮤지컬로 꼽았다.

는 1886년 로버트 스티븐슨이 발표한 소설 를 뮤지컬로 옮긴 작품으로, 고집스럽게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지킬과 그런 신념을 저지했던 위선자들을 처단하는 하이드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얘기한다. 2004년 국내초연 당시 영화배우 조승우가 캐스팅되어 뮤지컬배우로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 가득한 스토리와 그에 비견되는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지킬을 사랑하는 거리의 여자 루시와 귀족의 딸 엠마 중 김소현은 엠마 역을 맡아 200회 가량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왔다.그녀가 줄곧 맡아왔던 역할에 대해 “엠마는 여성관객들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은근히 그렇게 됐으면 하고 바라는 캐릭터”라고 정의했다. 혼란에 빠져 무너져가는 지킬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고 다독이며 붙잡는 지고지순한 캐릭터, 그게 곧 엠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을 위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줄 아는 화끈함도, 사랑하는 이를 비웃는 자들에게는 재치 있게 받아칠 줄 아는 현명함도 지닌 여자이기도 했다. 김소현은 지난 2005년 앵콜 이후 4년 만에 엠마로 무대에 다시 섰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 환상이 깨지는 것 같은 실망을 전하게 될까봐 그저 “관객들의 마음속에, 뇌리 속에만 기억”되고 싶었던 그녀를 다시 불러들인 건, ‘영원한 엠마’라는 그 수식어 때문이었다. “심지어 옛날에 입었던 옷까지 똑같이 입었는데도 이번엔 뭔가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그 사이 인생을 몇 년 더 살고 배우로서도 좀 경험을 하고 나니까 내가 좀 성숙해졌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준 공연이었어요. 다시 하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지난 2월 의 서울공연을 마친 김소현은, 5월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이는 체코뮤지컬 에 출연한다. “뭐 항상 그렇듯이 달타냥 엄기준, 박건형 여자친구?”라며 자신이 맡은 배역을 또 깔깔 웃으며 설명한다. 하지만, 또 예의 그 청아한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던 순간을 기억한다면 그녀가 표현할 또 다른 여자친구가 기다려질 것이다. 심지어 이번 공연은 신성우, 유준상, 엄기준, 박건형, 김법래, 민영기, 배해선, 이정열 등 출연진들의 이름만 봐도 ‘어떻게 이런 조합이!’라고 감탄을 하게 만든다. 그야말로 티켓 ‘전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좌석이 사라져가는 스릴을 경험했던 이로서는 이 프로젝트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그리고 눈에 띄는 신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김소현이 여자배우들 중 막내, 박건형이 남자배우들 중 막내란다. “제 밑으로 건형이밖에 없어요. 이제 화장실 청소하게 생겼다”고 환하게 웃는 그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The way back’
“저는 지킬 노래가 제일 좋아요.(웃음)” 의외였다. 인터뷰 중간 중간 엠마와 지킬의 듀엣곡 ‘Take me as I am’이나 엠마의 ‘Once upon a dream’ 등에 대해 얘기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김소현은 지킬이 부르는 ‘The way back’을 베스트 넘버로 골랐다. 이 곡은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어져버린 하이드를 제거하기 위해 마지막 결단을 내리는 순간 지킬이 부르는 넘버다. “엠마는 하이드가 아닌 지킬을 사랑하잖아요. 지킬 스스로 마지막 발악, 결심, 의지 그런 게 느껴져서 엠마로도, 여자관객으로도 봤을 때 그 노래가 주는 힘이 큰 것 같아요. 너무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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