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이 막을 내렸다. 만 원짜리 조잡한 꽃다발의 행렬도 끝나고, 거침없는 밀가루의 포연도 사라졌다. 기억할 만한 졸업식이 없는 나에게, 졸업식 풍경에 대한 가장 강한 이미지는 바로 영화 의 첫 장면이다. 졸업생 대표로 연단에 선 레이나(위노나 라이더)는 준비한 연설문을 잃어버린 채 “그 질문의 답은 … 답은… 나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로 답사를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은 대학 졸업가운을 입고 옥상에서 맥주병을 홀짝이며 홈 비디오로 찍은 듯 한 저렴한 영상을 향해 졸업과 인생과 미래에 대해 마구잡이로 떠든다.

벤 스틸러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한 는 원제인 ‘Reality bites’처럼 이제 막 ‘현실’이라는 과자를 깨물기 직전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꺼내봐야 할 청춘 영화의 명작이다. “삐 소리가 나면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존재하는 이유를 말하세요” 트로이(에단 호크)의 자동음성메시지의 안내처럼 그들은 여전히 이름과 전화번호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이룬 것도, 이룰 가능성도, 존재의 이유조차 모르는 모호한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어두운 클럽의 마이크 뒤로 자신의 청춘을 유예시키고, 누군가는 유료 전화 도우미에 의존해 비싼 전화비를 버리고 청춘의 시간들을 낭비한다. 하지만 그 따위 청춘들이, 그래도 견딜만 한 것은 그 상실과 혼란의 시대를 결코 혼자서만 통과하고 있지 않다는 위로 때문이다. 레이나와 트로이가 ‘커피와 담배’를 나누며 산책하던,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 순간처럼 말이다.

“이봐, 레이나. 이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거야. 담배 몇 개비, 커피 한 잔, 약간의 대화, 너와 나, 그리고 단돈 5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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