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영화 ‘챔피언’에서 능청스러운 진기 역을 맡은 배우 권율.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변신의 귀재’라고 할 만하다. 배우 권율은 많은 영화, 드라마에서 선과 악을 넘나드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해왔다.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챔피언’에서는 마크(마동석)를 팔씨름 챔피언으로 만들고자 분투하는 능청스러운 매력의 진기 역을 맡아 또 한 번의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진기는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 안엔 남모를 사연이 있다. 권율은 그런 진기와 닮은 구석이 많았다. 실없는 농담으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매력을 뽐내다가도 그동안의,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대해 말할 땐 눈빛을 반짝였다.자세를 낮추고 정진하기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권율을 만났다.

10. 능청스러운 매력의 진기 역을 맡았다. 친절하게 설명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만큼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에 없는 진기의 전사에 대해 고민했다. 진기가 유학시절 마크와 어떻게 연을 맺었는지, 마크와 얼마나 끈끈한 사이인지 등을 생각했다. 현장에서는 마동석 형과 김용완 감독님에게 ‘진기는 어떤 생각일까요’ ‘진기는 유학 생활을 몇 년 동안 했을까요’라고 물으며 서로가 생각하는 교집합을 찾았다.

10. 베테랑 배우들도 어렵다는 코미디 연기에 도전했다. 어땠나?
정말 어려웠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만족할 순 없다. 감독님은 ‘최악의 하루’(2016)에서 보여줬던 뻔뻔한 남자친구의 모습보다 조금 더 가볍고 밝은 느낌을 주문해 최대한 표현하려고 했다. 코미디 연기를 해봤던 마동석 형에게 많이 물어보면서 도움을 받았다. 코미디 호흡을 갖고 연기하는 선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10. 자신도 재치 넘치는 입담을 가진 걸로 아는데?
드러내는 개그는 아니고 은연중에 웃기는 걸 좋아한다. 사실 개그 욕심이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성향과 캐릭터를 표현하는 건 또 다르더라. 중간 지점을 찾는 게 힘들었다.

배우 권율이 10년 만에 연기 호흡을 맞춘 마동석에 대해 “그릇이 큰 배우다. 후배로서 존경한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0. 10년 전 ‘비스티 보이즈’로 인연을 맺은 마동석과 다시 연기 호흡을 맞췄다.
현장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벽을 부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마동석 형과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과감하게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내겐 언제나 든든한 곰 같은, 귀여운 형이다.10. 마동석의 조·단역 시절부터 전성기까지 봐왔지 않은가?
내가 감히 평가할 수 없다. 형은 10년 전에도 캐릭터의 비중을 떠나 존재감이 큰 배우였다. 이제야 형의 큰 그릇과 비중의 크기가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후배로서 존경한다. 한국영화에서 마동석 형만의 캐릭터 장르가 있다. 한국형 히어로라고 할까.(웃음) 영화에서 형이 문을 고치려다 떼어버렸을 때 실제 같다. 좀비를 때려눕히는 모습 역시 ‘진짜 저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내가 그랬다면 판타지였을 텐데 말이다.

10. 그렇다면 자신의 캐릭터 장르를 평가하자면?
영화에서는 잘 자랐을 것 같지만 남모를 아픔이 있는 인물을 자주 맡아왔다. 내게 반전의 느낌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배우 권율이 “감사함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쓴다”고 털어놓았다.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0.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밀크남’부터 악역까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연기를 보여줬다. 연기에 대한 갈증인가?
연기와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많다. 경험해보지 못한 시나리오를 만나면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떤 이미지를 쌓기 위해 일부러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다.

10. 오래 연기를 하면서 쌓인 배우로서의 가치관이 있다면?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나와 타협하지 않는다. 피곤해도 운동을 하기로 했으면 꼭 하는 식이다. 간단하게라도 일기를 쓰는 습관도 있다. ‘절실’ ‘감사’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것 같다.

10. 일기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
배우라는 직업에는 승진 시험이 없다. 정체되면 우울감에 빠진다. 부정적인 생각이 생기는 걸 미연에 경계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 감사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예전엔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지만 그것을 이룬 어느 날엔 지겹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이지만 안 좋은 기운이 잠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기를 쓴다.10. 20대 중반에 데뷔했고 공백이 있었다. 흔들릴 법도 한데 계속 달려온 원동력은?
데뷔 당시 원하는 만큼 주목받지 못하면서 부침의 시간을 견뎌왔다.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욕심이 크다 보니 불안함도 컸던 거다. 그땐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값진 순간이다. 그 시기를 잘 견뎌냈기 때문에 또 다른 힘듦이 와도 견뎌낼 수 있을 거라는 심리적 안정감이 생겼다.

10. 궁극적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지금에 집중하고 있기에 내 궁극적인 지점이 궁금하다. 어떤 목표보다는 성실하게 연기하고 싶다. 계속 주연을 맡고 크게 사랑받는 선배들을 보면, 잠도 못자면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간다. 나 역시 그렇게 성실하게 달리고 싶다.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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