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황성운 기자] 2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이름 없는 영화사의 처절한 목소리가 아니다. 또 상업논리에 휘둘려 개봉을 걱정해야 하는 소규모 영화도 아니다. CJ엔터테인먼트라는 막강한 투자 배급사를 등에 업고 제작된 상업영화임에도 이 영화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았다. 결국, 새로운 배급사를 타고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영화 ‘소수의견’이다.

‘소수의견’ 주연을 맡은 윤계상도 오랜 시간 돌고 돌았다. 다른 의미지만, 영화의 운명과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다. 한때 ‘인정’에 목말랐고, ‘배우’를 갈망했다. 동시에 ‘성공’도 꿈꿨다. 압박감이 극도에 달해 ‘웃는’ 인상까지 잃었을 정도다. “뭐가 그리 억울하고 분했는지. 그래서 부끄럽다”고 그때를 돌아봤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윤계상은 깨달았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연기, 그 자체가 좋다. 그렇게 마음을 달리 먹은 윤계상, 그는 어느덧 배우로 성큼 다가왔다. 그 첫 번째가 ‘소수의견’이다.

Q. 뒤늦은 개봉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겠다.
윤계상 : 아니다. 인터뷰하면 할수록 생각이 많이 난다. 그리고 영화를 보니까 완전히 다 보이더라. (웃음)Q. 개봉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함은 없었나.
윤계상 : 일 년 반전에 편집본을 봤는데 그때도 영화가 좋았다. 내 생각이지만. 그래서 당연히 개봉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 좋은 시기에 개봉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Q. 정말 시기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나.
윤계상 : 그 이유는 파헤쳐 달라. 하하. 나도 관계자에게 ‘정말입니까’라고 물어봤다.

Q. ‘소수의견’이 담고 있는 소재가 민감한 사안이다. 작품 선택할 때 개봉에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봤나.
윤계상 :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 감독님 미팅할 때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하셨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땐 손아람 작가의 원작은 못 본 상태였다. 감독님은 ‘절대 아니다’고 하더라. 또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 관객들과 만났을 때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리고 솔직히 영화 내용에 대한 생각, 소수를 지지하는 편에서 연기하고 싶었던 뜻은 있다. 배우들이 이에 한마음으로 움직인 것은 사실이다.Q. 언론시사회 당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연예인들도 있다.
윤계상 :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건데 이런 영화를 하면서 체험하는 거다. 또 뉴스를 통해 사건을 접했을 때 오는 감정은 누구나 다 똑같은 것 같다. 그것을 배우가 나서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데, 나는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소수의견’을 찍는 동시에 나는 당연히 그걸 지지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 그게 당연한 이유는 그 내용이 설득력 있게 이해하지 못했다면 작품도 하지 않았을 거다.

Q. 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작품을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나.
윤계상 : 부담이 없을 수 없지만, 결국 윤진원처럼 하게 됐다. 고민 많이 했다. 근데 할 수밖에 없더라. (왜?) 영화를 보면 안다. 영화에 답이 있다. 하하.

Q. 이전에 해왔던 작품들이 사회 고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은데. 윤계상이 지닌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윤계상 : 그걸 생각하고 영화를 고르는 건 아니다. 그때 주어진 시나리오에서 가장 영화답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으면 선택하는 것 같다.
Q. 그렇다면 김성제 감독은 왜 윤계상에게 이 시나리오를 줬을까.

윤계상 : 윤진원답다고 얘기를 해주셨다. 2년 차 국선 변호사, 지방대 출신의 친구가 사건을 맡으면서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사건을 맡게 된 계기는 ‘가장 큰 사건이 될 수 있어’라는 말 한마디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야망과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너무 억울하고 열 받다 보니 전면에 나서게 되고, 그러면서 슈퍼파워를 내는 거다. 그런 모습들이 비슷한 부분인 것 같다. 나 역시 배우가 되고 싶었고, 성공도 하고 싶었다.

Q. 어떤 면에서는 ‘소수의견’이 윤계상 개인에게도 중요한 작품이었겠다.
윤계상 : 배우들이 법정 드라마를 꺼리는 것 같다. 아무래도 생소한 용어로 관객들을 설득해야 하고, 혼자서 배심원 또는 검사와 대립각을 세워야 한다. 또 딕션 등을 정확하게 해야 하니까. 나한테는 승부처였던 것 같다. 배우로서 가능성을 시험해보지 않으면 앞으로의 길도 잘 다니지 못할 것 같았다. 큰 기회인 동시에 위기 같은 느낌이었다. 안 좋은 연기가 다 들통 날 것만 같고, 그런데 놓치고 싶진 않고. 죽어라 연습했던 것 같다.

Q. 그렇게 죽어라 연습하고 결과물이 나왔는데 만족하나.
윤계상 :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 너무너무 부끄럽고 부족한데 얘기는 못 하겠다. 내가 부족하다고 하면 관객들이 부족하게 보니까. 하하. 그냥 훌륭한 배우들이 많이 포진돼 있고, 그 앙상블에 소리를 정확하게 냈다는 것만 해도 만족한다.Q. 그래도 그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경험이 있지 않나. 너무 겸손 떠는 것 같다.
윤계상 : 당연히 그런 건 있다. 법정 공방신의 경우 콘티도 없었다. 그래서 그 동선을 개인적으로 짜야 했는데, 경험이 없었다면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두렵기도 했다. 마치 시험관 앞에서 오디션을 보는 것 같았다. 권해효, 이경영, 김의성, 유해진 등이 자리에 있으니까 두렵더라. 얼마나 잘하나 보자, 딱 그 타임이지 않나. 하하. 전문가니까 호흡도 다 느껴질 것 같은 거다. 그래서 엄청나게 달달 외웠던 것 같다.

Q. 작품 준비하면서 실제로 법정은 가봤나.
윤계상 : 기존 법정 드라마를 많이 봤다. 사실상 참여재판은 많이 없다고 하더라.

Q. 다른 준비는.
윤계상 : 감독님과 대화가 가장 먼저였다. 사실 역할에 몰입해서 화도 많이 나고, 분출하는 신이 많았다. 그때마다 감독님이 ‘안 돼, 안 돼’ 하시면서 눌렀다. 극 중 공수경(김옥빈) 기자가 기사 쓴다고 차에서 나갔을 때는 정말 나도 모르게 ‘미친X’가 나오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감독님이 막 뛰어오더니 마음은 알겠는데 윤진원답지 않다고.Q. 만약이지만, 변호사가 됐다면 어떤 변호사가 됐을 것 같은가.
윤계상 : 음…. 윤진원이 되고 싶습니다. 하하.


Q. 무엇보다 배우들의 앙상블이 멋지다.

윤계상 : 그 열정들은 치가 떨리도록 대단하시다. 연기 이야기밖에 안 한다. 주제가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할까’다. 이경영 유해진 선배가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나신 것 같더라. 처음에는 서로 ‘아 팬이에요’라고 이야기하다가 친해진 다음에는 연기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그걸 보면서 급한 마음이 없어진 것 같다. 열심히 하고 성장해 나가기만 하면 언젠가는 내 옷을 입게 되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 법정에서 마지막 증거물을 제시하려고 나가는 데, 권해효 선배님이 ‘이 공간은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침범하면 안 돼’라면서 제지하더라. 그런데 이경영 선배는 ‘이건 극이다. 감정상 나갈 수 있다’고 하고. 이 토론이 몇 시간 동안 계속됐다. 이게 열정인 것 같다.

Q. 지난해 텐아시아와 진행한 ‘레드카펫’ 인터뷰 당시(윤계상 “사람은 변해요. 바닥을 치면”(인터뷰)) 재작년에 굉장히 힘들었다고 했다. 매사 비관적이고, 자꾸 의심하게 되고, 욕심부렸다고. 그때가 이 시기였나 보다.
윤계상 : 압박감이 극도에 달했을 때 (이 작품으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사실 얼마나 긴장을 많이 했겠나. 그런데 정작 선배님들은 신경 안 쓰더라. ‘아우 잘했다, 예쁘다’ 하니까. 그때 ‘아, 배우가 다 한 팀이구나. 누군가를 깎아 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다 도와주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

Q. 이런 경험을 느낀 것만으로도 많은 걸 얻은 셈이다.
윤계상 : 정말 좋았다. 강압적이 아니라 제안을 주는 거니까. 호흡을 필요로 하는 작품에서는 많은 대화와 많은 교류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

Q. 예전에 윤계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건가.
윤계상 : 그럴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보여주기 급급했던 연기가 많았다. 분명히 그 안에서도 소통하려고 노력했겠지만, 그래도 나한테 더 집중했고 시야가 좁지 않았나 싶다. 근데 그게 연지를 잘하는 게 아니었다. 해진 형한테는 끊임없는 시도를 배웠다. 형은 테이크마다 다 다르다. 계속 시도하더라. 또 경영 선배한테는 끊임없는 열정을 배웠다.

Q. 그때 했던 여러 고민, 지금은 어떤가.
윤계상 : 지금은 뭐라고 해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좋은 걸 어떻게 하나. 하하. 예전에는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썼다. 잘 됐으면 좋겠고, 흥행도 하고 싶고, 연기도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급한 마음이 없어진 것 같다. 그땐 뭐가 그리 억울하고 분했는지. 어떤 기자분이 연기한 지 4~5년 정도 됐을 때 내가 했던 말을 해주는데 낯 뜨거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하하. 그땐 뭔가 너무 갖고 싶었던 것 같다. 배우보다도 다른 뭔가를. 그래서 부끄럽다. 지금은 안 그런다.


Q. 뒤늦은 개봉인데 흥행도 신경 쓰이겠다.

윤계상 : 내 돈 들여서 찍은 영화도 아니고. 현장에 있어 보면 모든 작품의 감독님은 목숨 걸고 한다.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그걸 느끼면서 ‘룰루랄라’ 할 순 없다. 흥행 신경 안 쓴다는 건 거짓말이다. 속이 타들어 간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가 좋으면서도 힘들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하하.

Q. 드라마 ‘라스트’ 방영을 앞두고 있다. 그거 때문에 지금 수염을 기르고 있는 건가.
윤계상 : 초반에 노숙자로 나온다. 깡패 돈을 가지고 작전을 하다가 역작전에 걸려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면서 서울역 노숙자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서열 7위부터 한 계단씩 싸워 이겨가는. 하하. 액션을 하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 해서 그렇지만, 나이가 조금 드니까 아픈데도 많아지고 힘도 없어진다. 옛날에는 살도 금방 빼고, 운동하면 금방 붙었는데 지금은….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하하.

황성운 기자 jabongdo@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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