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나이

국악과 서양음악을 섞은 잠비나이부터 일렉트로니카와 록의 질감이 결합된 이디오테잎, 한국적인 펑크록, 이른바 ‘조선펑크’의 대표주자 크라잉넛, 처절하고 절절한 헤비 록 할로우 잰, 감성적인 모던록 넬, 그리고 아이돌 스타인 현아와 박재범까지 한국대중음악 다양한 반경의 뮤지션들이 한 무대에 올랐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음악 쇼케이스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이하 SXSW)’에 마련된 ‘케이팝 나잇 아웃’이 그것. 이들은 미국 시간으로 11일 밤 7시 반부터 새벽 2시까지 오스틴의 공연장 엘리시움에서 열린 ‘케이팝 나잇 아웃’에서 차례로 공연을 했다.

11일이 되자 오스틴이 활기로 가득 찼다. 훈풍이 불어오는 대낮부터 거리 여기저기 음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SXSW’의 본 행사라 할 수 있는 ‘SXSW 뮤직’이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날부터 오스틴 전역은 음악의 천국이 된다. 오스틴 시내의 클럽, 카페, 술집 등 약 100여 개 장소를 비롯해 심지어 거리에서도 산발적으로 공연이 열린다. 이날 오후 5시에는 오스틴 컨벤션 센터에서 닐 영이 연설을 하기도 했다.올해로 2회째를 맞는 ‘케이팝 나잇 아웃’은 ‘SXSW’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소개하고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마련한 무대다. 올해는 무려 2400여 팀의 뮤지션들이 SXSW를 찾으며 여기에는 14팀의 한국 팀도 포함됐다. 이들 중 절반인 7팀이 참가한 ‘케이팝 나잇 아웃’은 한국 음악을 선보이는 전초전 격인 행사인 셈이다.



약 6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엘리시움은 잠비나이의 첫 공연부터 수백 명의 인파로 가득했다. 해외 관객들은 해금, 거문고, 기타를 중심으로 한 잠비나이의 음악을 진지하게 감상했고, 곡이 끝나자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SXSW’의 토드 퍽카버(Todd Puckhaber) 씨는 “워맥스(WOMEX)에서 잠비나이를 처음 보고 엄청난 사운드에 큰 감동을 받았다”라며 “잠비나이는 서양인들에게 익숙할 만한 어법을 가지고 있다. ‘SXSW’를 통해 잠비나이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잠비나이의 이일우는 “우리가 미국에 알려지지 않은 팀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반응을 얻어 너무 기쁘다”라고 말했다.크라잉넛, 할로우 잰도 열정적인 공연을 이어갔다. 크라잉넛의 한경록이 ‘아 유 레디 투 로큰롤(Are you ready to Rock & Roll)’이라고 외치자 공연장 분위기는 단박에 달아올랐다. 크라잉넛의 주요 레퍼토리인 ‘서커스 매직 유랑단’ ‘룩셈부르크’ ‘말 달리자’는 외국인들도 춤추게 했다. 할로우 잰은 이날 최고의 사운드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감탄시켰다.

크라잉넛

밤 12시가 돼 이디오테잎이 무대에 오르자 플로어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찼아. 이디오테잎이 강렬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깔자 객석은 거대한 댄스플로어로 변신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박재범, 현아의 무대로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박재범이 무대에 오르기 전인 12시 반쯤 레이디 가가가 엘리시움을 깜짝 방문해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박재범과 현아는 레이디 가가가 객석에 섞여 있는 가운데 자신들의 곡을 불렀다. 한편 현아가 무대에 올랐을 때는 수많은 백인 남성들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함성을 지르며 두 손을 번쩍 들기도 했다.작년부터 지적됐던 음향문제는 올해에도 이어졌다. 잠비나이 공연 후반부터 경미한 음향사고가 나더니 넬이 공연을 할 때에는 기타 사운드가 제대로 잡히지 않고, 마이크가 잠깐 꺼지기도 했다. 넬의 경우 전담 엔지니어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음향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한 관계자는 “전문 엔지니어가 온다고 해서 미국 클럽의 특수한 상황에 대처하기 힘든 경우가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현장을 잘 이해하는 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이날 엘리시움에는 약 1,200명의 관객이 다녀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공연장 주변에는 낮부터 밤까지 긴 행렬이 늘어섰다. 관객 중 현지 교민과 교포, 외국인의 비율은 5대5 정도로 보였다. 크라잉넛 등 밴드들은 현지 매체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팬들과 사진을 찍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편 밴드와 댄스가수가 함께 무대에 오른 이질감이 해외 관객들에게는 흥미롭게 비쳐지기도 했다. 관객 중에는 한국음악 블로거로 활약 중인 크리스틴 커퍼(Kristin Koffer) 씨도 있었다. 커퍼 씨는 몇 해 전부터 ‘SXSW’를 찾은 한국 밴드들의 음악을 관람해왔다. 2011년부터 한국 밴드 북미투어 프로젝트 ‘서울소닉’ 팀과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됐다. 커퍼 씨는 “좋은 음악은 언어와 상관없이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며 “한국음악은 참 재밌다. 한국의 케이팝과 인디음악이 정반대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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