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우)

얼마 전, 키스 자렛 트리오가 30주년 기념 공연을 마쳤다. 1970대 후반의 게리 피콕이 건강상의 문제로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으리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트리오 30주년 공연이 이들의 마지막 공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무용수처럼 두 팔을 앞으로 늘어뜨린 채 인사하는 세 남자의 모습이나, 열정적인 4번의 앵콜곡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순간에 이들은 서로를 격려하듯 가볍게 포옹을 했다. 재즈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이 모습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키스 자렛 트리오는 아주 오래전부터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의 재즈광들에게 그들의 음악은 친숙한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분위기가 너무 부러운 나머지, 국내에 키스 자렛이 오지 않던 시기엔 일본으로 날아가 그들의 음악을 듣기도 했다. 머지않아 키스 자렛이 솔로 공연을 위해 국내에 다시 방문하겠지만, 게리 피콕과 잭 디조넷이 없는 모습은 너무 쓸쓸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들의 음악은 진정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했다.

적어도 댄스 공연을 보는 순간은 일상이 춤으로 변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오래된 습관처럼 올해도 모다페(MODAFE) 개막작을 보러 갔지만, 뭔지 모를 결핍에 시달렸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려 조던 매터의 을 구입했다. 이 사진집은 무용수들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 이들은 마음껏 춤의 본능을 발산한다. 책 속의 애크로바틱한 동작은 트램펄린이나 와이어를 이용하지 않았다. 무용수들의 포즈 역시 디지털 보정을 거치지 않았다. 맞다. 여기에 뽀샵질은 없다. 사진은 오직 무용수들의 100% 리얼한 동작에 의존했다. 표지를 장식한 빗속의 댄서는 폴 테일러 컴퍼니의 안마리아 마치니로, 폭풍우가 예고된 날 메이시스 백화점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안마리아는 빗속에서 하이힐을 신은 채 도움닫기 멀리뛰기를 무려 45번이나 했다. 조던이 리처드 애버던의 패션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사진이라 더욱 빛난다. 그는 무용수가 점프해 허공에 떠 있는 장면을 담기 위해 셔터 속도를 1/320로 맞추고, 각각 점프마다 단 한 컷의 사진만 촬영했다. 무용수들의 결정적인 순간을 예측해서 한 번에 승부를 걸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들과 같이 움직이고자 몸이 들썩거린다. 그렇게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책으로 춤과 소통했다면, 전시장에서 책을 만나는 것은 어떨까? 바로 이다. 출판계의 거장 게르하르트 슈타이틀은 앤디 워홀의 전시를 본 후 독학으로 습득한 인쇄술로 인쇄 출판업을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요셉 보이스와 작업했고, 1980, 90년대에는 문학, 사진, 예술 서적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샤넬, 펜디 같은 상업브랜드와 협업을 하거나 구겐하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등의 갤러리 인쇄물도 함께 제작하고 있다. 설령 그의 이름을 잘 모른다고 해도, 난색을 표할 필요는 없다. 브레송, 로버트 프랭크, 유르겐 텔러 등의 사진집이 슈타이틀의 손을 거쳤으니, 사진집에 관심이 많는 분이라면 이미 그의 유산과 친숙한 셈이다. 우린 수많은 디지털 매체 덕분에, 종이로 만들어진 책들이 공룡처럼 멸종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슈타이틀 전에 무엇을 기대하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아트북에 푹 빠져들어 나만의 책을 꿈꾸게 된다. 슈타이틀이 워홀에게서 영감을 받았듯이 우리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에드 루쉐의 작업이 무척 탐났다. 대림미술관에서 가을까지 전시가 계속 되니, 경복궁에서 산책을 즐길 때 들르는 것도 좋다.
연극

마지막도 책(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작품을 골라봤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를 한국화시킨 연극 이다. 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는 나치 점령 시기였던 1940년대 초반에 이 작품을 썼으며, 요르고스 조르바스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처럼 조르바는 자유롭다. 1800년대 말 이후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1941년 격동기의 연해주 지역 조선인 촌락 이야기로 다시 부활한다. 라오지앙후라는 단어 때문에 제목이 다소 낯설게 다가온다. 라오지앙후(老江湖)는 오랫동안 외지를 돌아다니며 산전수전 다 겪어 세상물정에 밝은 사람이다. 즉, 떠돌이라는 뜻의 중국어다. 러시아에서 흔한 이름인 막심을 사용해 중국어, 한국어, 러시아어가 섞인 희한한 제목을 완성했지만, 정작 연극에서 최막심은 “모친이 본인을 낳고 후회가 막심하여 이름을 막심이라고 지었다”고 농을 친다. 조르바에 한국적 정서와 한이 더해져 최막심 캐릭터가 탄생한 것도 재미나지만, 무대에 중심에 위치한 붉은 철판 오브제 또한 인상적이다. 장이 바뀔 때마다 회전하면서 공간을 분할하고, 인간의 광기와 욕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명동예술극장에서 6월 2일까지, 자유를 외친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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