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K5′의 심사위원 이승철(왼쪽)과 윤종신

Mnet ‘슈퍼스타K’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기는, 지상파(MBC ‘위대한 탄생’, SBS ‘K팝스타’ 등)로 번져나갔고 다양한 형태(MBS ‘나는 가수다’, SBS ‘기적의 오디션’, KBS2 ‘탑밴드’)로 진화돼갔다.오디션 열풍의 촉발이 됐던 ‘슈퍼스타K’는 여전히 높은 브랜드 가치를 자랑하고, 매번 최후의 우승자가 스타 타이틀을 거머쥐는 인생 역전의 드라마를 지켜보며 주먹을 불끈 쥐게 되지만, 솔직히 말하면 ‘슈퍼스타K’의 시즌5를 맞은 2013년의 우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의 드라마를 본 것만 같은 기분이다.

다소 그 열기가 주춤해진 올해의 ‘슈퍼스타K’가 사상 최초로 예선 심사의 일부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것으로 ‘죽지 않았어’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22일 오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슈퍼스타K5′의 3차 예선 현장에서 제작진은 총 7팀의 출연자들을 이승철, 윤종신, 이하늘 심사위원이 심사하는 과정을 라이브로 보여줬다.뭉클한 순간은 의외로 출연자들의 사연으로 점철된 드라마가 아닌, 심사위원석에서 연출됐다. 여전한 이승철, 돌아온 윤종신, 그리고 의외의 이하늘로 요약할 수 있는 세 명의 심사위원들은 그 안에 쌓아온 5년의 공력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임을 증명했다.

사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출연진들은 그 짧은 순간에 인생을 걸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어디 한둘이랴. 음정과 박자가 이탈하는 아주 기본적인 실수는 3차 예선까지 도달한 출연자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각자 나름의 개성으로 중무장도 했다.심사위원들은 긴장과 설렘, 때로는 5분 안에 담아내지 못해 쩔쩔 매는 넘치는 비장함 속에 갇힌 출연자들의 진면목을 파악하고, 출연자들도 시청자들도 납득이 가능한 언어로 도출해내야한다. 그런 출연자들과 맞닥뜨리는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장점과 단점을 포착해내 출연자들을 설득하는 심사위원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심사 역시도 일종의 기술이자 예술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

심사위원 석에 앉은 이하늘(왼쪽), 이승철, 윤종신
첫 참가자는 3년 넘게 거리공연을 해왔다는 길거리 광대들이었다. 자작곡을 불렀다. 가사가 꽤나 흥미롭다. 눈길을 끄는 개성도 느껴진다. 그런데 어딘지 허술하다.

윤종신은 “음악적인 구성력이 부족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말을 위한 음악인지, 음악을 위한 말인지 모르겠다. 음악적인 고민을 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3차 예선까지 올라 슈퍼위크 직전까지 다다랐던 이 팀은 윤종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두 번째 참가자는 더더욱 눈길을 잡아끄는 요소를 갖췄다. 여성 듀오였는데, 한 명이 색소폰을 들고 등장했다. 심사위원들은 지금까지 이런 구성은 없었다며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스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김한샘 씨가 바로 색소폰 멤버였다.한샘 씨의 더욱 풍성해진 색소폰 소리를 바탕으로 보컬 담당 멤버가 노래를 열창했다. 수준급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발견해낸 ‘유레카’의 기분은 들지 않는다.

이승철은 “보컬톤이 성숙해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매력이 없다. 전달력도 부족하다. 커뮤니케이션 면에서 연구가 필요하다”고 틈을 집어냈다. 윤종신은 “가수와 비슷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하늘은 “반갑다”며 “그러나 뜨겁지 않다”고 정리했다.

세 번째 참가자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올해 나이 12살의 소년. 동글동글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뜀박질에나 열중할 것 같은 아이인데, 자작곡이 20곡이고 그 중 쓸 만한 곡이 4~5곡이라고 말하는 모습에 청중에서 와르르 웃음이 터진다.이승철은 그를 “어린 나이에 이만한 현장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곡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후크도 가미돼있고 가사내용도 좋다. 천재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윤종신은 “멜로디와 랩이 명료하고 정직하다. 가사도 너무 좋다”고 말했다. 칭찬 일색인데, 조목조목 설득력이 있다.

이날 공개 예선에서 가장 의아한 무대는 여섯 번째 참가자 서강대 법학도 김모씨의 노래. 키보드까지 연주하며 열창했는데, ‘과했다’. 무대를 지켜본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음정도 불안정한 지나친 고음과 전달력 없는 발성 탓에 말도 안되는 노래였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달랐다. 그의 무대를 존중했고, 그의 세계관을 배척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음악적인 것에서의 결함을 지적하고 조언을 건넸다.

윤종신은 “에너지와 기운은 좋다. 연기도 좋랐다. 그러나 듣기 좋게 해야한다. 다듬을 줄 알아야 하며 에너지의 강약 조절도 해야만 한다”고 말해, 그 너무도 과잉된 무대에 웃음이 터진 청중들에게 또 다른 시선에서 그를 바라볼 수 있게 이끌어줬다. 이승철은 “거울을 볼 줄 알아야만 한다”며 스스로가 만든 무대에 갇혀버린 참가자에게 가장 필요한 지적을 했다.

총 7명의 출연자들의 공개 예선 무대가 끝난 뒤, 제작진은 슈퍼위크에 진출한 99팀의 실루엣을 공개했다. ‘슈퍼스타K’에서는 일종의 죽음의 관문이기도 한 48시간의 숨막히는 슈퍼위크를 앞두게 된 이들의 실루엣 사이로 형언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제는 식상할 뿐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대를 지켜보다 어느 새 그들과 함께 침을 꼴딱 삼키고 말았다.

아무리 뻔하디 뻔한 이야기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잡아 버린 오디션 프로그램의 익숙한 포맷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을 어떻게 구성해내느냐가 바로 시청자를 설득해 몰입시키고 마는 키(KEY)가 된다. 그 설득의 힘은 바로 심사위원석에 있었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Mne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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