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까지 춤추게 하는 소울의 금자탑.’ 이 정도면 어스 윈드 앤 파이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작년 5월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공연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첫 곡 ‘Boogie Wonderland’가 시작하자 돗자리에 누워 공연을 감상하던 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춤췄고 잔디밭은 마치 댄스 플로어처럼 변해버렸다. 또 뒤에서 관객들이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돗자리가 아예 뭉개져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88 잔디마당에서 약 만여 명의 스탠딩 공연이 이루어진 것은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는 1969년 미국 시카고에서 모리스 화이트, 웨이드 플레먼스, 돈 화이트헤드가 주축이 돼 솔티 페퍼스(The Salty Peppers)란 이름으로 처음 결성됐다. 1970년 로스앤젤레스로 근거지를 옮기고 팀 이름을 자신의 점성술 기호에 맞춰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로 변경한 이들은 마이클 빌, 체스터 워싱턴, 모리스 화이트의 동생 버딘 화이트 등을 영입해 기존의 팀을 대규모 밴드로 재편했다. 이후 출세작인 ‘That’s the Way of the World’ 이후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가 빼놓고 소울·펑크(Funk)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이제 초창기 멤버는 필립 베일리, 버딘 화이트, 랄프 존슨 세 명뿐이지만, 12인조 밴드가 만들어낸 그루브는 역사의 감동을 재현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오는 8월 14,15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슈퍼소닉’의 헤드라이너로 나서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버딘 화이트, 필립 베일리, 랄프 존슨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Q. 작년 내한공연의 열기가 기억나는가? 당신들이 공연한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만 여 명이 스탠딩 공연을 즐긴 것은 처음 봤다.
버딘 화이트: 아주 환상적이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좋았다. 우리도 무척 재밌게 공연했다. 이번에는 더 좋을 것이다 같다. 이미 두 번 내한공연을 왔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 봐주지 않을까?
Q. 어스 윈드 앤 파이어가 한국에서 그렇게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필립 베일리: 정말로 놀랐다. 특히 놀랍고 행복했던 것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우리 공연을 찾아줬다는 것이고 또 우리의 음악을 다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떻게 모든 이렇게 어린 관객들까지 우리 곡을 다 아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들으니 공연을 보러 오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음악을 미리 다 듣고 온다더라. 정말로 그런가?
Q. 근황은 어떠한가? 요새도 공연의 연속인가?
랄프 존슨: 많이 한다. 한 공연을 몇 시간씩 하지는 않지만, 정해진 90분 동안 온 열정을 다 쏟아 바친다. 다양한 방향으로 공연을 이끌어가며 최대한 여러 스타일을 선보인다. 공연이 끝날 때쯤 관객들은 하나의 뮤직 쇼를 감상한 기분이 들게끔 말이다.Q. 1년에 보통 공연을 몇 번 정도 하나?
랄프 존스: 공연은 일 년에 80회에서 100회 정도 하는 것 같다. 매년 여름투어를 하기 때문에 여름에 공연이 많이 몰려있는 편이다.
Q. 8년만의 새 앨범 ‘Now, Then & Forever’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새 앨범에는 어떤 음악들이 들어갈지 소개 부탁드린다.
버딘 화이트: 그렇다. 8년만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신나고 펑키한 느낌의 곡들로 가득할 것이다.
랄프 존슨: 그렇다. 8년 만에 내놓은 앨범이고,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스물한 번째 앨범이기도 하다. 정확한 앨범명은 ‘Earth, Wind and Fire - Now, Then & Forever’이다. 현재 우리가 어디쯤 와있는지, 어디서 왔는지, 우리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우리 음악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듣듯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거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해서 업계를 떠난 후에도 우리가 남긴 음악은 영원할 것이다. 참고로 9월 10일에 발매된다. 엄청 기대하고 있다.Q. 현재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원년 멤버는 버딘 화이트, 필립 베일리, 랄프 존슨 세 명 뿐이다. 기존의 팀워크를 이어가는데 어려움은 없나?
랄프 존슨: 전혀 문제 없다. 리더만 필립 베일리로 정해져 있다. 필요시 다른 멤버들이 리더를 돕는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밴드이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잘 진행되고 있다.
Q. 저번 내한공연을 보면서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음악은 멤버들이 대를 물려가며 계속 재현해 들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랄프 존슨: 조금 전에 새 앨범 얘기할 때도 했던 얘기지만, 우리 음악은 우리가 없어도 영원할 것이다. 현재 매 1분 38초 마다 지구상 어디선가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아티스트는 아마 비틀즈와 앨비스 프레슬리 뿐일 것이다.
Q.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주축이었던 모리스 화이트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최근에도 연락을 하고 지내나?
버딘 화이트: 모리스는 항상 가족의 일원이었고, 하나의 아이콘이었으며 리더였다. 그가 우리와 함께 무대에 오르지 않더라도 그는 하나의 아이콘이자 정신적 리더로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Q. 결성 당시가 궁금하다. 어떻게 그렇게 대규모의 인원들이 모여 밴드를 만들게 됐나? 거의 빅밴드 규모가 아닌가?
랄프 존슨: 결성 당시에 나는 없었고, 당시 리더(모리스 화이트)가 수년 전에 팀원을 모았다. 나는 1971년 12월에 오디션을 보고 이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팀원들이 내가 로스앤젤레스의 한 클럽에서 연주하는 것을 보고 내 연주가 맘에 들었는지 함께 밴드를 하자고 제안했다. 밴드가 완성 될 때까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모았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일을 하길 원했고, 어떤 이들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그래서 원년 멤버는 지금 3명만 남게 된 것이다. 규모가 큰 만큼 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밴드다.
Q. 당신들의 행보가 곧 ‘Funk’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들의 음악은 대학교에서 교재로도 쓰인다. 이렇게 당신들의 음악이 탐구 및 학습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랄프 존슨: 다른 사람들한테도 하는 말이지만, 처음에 밴드를 결성할 때는 어떤 방향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작업이 음악 지도 커리큘럼에 쓰인다는 것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아닌가! 굉장히 기쁜 일이다. 뭔가를 제대로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Q. 최근 신인 중에 눈여겨 본 Soul, funk 계열 뮤지션이 있다면?
필립 베일리: 자넬 모네(Janelle Monae)와 브루노 마스(Bruno Mars)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외에도 아끼고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굉장히 많다.
Q. 당신들에게 정말 궁금하다. 멜로디와 그루브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랄프 존슨: 난 둘 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이치, 마치 음과 양처럼 같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멜로디는 살아 있지만 내재된 감정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반대로, 그루브는 끝내주는데, 메시지가 없다면, 그것 또한 의미 없을 것이다. 고로 멜로디와 그루브를 항상 같이 염두에 둬야 한다.
Q. 저번 내한공연에서 ‘Shining Star’, ‘Sun Goddess’, ‘Devotion’, ‘That’s The Way Of The World’, ‘Can’t Hide Love’, ‘After The Love Has Gone’, ‘Fantasy’, ‘September’, ‘Let’s Groove’ 등을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어떻게 이러한 주옥과 같은 곡들을 만들 수 있었나?
랄프 존슨: 이 곡들은 굉장히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팀이 남긴 유산이다. 아무래도 공연할 때 마다 이 히트곡 위주로 구성하게 되는 것 같다. 공연을 보러 오는 대중들은 귀에 친숙한 노래, 들으면서 자란 노래, 기분 좋아지는 노래를 듣고 싶어 하지, 굳이 새로운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려주려다 보니 그런 선곡을 하게 된 것 같다.
Q. 앨범을 들어보면 위 히트곡들 외에 매우 심오하거나 원초적인 곡들도 있다. 가령 대표작 ‘That’s The Way Of The World’의 경우 마지막을 장식하는 두 곡 ‘Africano’와 ‘See The Light’가 그러한 곡들이다. ‘See The Light’의 경우 아프리카의 원초적인 느낌으로 시작해 방대한 스케일을 지닌 곡이라 할 수 있다. 라이브에서 이런 곡을 들려줄 계획은 없나?
랄프 존슨: ‘See The Light’를 라이브로 보여주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언젠간 선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발표 곡 목록을 뽑아보면 굉장히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40년간 작업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그래서 보통 한 공연 당 90분 정도 할애한다고 생각하면, 원하는 곡을 다 부르기에는 공연 시간이 너무 짧다. 이런 제약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본 노래를 위주로 선곡한다. 그런 맥락에서 ‘See The Lignt’는 흔히 말하는 싱글곡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덜 친숙하다. 아무래도 알려진 노래들을 위주로 공연을 하다 보니 이 곡은 제외해 버리는 것 같다. ‘Africano’는 예전에 종종 공연을 했던 곡이고, 지금도 어쩌다 한 번씩 무대에 올리기는 하지만 거의 하지 않는다. 요새는 보통 ‘Boogie Wonderland’를 오프닝 곡으로 선보인다.
Q. ‘슈퍼소닉’에서 다시 만나게 될 팬들에게 인사 부탁드린다.
버딘 화이트: 팬 분들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 공연 기대 많이 해도 좋습니다. 공연장에서 꼭 보았으면 합니다. 즐거운 공연이 될 겁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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