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 적어도 10년을 투자할 각오를 하고 시작해야한다. 성급하게 뭔가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힘들어 하지말았으면 한다. 꼭 연기 뿐 아니라 다른 분야라 할지라도 적어도 10년 근처는 가야 자신의 일에 눈을 뜨고 추진력도 생기기 마련이다. – 신구, 텐아시아와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건낸 조언



동랑(東郞) 유치진 : ‘한국예술의 큰 별’, ‘현대연극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동랑 유치진 선생은 1960년대 초 드라마센터를 건립하고, 한국연극아카데미도 설립해 연극 인재양성을 위해 힘썼다. 신구는 바로 이 아카데미 1기로 배우의 인생을 걷기 시작한다. 본명 신순기가 다소 촌스럽다며 고민하던 그를 위해 신구라는 예명을 지어준 것도 유치진 선생이다. 신구는 그렇게 유치진 선생의 지도 하에 그의 나이 26세인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한다. 신구는 그의 은사인 유치진으로부터 연극에 대한 자세, 빈틈없이 해야한다는 기본을 배웠다고 말했다. 지금도 연기란 공동작업이라 약속시간을 철저히 지켜야하고, 대본 읽기와 연습은 내 것이 될 때까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담고 있다. 또한 연극배우로 출발, 국립 극단 단원으로 활동했던 신구는 생계 문제만 없었더라면 연극만 했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현재까지도 1년에 1편씩은 연극을 하기 위해 시간을 비워두고 있다.경기고 52회 동기생 : 신구의 경기고등학교 동기생에는 고건 전 국무총리,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김우중 전 대우회장,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등이 있다. 고등학교 동창계의 절대갑(甲)으로 불리는 전설적 인맥이다. 신구는 이런 동기생들에 대해 “내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신구 역시 명문고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삼을 정도로 공부를 잘 했던 우등생. 그러나 그는 서울대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 끝에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간다. 신구는 “당시에는 서울대학교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이들이 퍽 부러웠다. 그런데 만약 내가 서울대학교를 갔더라면 은행에 들어갔을 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배우가 된 것이 너무나 좋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거니까”라고 말하는 현재의 그는 경기고 동기들과 확연히 달라진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가정법원 조정위원회 판사 : KBS2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신구가 맡은 역할.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켰던 이 프로그램은 신구가 유일하게 10년 동안 출연한 것이기도. 한동안 KBS 효자 프로그램이었지만, 광고수입이 줄어 2009년 돌연 폐지가 결정됐다. 사전에 귀띔없이 ‘다음 부터 녹화가 없습니다’라는 통보를 듣게 된 신구는 한 인터뷰에서 방송사에 서운함을 토로한 적도 있다. 아무튼, 신구는 이 프로그램에서 극 말미 짧게 등장하지만 “네들이 게맛을 알아?”만큼이나 유명해진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오랜시간 가정법원 조정위원회 판사로 출연했던 그는 결혼생활이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남이 만나 같이 살며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정의내린다. 그러면서 당연히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으니 그때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참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 신구는 오랫동안 가난한 연극배우로 살았던 터라 그의 나이 39살인 1974년에서야 결혼을 했다. 연극하던 후배의 소개로 만난 이화여자대학교 생물과 출신의 재원, 아내 하 씨와 6년동안 연애한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신구는 현재도 방송에서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우리 집사람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아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를 숨기지 못한다.

말론 브란도 : 신구를 사로잡은 할리우드 명배우. 그는 영화 ‘워터 프론트’ 속 말론 브란도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가장 닮고 싶은 배우로도 말론 브란도를 꼽은 바 있다. ‘대부’로도 유명한 말론 브란도를 대체할 한국 노배우로 종종 신구가 거론되기도 한다. 자기를 비워내고 극의 인물과 완전히 일치되는 자연스러움을 보여주는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라는 점에서 두 거목은 분명한 공통분모가 있다.이순재 : 신구의 선배이자 더 없이 든든한 동료. 결정적으로 tvN ‘꽃보다 할배’ H4 리더. 이순재는 신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고의 배우다. 항상 그를 주시했었다. 자신이 가진 핸디캡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고 극복해낸 사람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제능력이 대단하다. 그가 대성한 과정을 눈여겨보면 재미있는 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순재의 말처럼 신구는 노력파 연기자다.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기 앞서, 철저한 준비와 자기 관리를 통해 자신의 전부를 걸고 임한다. 1970년대 KBS 반공드라마 ‘야간비행’ 출연 당시 비중이 적은 역할이었지만, 그가 밥도 먹지 않고 리딩에 집중하는 모습을 인상깊게 본 작가 김동현이 극중 비중을 키워 결국은 중심에 서게 한 적이 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이런 후천적 노력에 대해 신구는 “비록 내게 부족한 점이 있었을테지만, 적어도 게으르지 않게 살아왔다는 말로 기억되고 싶다”라고 말한다.

김관수 : 중견배우 사미자의 남편이자, KBS 탤런트 1기생. 사미자와의 결혼으로 최초의 탤런트 부부로 기록되기도 했다. 1972년 은퇴 이후 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신구와는 막역한 사이. ‘꽃보다 할배’에서 박근형이 신구를 ‘구야형’이라고 부른 것이 화제가 됐는데, 실은 신구를 ‘구야’라고 칭하기 시작한 것은 김관수가 먼저였다고. 신구는 “사미자 남편이 나보고 ‘구야, 구야’ 그랬어. 그것을 (박)근형이가 듣고는 형을 붙여 부르는 것이다”라고 ‘구아형’의 탄생설화(?)를 들려줬다.

장혁 : 신구를 롤모델로 삼는 여러 후배 중 한 명. 신구와는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호흡을 맞췄다. 신구는 장혁처럼 자신을 목표로 삼는 후배 배우들에게 “나를 뛰어 넘어야만 한다”고 다독인다. 또 “지금 앞에 서서 일하는 후배들은 재능도 있고 다 노력하는 이들이다. 우리 젊었을 때와 비교도 안 되게 영악하게 잘 한다. 노인들은 항상 젊은이들을 걱정하지만, 사실 우리 역시 젊었을 때 다 잘했나”라며 청춘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한다. ‘꽃보다 할배’에서도 청춘에 대한 따뜻한 조언들을 하는 순간순간이 모두 화제가 됐다. 신구는 “제일 부러운 것이 청춘이다. 앞으로도 가능성이 얼마든 열려있기 때문이다. 젊을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껏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나영석 : ‘꽃보다 할배’의 PD. ‘꽃보다 할배’는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네 노배우들이 유럽과 대만 등지로 함께 배낭여행을 떠난 모습을 기록한 리얼 버라이어티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나영석 PD는 네 명의 노 배우들을 ‘꽃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었다. 이런 나영석 PD에 대해 신구는 “굉장히 기발한 친구다. 천재적인 구석이 있다. 늙은이 넷을 모아가지고 그런 작업을 할 줄 누가 알았겠나?”라며 탄복했다. 나영석 PD는 “당연히 거절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출연 제안을 드렸는데, 예상 외로 그 취지에 공감을 해주시더라. 놀라웠다. 새로운 도전과 시도에 대해 이렇게 열려 계신 이 분들이 이래서 대가이시구나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며 섭외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신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직진하는 이순재와 건강 문제로 뒤쳐지는 백일섭 사이 중재자 노릇을 하며 특유의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이 재조명받게 됐다. 또 여행을 떠난 외국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해외팬들을 보며 “언제 또 이런 일을 경험해보겠나 싶다”라며 감격하기도 했다.

Who is next

신구와 ‘고맙습니다’에 출연한 장혁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편집. 임지혜 a9840382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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