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 특집 기자간담회 현장 최재형 PD, 유희열, 문성훈 PD, 이연 작가(왼쪽부터)
2009년 4월 24일 첫 방송 된 이래 5년. 하얀 스케치북에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새겨 넣은 감동의 순간들이 모여 어느덧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200회를 맞게 됐다.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자리한 최재형, 문성훈 PD와 이연 작가는 입을 모아 “유희열이 프로그램의 일등 공신”이라고 말했지만, 5년이나 프로그램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는 음악의 힘과 그 힘을 믿고 원칙을 지키려 한 제작진의 공이 컸다.정통 음악프로그램에 대한 KBS의 노력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BS는 1992년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을 시작으로 ‘이문세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를 탄생시키며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의 명맥을 이어왔다. 특히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부터 함께한 강승원 음악감독과 ‘이소라의 프로포즈’부터 인연을 맺은 이연 작가가 포진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KBS가 그간 선보여온 음악 프로그램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23일 시청자를 찾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200회 특집 ‘THE FAN’이라는 타이틀로 꾸며진다. ‘THE FAN’은 “나 XX는 YY의 팬이다”는 소개 형식으로 이효리가 김태춘, 윤도현이 로맨틱펀치, 박정현이 이이언, 장기하가 김대중, 유희열이 선우정아의 팬을 자처하며 동반 출연해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선보인다. 200회 특집 THE FAN의 의미를 묻자 이연 작가는 “앞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대중적인 음악과 인디음악을 함께 담겠다는 의미로 기획했다”고 밝혔다. 음악프로그램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이 진하게 묻어났던 기자간담회 현장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봤다.
Q. 유희열은 200회까지 단독 MC로서 프로그램을 이끌기가 쉽지는 않았겠다.
유희열: ‘2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울림이 크다. 199회 방송분에 담긴 과거 영상들을 보면서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걸 실감했다. 개인적으로는 심야 라디오 DJ를 오랫동안 맡다가 조금 생경한 TV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처음 맡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KBS에서 그간 선보인 프로그램들의 이미지였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추세에서 이렇게 프로그램이 살아남은 데는 음악의 힘이 컸다.
Q.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통해 감성변태라는 별칭을 얻었다. 최근 케이블채널 tvN ‘방송의 적’에서는 그런 캐릭터를 강조하는 모습도 보였다. 뮤지션으로서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
유희열: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음악 방송이라는 외피를 띈다. 처음부터 내가 PD에게 부탁한 것은 ‘음악 방송이니 선곡은 좋았으면 좋겠고, 무대를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가 음악으로 채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의 음악 성향이 드러나는 것은 선곡과 무대다. 내가 프로그램에서 맡은 역할은 생소한 음악과 뮤지션을 어떻게 재밌게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는 가이다.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이기에 망가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가이다. 나의 성적 농담이나 몸짓들 모두가 그러한 노력의 일부다.Q. 이번 200회 특집 편에서는 직접 무대를 선보인다. 본인의 곡 ‘여름날’을 선곡한 이유가 있나.
유희열: 항상 선곡과 뮤지션 섭외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다. ‘여름날’은 가사에 담긴 의미가 200회 특집과 맞아떨어져 선곡하게 됐다. 한 해가 지나고 또다시 여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특히 이연 작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는데 꼭 내가 노래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웃음). 내가 노래는 잘 못하지만, 프로그램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봐주시면 좋겠다.
Q.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인디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아이돌 그룹도 출연하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이다. 많은 음악 프로그램 중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이런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유희열: 현재 대한민국에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유희열의 스케치북’뿐이 남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아이돌이든 인디 뮤지션이든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 한 분들이 출연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Q.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주류 가수들뿐만 아니라 인지도 낮은 무명 가수나 인디 뮤지션의 출연으로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뮤지션 섭외의 원칙이 있나.
최재형 PD: 섭외의 원칙은 균형이다. 음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프로그램의 담는 것이 목표다. 음악을 주류, 비주류, 언더 등으로 구분 짓는 것은 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기본 조건이 있다면 라이브 무대를 제대로 꾸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돌 그룹도 음악순위방송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찍어내는 듯한 무대가 아니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언제든지 출연할 수 있다.Q. 수많은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중 살아남은 것은 ‘유희열의 스케치북’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최재형 PD: 기본에 충실히 하려고 한 게 주효했다. PD를 포함한 제작진 모두가 KBS의 음악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랐다. 공연 프로그램에 대한 개념은 이미 서 있었던 것 같다. 간혹 방송이기에 위기도 있었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음악이라는 기본에 충실해지려 노력했다. 유희열이 MC를 맡으며 여러 가지 특집을 만들 수 있었고, 모든 특집의 중심에는 역시 음악이 있다.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 특집 기자간담회 현장의 유희열
Q. 독특한 특집들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유희열: 특집을 만들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음악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특집 때 독특한 분장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사실 특집의 밑바탕이 된 생각은 ‘크리스마스 때 제대로 된 캐럴을 지상파 방송에서 들려준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명절 때 방송되는 특집 프로그램 속 장기자랑 코너 같은 느낌이 아니라 제대로 풀 오케스트라로 꾸민 완벽한 캐럴 무대를 선보이고 싶었다. 어떤 음악을 들려줄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 전달 방식을 고민했다. 그 부분이 다른 음악 프로그램과 차별화하는 지점이다.
Q. 200회는 프로그램의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갖고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갈 생각인가.
유희열: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모순적이지만 문턱이 높지는 않되 만만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한다. 인디음악과 대중음악의 균형점을 찾아 나가며 뮤지션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음악 프로그램에서 음악 이야기가 나오면 오히려 시청률이 떨어진다고 하더라. 방송사나 제작진도 시청률 욕심을 버리고 음악의 가치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 라디오 DJ를 하며 늘 “이런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도 하나 정도는 남아있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 간의 경쟁보다는 음악을 지키고 살리는 방향으로 모두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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