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My name is...
김영희│My name is...
My name is 김영희.
1983년 8월 23일에 대구에서 태어났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나랑 유전자가 달라서 그런지 키가 굉장히 크다.
영남이공대학 영상제작학과를 다닐 때 학회장을 했다. 워낙 숨어 있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근엄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었다. 신입생 환영회 때 직접 망사스타킹 신고 장기자랑하고, 예쁜 친구들 뽑아서 체육대회 응원시킨 다음에 응원상까지 받았다. 덕분에 우리 과 인지도가 높아졌다.
4년 전에 대학로 극단 오디션에서 보여준 캐릭터는 요구르트 아줌마였다. 이때부터 아줌마였다. 하하. 아파트 입구에서 고스톱치는 아줌마들한테 가서 막 훈수 두면서 요구르트를 파는 아줌마였다. 심사하던 개그맨 선배들이 막 웃으셔서 그때만 해도 개그를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무대에 올리는 순간, 지옥을 맛봤다. 으하하하. 관객들이 미소 한 번 띄우지 않더라.
만약 지난해 KBS 공채시험에서 떨어졌다면 다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방송국 몇 군데를 돌았는데 이번에도 안 되면 진짜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그야말로 우울함과 힘듦, 눈물이 섞인 합격이었다.
그때 준비했던 비장의 무기가 바로 ‘비너스 회장’이었다. 당시엔 ‘~하던 회원님께서는 제명이 됐어요’라는 말만 있었다. ‘봉숭아학당’에 올리려고 캐릭터를 다듬는 과정에서 회원 얘기를 더 강조하면 웃길 것 같았다. 두 명 정도 등장시킨 다음에 모조리 제명시키고, 그 앞에 ‘~하는 순간!’을 넣었다. 어우, 관객들 반응이 좋더라.
덕분에 아줌마 팬들이 엄청 많아졌다. 미니홈피 방명록에 ‘나는 5학년 몇 반 누굽니다’라고 남겨주시는 분들도 있다. 중, 고등학생들도 ‘4학년 5반’이라는 말이 웃기다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알고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웃음)
‘두분토론’의 여당당 대표와 ‘비너스 회장’ 중에서 더 어려운 캐릭터를 고른다면 여당당 대표다. ‘비너스 회장’은 아직 소재도 많고 나한테 더 잘 맞는 옷 같은데, ‘두분토론’은 이제 소재가 다 떨어졌다. 심지어 어떤 소재를 써도 남자들은 딱히 특징이 없어서 뽑아낼 분량이 없다. 뭘 갖고 다녀야 ‘소지품’ 주제가 나와도 할 말이 있지. (웃음)
그래서 ‘두분토론’을 하면서 내 개그에 만족했던 적은 딱 두 번밖에 없었다. 원래 내가 무덤 파는 스타일이라 기가 많이 죽는다. 한창 힘들었을 때 박영진, 김대성 선배가 영화도 보여주시고 밥도 사주셨다. 일명 ‘김영희 기 살리기 프로젝트’였다. 하하.
지금의 아줌마 캐릭터를 뒤집으려면 아마 전신성형을 해야 될 것 같다. 으하하하. 그 정도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건데, 그래도 도전할 거다. 예쁜 캐릭터는 아니지만 내 나이에 맞고 사투리를 쓰지 않는 선에서 연구하고 있다. 자다가 깨도 만날 그 생각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KBS 마니아였는데, 부부들이 실제로 이혼하는 건 줄 알고 화나서 ARS 투표까지 했다. 나중에 가짜였다는 걸 알면서도 드라마를 못 끊었다. 한 회에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이나 만화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는 드라마를 보면, 에잇! 못 참겠다, 이렇게 된다.
KBS 에서 진국(옥택연)의 팬클럽 회장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을 때 김수현과 마주 보고 연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결국 눈을 못 마주쳤다. 김수현 연기에 비하면 내가 한 건 연기가 아니라 그냥 소리만 질러대는 장난이었던 것 같다. 자신감 확 떨어져서 왔다.
내가 출연하긴 어렵겠지만 언젠가 실력파 코미디언들만 나오는 멜로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15분짜리 단편영화라도 상관없다. 코미디언들이 웃기는 것뿐만 아니라 울릴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욕심나는 배우는 ‘미끼’ 팀 선배들이다. 김대희, 김준호, 김준현 선배 모두 굉장한 연기파다.
얼마 전에 26기 공채개그맨 시험장 도우미를 했는데, 개그맨 지망생보다 다른 방송국에 있다가 시험 보러 온 지원자들한테 더 눈길이 갔다. 꼭 1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인데 나도 모르게 다가가서 ‘잘하세요’라고 응원해줬다. 와, 기분이 진짜 이상했다.
박영진 선배한테 있지만 나한테 없는 건 자기중심이다. 박영진 선배도 나처럼 자기 스스로 스트레스를 쌓이게 만드는 스타일인데, 그래도 자기중심이 있으니까 바람이 불어도 안 흔들리신다. 그 점을 배우고 싶다. 내가 ‘두분토론’에서 못 터뜨리고 위축돼 있으면 아무 말 없이 어깨를 꽉 한 번 잡아주고 가시는데, 그 손에 백 마디 말이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울컥한다.
그래서 ‘두분토론’이 끝나는 날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물론 새 코너를 하면 다른 선배들을 만나겠지만, 나의 첫 코너를 함께 했던 선배들은 남다르다. 매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김영희 어디 갔노?’ 하시면서 날 앉혀놓고 코너회의를 하시는 두 분은 나한테 ‘내비게이션’ 같은 선배들이다.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