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우빈 기자]
KBS2 월화드라마 ‘퍼퓸’의 신성록, 하재숙, 고원희. / 사진=KBS2 방송화면 캡처
KBS2 월화드라마 ‘퍼퓸’의 신성록, 하재숙, 고원희. / 사진=KBS2 방송화면 캡처
KBS2 월화드라마 ‘퍼퓸’이 따뜻하고 포근한 드라마로 남았다. 뻔한 로맨스 장르였지만 ‘변신 판타지’를 주제로 신선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픔을 치유 받고 사랑을 찾는 기적을 이룬다는 이야기로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설렘을 줬다. ‘대박 난 드라마’는 아닐지라도 잔잔한 감동과 함께 편안함을 선사했다.

지난 23일 방송된 ‘퍼퓸’ 마지막회는 민예린(고원희 분)과 서이도(신성록 분)가 향수를 만든 공방을 찾는 모습으로 시작됐다.

서이도는 민재희(하재숙 분)가 젊은 시절인 민예린의 얼굴로 돌아가게 만든 ‘기적의 향수’를 어린 시절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이 과정에서 ‘기적의 향수’는 20년 전 민재희를 짝사랑한 서이도가 만들었고, 민재희에게 택배로 보내주기로 했지만, 당시 택배 회사가 부도나면서 20년이 지난 후에 배달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공방을 찾았을 땐 공방도 사라진 후였다.

월드패션위크가 시작됐고, 민예린은 쇼에 설 준비를 마쳤다. 이때 김태준(조한철 분)이 민예린을 찾아와 향수병을 던져 깨버렸다. 낙담한 서이도를 본 민예린은 “그래도 다행이다. 내가 방금 전에 향수를 발랐거든. 12시간은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러면 패션쇼는 무사히 치를 수 있잖아”라고 달랬다. 서이도는 “민재희로 변해도 기절하지 않으니까 마음 놓고 당당하게 걸어”라고 용기를 줬다.

민예린은 쇼에 당당하게 섰고, 서이도는 그런 민예린의 모습을 보며 첫만남부터 최근까지의 일을 떠올리며 행복해 했다. 패션쇼가 끝난 후 거울을 보던 민예린은 자신을 부르는 서이도의 목소리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향수공방으로 빨려 들어갔다.

공방에는 민재희에게 향수를 전달했던 배달부이자 극락택배의 대표(이호재 분)가 있었다. 대표는 “그 사람의 모습을 빌리긴 했지만 내 본 모습은 아니다. 인간의 삶을 도와주는 시스템 같은 것”이라며 자신이 신(神)임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그는 민재희가 처음 자살을 시도했을 때 실제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줘 충격을 안겼다.

대표는 놀라 눈물을 흘리는 민예린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아주 큰 죄이지만 만나야 할 인연을 만나지 못해 그리 된 게 안타까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며 “늦었지만 서이도가 보낸 형수를 전해줬고, 만나야 할 인연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을 선택한 것, 꿈을 포기한 것, 인생을 놔버린 것 모두 다 민재희가 선택한 거다”라고 했다.

민예린은 “그러니까 이번엔 놓치고 싶지 않다”고 의지를 드러냈고, 대표는 “돌아가면 잘할 자신 있나. 세상을 다 가진 그 남자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나. 어떤 모습이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자신 있나. 그 향수는 민재희가 자신을 사랑하게 해 달라는 소년의 간절한 소망이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알려줬다. 민예린은 “내가 과거의 모습으로 변한 이유는 마흔 살의 민재희 모습이었다면 그 사람(서이도)을 사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스스로 깨달았다. 대표는 “지난 여섯 달 동안 당신도 많이 변했다. 혼자 일어설 수 있겠나? 당당하게 운명을 개척하라”며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

‘퍼퓸’의 신성록, 하재숙, 고원희 , 이호재. / 사진=KBS2 방송화면 캡처
‘퍼퓸’의 신성록, 하재숙, 고원희 , 이호재. / 사진=KBS2 방송화면 캡처
민예린이 사라졌다는 것을 안 서이도는 호두 알레르기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의 어머니 주희은(박준금 분)은 “사랑을 하다 보면 좋은 일보다 아프고 힘든 일이 더 많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무너지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겠나. 기다리자. 인생은 버티는 거야. 강하게 살아서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운명이 다시 너의 손을 잡아줄 거야”라고 설득했다.

서이도는 다시 만날 사랑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살아갔다. 그러던 중 그의 생일날 민예린이 미리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서이도는 “1년 후에는 내가 선생님 생일 챙겨줄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미리 보내요. 유성을 보면서 기도했어요. 선생님이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게 해달라고. 선생님의 첫사랑, 꼭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라고 쓴 민예린의 편지를 보며 그는 오열했다.

혜성이 쏟아지는 밤, 서이도는 민재희를 그리워하며 천문대로 향했다. 그때 기적처럼 서이도 앞에 민재희가 나타났다. 민재희는 “잘 지냈어? 나는 잘 지냈어”라고 인사했다. 서이도는 울컥한 마음을 누른 채 “재희야? 그동안 어디에 있었어? 내가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알아?”라며 원망하는 것도 잠시 “보고 싶었어”라고 울먹였다. 민재희는 “네 앞에 당당하게 서고 싶어서 나 정말 열심히 살았어”라고 말했고, 서이도도”나도 그랬다. 그래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고백하며 달려가 달려가 민재희를 안았다.

서이도는 민재희에게 반지를 내밀며 “민예린에게도 민재희에게도 꼭 맞는 반지다. 특수한 컨디션을 생각해서 내가 직접 디자인한 거다. 평생 손에서 빼지 마.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내 곁에서 매일매일 하루에 2만3040번 나와 함께 호흡해줘. 사랑해. 재희야”라고 청혼했다. 민재희는 “너 혼자 두고 가지 않을게. 29년, 290년 내가 너 지켜줄게”라며 웃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떨어지는 혜성을 봤다. 서이도는 민재희를 보며 마음속으로 “그녀가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처음 사랑에 빠졌던 그 모습 그대로 내 앞에 나타난 것처럼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사실 그 넓은 우주를 채운 수많은 물질 가운데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있는 건 4.9%에 불과하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날 지탱해주는 건 지금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자극적 NO, 선정적 NO…순한 드라마

‘퍼퓸’이 시청률로 ‘대박’을 치진 못했지만,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자극적인 요소 하나 없이 편안하고 담백한 스토리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꿈을 포기한 한 여자가 기적 같은 삶을 선물 받아 꿈을 이루고, 만나지 못했던 진짜 인연을 찾는 줄거리에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모습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았다.

여자 주인공을 대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 역시 편안했다. 까칠하거나 거친 모습도 없었고, 막말을 뱉거나 괴롭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랑 앞에서 조심했고 조신한 모습으로 방송 내내 안정감을 유지했다. 물론 서이도-민예린 로맨스의 방해꾼 김태준(조한철 분)이 있었지만, 그는 민예린을 압박하면서 사랑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설정이었다.
특히 사랑꾼 서이도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서이도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더 돋보이게 했다. 불편함 없는 줄거리에 큰 지분을 차지한 캐릭터는 서이도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한 여자만 바라보는 사랑꾼이었고, 사랑하는 여자의 꿈을 위해서라면 모든 인맥과 실력을 동원하는 능력자였다. 이는 ‘변신’과 ‘인생 2회 차의 기적’라는 드라마의 콘셉트와 맞물려 설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 신성록, 첫 로맨스 주연작 합격점

신성록은 ‘퍼퓸’을 통해 지상파 첫 주연이자 로맨스 장르에 처음 도전했다. 뮤지컬에서는 로맨틱한 역할을 맡았으나 드라마에서는 주로 악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였다. 강한 인상 때문에 ‘퍼퓸’ 초반에 신성록이 연기하는 서이도는 어색했다. 천재 디자이너라는 설정 때문에 말투는 딱딱했고 표정은 경직돼 있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신성록의 연기는 안정을 찾아갔다. 민예린을 보고 설렘을 느끼는 표정은 첫사랑을 겪는 소년이었고, 민재희와 재회한 서이도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신성록의 달달한 눈빛부터 사랑에 가슴 아파는 모습 등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으로 시청자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다.

우빈 기자 bin0604@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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