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한 장면
‘미생’의 한 장면
‘미생’의 한 장면

흔히 직장인의 일상은 고리타분하고 빤한 것이라 여겨져왔다. 드라마는 실장님에서 재벌2세, 전문직 급기야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외계인이나 초능력자들에 스포트라이트를 주기 바빴지만 정작 우리 주변에 그렇게나 많은 월급쟁이, 즉 회사원들의 일상은 구태여 공들여 묘사하지 않았다. 그것은 틀에 박혀있으며 따분하고 늘 쳇바퀴를 맴도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침내 tvN 드라마 ‘미생’이 열어젖힌 회사원들의 일상은 결국 연애나 하는(물론 연애가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이 된 세상이지만) 재벌2세나 전문직, 외계인의 그것보다 더 스펙타클했다. 평범한 밥벌이는 그토록이나 치열하더라. 매일 얼굴을 맞대 지겨울 것이라 여겨졌던 회사 동료 선후배들과의 관계 속에도 규정할 수 없는 수천개의 감정들이 피어났다. 그 일상을 자근자근 쪼개어 건져올린 ‘미생’은 마치 공기의 소중함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순간처럼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무겁고 고단하며 또한 신성한 것인지를 돌이키게 해주었다. 그러니 대한민국 샐러리맨들이 이 드라마에 환호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바로 내 밥벌이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으니.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원작 윤태호, 연출 김원석)의 인기가 뜨겁다. 케이블로는 대박에 해당하는 시청률 5%를 넘어선지 오래인 이 드라마는 지상파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케이블 콘텐츠가 됐다.

‘미생’은 프로 바둑기사 입단 시험에 실패하고 대기업 종합상사 인턴으로 취직하게 된 장그래(임시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장그래의 성장담으로도 요약할 수 있는 드라마는 서사구조 자체가 드라마가 궁극에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맞닿아있어 특별하다.

‘미생’은 장그래를 비롯, 그의 동기 안영이(강소라), 장백기(강하늘), 한석률(변요한) 등 주요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이들 신입사원 외에 각 회별로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주요인물을 설정, 그들의 이야기 가운데 주인공들의 성장담을 자연스레 녹여내는 형태로 한 회의 서사를 완성하고 있다. 직장 이야기를 한다면서 결국 이들의 연애 이야기로 수렴되는 여타의 지상파 드라마와는 다른 노선을 취한 ‘미생’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예컨대 이런 식이다.

지난 6회에는 우유부단하고 마음이 약해 거래처에 쓴 소리를 못하는 성격의 박대리(최귀화)가 에피소드의 중심이 됐다. 박대리는 가정적인 아버지이며 사람 좋은 선배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나약해 무능력하다는 인상도 주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어떤 장애도 금세 극복해내는 맥가이버 같은 주인공이 현실에는 과연 몇이나 될까. 가정과 직장 가운데 시계추처럼 힘없이 오가는 박대리의 축 처진 어깨가 보통 드라마에 등장하는 능력자들보다 훨씬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세상 모든 을의 마음을 울리는데도 성공한다. 여기에 장그래가 박대리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며 국면을 전환시키는 장면, 그러면서 그 자신도 직장 내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을 깨닫는 장면이 등장한다.

7회는 장그래의 상사이기도 한 영업 3팀의 오상식 과장(이성민)이 이야기의 구심점이 된다. 패기 있게 추진한 이란 원유 개발 아이템부터 상사가 제시한 중국 아이템까지 줄줄이 무산되는 가운데 술에 취할 수밖에 없는 오 과장의 아픔은 모든 샐러리맨의 가슴에 박히는 명장면, 명대사를 만들어냈다. 물론 여기에도 조직 내 복잡한 정치적 관계를 깨닫게 되고 이에 적응해나가며 일종의 무력감마저도 배우게 되는 장그래나 안영이의 에피소드가 깊이 연관된다.

9회와 10회에는 박과장(김희원)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철강팀 에이스에서 영업3팀으로 발령이 난 박과장은 요르단 현지에 친인척을 동원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 거액의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 인물. 하지만 무조건적 악역으로는 그려지지 않았으며, 대기업의 이기심 안에 한 조직원 개인의 욕망이 엇나갈 경우의 수를 현실감 있게 그린 에피소드로 회자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비열한 상사에 대처하는 장그래의 방식이 상당히 인상깊게 드러났다.

‘미생’의 한 장면
‘미생’의 한 장면
‘미생’의 한 장면

이처럼 회차별 주인공들이 따로 등장해 주제를 이끌고 나가는 가운데 장그래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성장담이 자연스레 녹아나는 형태로 완성된 한 회의 서사는 ‘미생’이 궁극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맞닿아있다. ‘미생’은 결국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는 것, 즉 모두가 각자의 인생의 주인공이며 세상을 뒤흔드는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조직의 한 일원이 되어 밥벌이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신성한 노동이라는 주제를 전하려 하는 드라마다. 그러니 장그래나 그 주변인물 뿐 아니라 조직을 구성하는 조직원 곳곳에 고루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서사구조 자체는 드라마의 주제의식과도 절묘하게 맞물리며 완성도가 한층 높아진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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