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를 부탁해> KBS2 밤 9시 55분
효과적인 도입부는 참신함으로 주목을 끄는 동시에 체계적으로 인물과 배경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가씨를 부탁해>의 시작은 마치 KBS <꽃보다 남자>의 한 장면을 보듯 낯익은 시퀀스의 연속이었다. 재벌이라는 계층에 대한 상상력의 한계인지, 클리셰에 대한 안일한 태도 덕분인지 내레이션을 통해 요약하는 인물의 성장사와 잡지 커버를 통해 유명세를 대변하는 방식은 물론 안하무인의 태도와 결혼에 관한 위기까지도 무엇 하나 눈에 익지 않은 설정이라고는 없었다. 게다가 성추행을 무리하게 에피소드로 끌어들이는 불편한 전개 방식이나 채무를 인물의 단순한 위기로 설정하는 무신경함, 상식 이하로 상황을 끌어가는 경찰의 캐릭터 등은 <포도밭 사나이>를 비롯, 특히 주인공인 윤은혜가 그동안 출연해 온 많은 로맨틱 코미디의 몇몇 장면들을 응용 없이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씨를 부탁해>는 지루하지 않고 편안하게 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장르적 미학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진부한 소재와 단순한 구조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듯 빠른 템포로 처리된 편집은 마치 전회의 요약본을 보듯 주요한 대목을 짚으면서도 경쾌하게 극을 이끌었다. 또한 두 인물이 첫 대면을 하고 한 배를 타기까지의 과정이 막힘없이 진행되면서 오늘 방송은 ‘전초전’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한 기능적인 한 회였다는 인상마저 주었다. 멍석은 깔았다. 2회부터 펼쳐놓을 진짜 알맹이가 얼마나 혁신적이고 유쾌할 수 있을지, 진짜 평가는 이제부터다.
글 윤희성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MBC 수 밤 12시
19일 ‘라디오스타’는 MBC <놀러와>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라도 했는지 많은 관계를 내세웠다. 오랜 선후배 박미선-이경실은 이봉원을 사이에 둔 ‘처 vs 첩’, 별 관계없어 보이던 윤종신-이봉원은 박미선의 ‘시트콤 남편 vs 현실 남편’으로 정의됐다. 이경실 vs 김구라, 이봉원 vs 김국진의 약육강식 우열관계도 반복 강조됐다. 천하의 김구라는 이경실 누나에게 줄곧 밀렸고, 싱글남 김국진은 박미선의 용모를 칭찬하다 처첩을 거느린 개그계 옴므파탈 이봉원에게 면박당했다. 여기에 게스트와 MC들이 공유한 과거 방송경력까지 언급되면서 출연자들의 관계는 ‘스타 人라인’에 버금가는 거미줄을 만들어냈고, 촘촘한 관계망에 게스트 4인방의 관록이 더해져 8인의 담화는 자잘한 웃음이 연속적으로 오가는 핑퐁 토크가 됐다. 웃음의 강도만으로 봐서는 레전드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성인 토크를 유지하되 선을 넘지 않는 균형감은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이경실의 치근거림에 의뭉스레 응수하는 이봉원의 ‘첩’ 개그나, 남편 옆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리스트를 열거하다가 다음 대목에선 달빛에 비친 이봉원의 몸이 섹시하다고 자랑하는 박미선의 초지일관 다소곳한 말투 같은. 과하지 않은 농담으로 유쾌하게 상대를 공략하고, 상대는 그 공격을 눙치며 웃음을 이어가는 순환 토크는 찬사가 과하다 싶었던 ‘무릎팍 도사-한비야편’의 느끼한 뒷맛을 어느 정도 씻어주는 것이었다. 하나 더. 신인가수 견미리의 출연은 음반 홍보를 위한 제작자의 그림자가 너무 짙긴 했어도, 신정환의 오두방정 백댄싱과 추임새를 곁들인 그녀의 신곡 발표무대는 적어도 15일 MBC <쇼! 음악중심>보다는 자연스러웠다.
글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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