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보지 않았다. 울지 않았다. 계속 나의 일을 했다.” 22일 방송된 SBS 마지막 회에서 동지이자 벗이자 백성이었던 채윤(장혁), 소이(신세경), 무휼(조진웅)과 정적 정기준(윤제문)마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세종(한석규)은 되뇐다. 그리고 다짐하듯 다시 말한다. “그리고 나는 계속 나의 일을 했다.” 일하는 왕, 고뇌하는 왕, 욕하는 왕 세종 혹은 이도와 한글 창제에 얽힌 이야기를 그린 는 김영현-박상연 작가의 전작 MBC 에 이어 2011년에도 가장 문제적 드라마였다. 역사와 정치, 문화와 인간, 지배자와 피지배자, 절대 권력과 또 다른 권력의 관계를 세종의 가장 위대한 유산인 글로 치열하게 풀어낸, 김영현-박상연 작가를 만났다.

역시 엔딩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박상연 : 강채윤, 소이, 무휼, 정기준 모두 다 죽는다. 이도를 진짜 죽는 순간까지 쓸쓸하게 만들려고 했다. 보신 분들이 어쩌면 ‘차라리 죽이지’라고 하실 수도 있을 정도로 굉장히 쓸쓸하게 보여주려고 했다.
김영현 : 채윤이 마지막 대사에서 “어차피 백성은 고통으로 책임진다고 했잖아요”라고 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백성의 대표였던 소이와 채윤이 이도를 살리고 죽는 거다. 너희가 일만 잘 해주면 우리는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는 느낌으로.
박상연 : 이도가 훈민정음 서문을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를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백성이 니르고저 할빼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놈이 하니다. 내 이를…”까지 써 놓고 뒤를 잇지 못한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가 소이의 죽음을 전해 듣고 즉흥적으로 “어여삐 녀겨”라는 사랑 고백을 하는 거다. 정기준이 “넌 백성을 사랑한 게 아냐. 귀찮아한 거지”라고 말한 이후로 자신도 헷갈렸던 백성에 대한 마음을.

이도 안에서 백성과의 멜로가 있었던 거다
김영현-박상연 작가 “이러라고 한글을 만드신 게 아닐 텐데”
김영현-박상연 작가 “이러라고 한글을 만드신 게 아닐 텐데”
이도가 다른 왕이나 많은 지도자들과 크게 다른 지점이 바로 백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였던 것 같다. 단지 백성이 불쌍하기 때문에 시혜적인 의미로 글자를 만들어주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가 바라본 백성은 어떤 존재였을까.
김영현 : 조선이라는 시대를 기준으로 ‘세종이 백성을 어떻게 바라봤을까’와 우리가 드라마 안에서 이도를 어떻게 그렸느냐는 조금 다르다. 그 전까지 백성이 무지하고 다스려야 하는 대상이었다면 조선 초기의 성리학은 이들을 어떻게든 군자로 끌어올리겠다는 혁신적인 성격의 학문이었다. 그래서 시혜라기보다는 교화에 가깝고, 백성들도 배움을 가질 수 있으며 그 배움을 통해 인간의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도의 가치관은 당대에는 굉장히 선진적인 사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현대에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고, 그것의 한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니까 단지 ‘불쌍히 여긴다’가 아니라 백성을 무서워하는, 대중의 욕망을 두려워하는 임금을 생각했다. 왕이고 성리학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니까 백성은 무조건 자신이 보살피고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당위는 있었을 텐데, 그것을 대충이 아니라 전력을 다해 고뇌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짜증도 화도 무서움도 무력감도 느끼지 않았을까.
박상연 : 무력감은 우리가 계속 견지하고 싶었던 코드 중 하나다. 한글 반포까지도 이미 한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업적인 만큼 정말 열심히 사셨지 않나. 하지만 백성들이 방을 읽지 못해 역병으로 죽어가는 상황을 보면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 것 같고,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백성, 대중의 욕망을 완벽히 충족시켜주는 것은 불가능한 거니까. “글자 모르는 게 벼슬이냐”라는 대사는 이도의 그 미치겠는 마음에 이입해서 나왔고, 그렇게 이를 악물었다가 정기준이 “넌 백성을 귀찮아한 거잖아”라고 말했을 때 ‘내가 진짜로 백성을 사랑하지 않았나?’라는 갈등을 시작하는데 결국 반포식에서 채윤이 말한 것처럼 그게 사랑이라는 걸 깨닫는 3단계가 이루어진 거다. 이도 안에서 백성과의 멜로가 있었던 거지.

그렇다면 훨씬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MBC 을 쓴 다음 누구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여러 안이 있었을 텐데 왜 세종이었나.
김영현 : 보다 이 소재가 먼저 결정되어 있긴 했다. 그 전에도 세종에 대해 쓰고 싶어서 고민했던 적이 있지만 KBS 이 나와서 이제 세종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제작사인 싸이더스 측에서 소설 를 보여주셨는데 세종의 이야기 중에 글자에 관한 것만 따로 떼어 할 수 있다는 점, 추리물과 연쇄살인이라는 포맷이 흥미로웠다. 우리에겐 그 시대가 굉장한 태평성대로 알려져 있고 모든 게 다 순조로웠던 것 같지만 사실은 조선이 개국한지 26년 밖에 안 된 시대였다는 게 재밌었다. 조선 초 이성계와 이방원 시기에는 굉장히 권력 투쟁이 심했고, 이방원이 이도에게 물려줄 때는 모든 것을 쳐냈었다고는 하지만 그 많은 신하들이 준동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이도가 잘 다스렸기 때문에 다시 세력을 뻗지 못한 것뿐이지만 그만큼 얼마나 많은 압박감을 느꼈을까를 생각했다. 정말 잘 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열심히 한 게 아닐까.
박상연 : 우리가 썼던 KBS 를 비롯해 사극을 보면 인조 시대가 배경인 경우가 많다.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대니까. 그런데 가장 태평성대였던 걸로 여겨진 세종 대에 어떻게 드라마틱한 부분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원작에 기댄 부분도 있고, “임금이 태평한 태평성대를 보았느냐. 내 마음은 지옥이기에 그나마 세상이 평온한 것이다”라는 대사로도 나갔듯 이 안에서 마음이 지옥인 캐릭터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했을 테니 욕을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웃음)

심의가 걱정되지 않았나. (웃음)
김영현 : 걸리지 않을 만한 걸로 굉장히 열심히 찾았다. (웃음) 개연성을 주기 위해 똘복이가 먼저 욕한 걸 나중에 이도가 따라하는 식으로.
박상연 : ‘지랄’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로 나가는데 걱정을 좀 했다. 이야기의 전개상 너무나 필요한 말로 이어지는데 갑자기 심의위원회에서 “이거 쓰면 안 돼” 하면 드라마를 할 수가 없을 테니. (웃음)

전통적인 사극의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조각들이 모여 퍼즐을 맞춰가는 것 같은 구성으로 쓰였는데, 좋은 시도일 수는 있지만 위험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박상연 : 위험하다. 다시는 안 할 거다. 너무 힘들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리도 헷갈린다. (웃음)
김영현 : 그동안 50부작 이상을 쓰면서는 한 인물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는 구성이 많았는데 는 단면이면서도 스펙터클하게 풀어가야 한다는 면에서 여러 인물 간의 갈등과 사건이 필요했다. 그래서 드라마트루기적인 측면이 굉장히 컸는데, 판을 짜면서도 많이 긴장했다. 보통 드라마는 양자 구도지만 우리는 강채윤이라는 인물에게 백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캐릭터를 부여하면서 이도-정기준-강채윤의 삼자 구도가 되어 버렸고, 이 셋이 다 팽팽해야 했다.
박상연 : 그 세 꼭짓점마다 함께 움직이는 인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도 각각 다른 생각을 하니까. 예를 들어 이신적이 정기준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고, 조말생도 세종의 편인지 적인지 분명하지 않다. 각각에게 독립된 의지를 주고 싶었다.
김영현 : 짜 놓고 보니 ‘이거 잘못하면 완전 산으로 가겠다’ 싶었는데 그렇다고 구조로 돌아가게 되지는 않았다. 정신 차리고 쓰고, 망하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했던 건데 아무래도 돌아갔어야 하나. (웃음)

‘밀본’이라는 조직의 이름은 원작에 없는 오리지널인데 어떻게 나온 건가.
박상연 : 절대로 MB를 의도한 게 아니다. (웃음)
김영현 : ‘뿌리깊은 나무’를 한자로 하려다 보니 ‘근지목’이었다. 어감이 더 좋은 이름을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심목, 심근도 좀 아닌 것 같아서 밀본이라는 말을 찾았다. 본 중에 뿌리라는 의미도 있고.

“세종대왕은 하늘이 내려주신 분”
김영현-박상연 작가 “이러라고 한글을 만드신 게 아닐 텐데”
김영현-박상연 작가 “이러라고 한글을 만드신 게 아닐 텐데”
흔히 정조를 개혁 군주라고 하지만 세종이야말로 문자를 통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냈다는 면에서 엄청난 개혁을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자신의, 성군의 시대가 끝나고 나서도 국가가 균형 있게 굴러갈 수 있을 시스템이나 인프라를 만든 왕인데 그것은 무수한 토론으로부터 정반합을 거친 과정 덕분일까, 그 시대보다 훨씬 앞선 상상력을 가진 개인의 뛰어남 덕분이었을까.
김영현 : 어떤 나라가 세워지면 권력 투쟁을 겪고 기반을 닦는 왕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도는 초인에 가까웠던 인물인 것 같다. 그게 꼭 조선이라는 사회에 얽힌 체제 뿐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도 있고, 문화적인 분야에서는 한글이 있었는데 그 또한 학자들이 평생에 걸쳐 해도 쉽지 않았을 일을 일국의 왕이 음운학부터 스스로 공부해서 만들어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다. 어떻게 보면 당대에 한글은 여자들과 하층민 외에 큰 의미가 없었을 업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대에 그토록 완벽을 기해 만든 것이 지금까지 너무나 훌륭하게 사용되고 있으니까, 정말 하늘이 내려주신 분이다.
박상연 : 돌아가시기 5년 전에 한글을 반포하셨는데, 왜 하필 마지막 업적을 글자로 하셨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마 그 분께서도 그 당시에 500년 뒤의 백성들을 내다보시지는 않았을 테고, 왕권 강화라는 측면도 있었을 것 같다. 왕과 사대부의 2자 구도에서 백성까지의 3자 구도로 가고, 왕이 사대부를 거치지 않고 백성에게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권력은 사대부 쪽에서 빼앗기게 되었을 테니까. 어쨌든 분명한 건 세종은 ‘이런 사람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라는 거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에 대해 그랬듯, 너무나 뛰어난 실무자인 동시에 경영자인 사람들이 아주 드물게 있는데 이 분은 한 200가지 분야에서 그랬던 거니까.

한편으로는 성군이 역사를 바꾼다는 것, 완벽해 보이는 지도자 한 사람에 기대어 가는 것은 발전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었다.
박상연 : 그래서 정기준이 “훌륭한 왕은 차악일 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나. (웃음)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었고, “똥지게는 (임금이 아니라 재상총재제라는) 체계가 져야 한다”는 대사도 그런 고민 속에서 나왔다. 사실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다. 이도를 보면서 ‘저런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왕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많은 반면 현대의 대통령 같은 지도자로 바로 치환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김영현 : 사실 우리로서는 어느 쪽에 분명한 힘을 싣기보다는 왕의 대표인 이도, 사대부의 대표인 정기준, 백성의 대표인 채윤과 소이 각각에게 대등한 입장을 주고 생각하게 하려는 목표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 이도에게 감정이입을 하시는 걸 보며 작가로서 균형을 못 맞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다.

정기준의 경우 세종과 목표보다 방식이 달랐고 스스로는 악하지 않다고 믿는 인물인데 이 캐릭터는 처음의 의도대로 잘 표현된 것 같은가.
김영현 : 조금 아쉽게 된 부분이 있다. 초반 연쇄살인으로 이야기를 가다 보니 10부 동안 어린 시절 사연 한 번 외에 그의 정체가 거의 나오지 못했다. 강채윤이나 이도에 비해 이 사람의 심리에 더 감정이입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했던 것 같다. 사실 개인적인 사연을 놓고 보면 할 이야기는 굉장히 많다. 물론 정기준의 집안은 가상으로 설정했지만 정도전은 아들 하나와 동생 빼고 모두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게다가 정기준과 당시 사대부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조선을 만들었다는 의식이 있을 거고, 성리학을 하는 선비로서의 프라이드도 강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이 글이라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며 ‘기득권이라는 게 왜 나빠?’라고 한다면 그러한 심리를 더 설득력 있게 드러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야 반대 입장에서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니까.

때 미실과 덕만의 6분 토론에 이어 이도와 정기준의 20분 토론도 인상적이었다. 각자의 세계관이 치열하게 충돌하는 상황을 통해 드라마적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는데 어떤 식으로 고민하고 구성했나.
김영현 : 다행히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정말 감사했다. 우리끼리 굉장히 많은 토론을 하고 준비하면서 ‘너무 어렵지 않아?’ ‘너무 추상적이야. 이런 걸 누가 듣겠어’ 하고 고심했다. 물론 그걸 듣게 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넣고 긴장되는 상황을 물려 놓긴 했지만 매번 굉장히 걱정했는데, 거기에 몰입해 주셨다는 게 정말 고맙다.
박상연 : 각자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현대 사회에서의 이슈, FTA 같은 것도 여러 가지로 접목시켜 봤다. 영화 을 보면 영화배우 찰톤 헤스톤이 “부정한 권력자에 대항해 총기를 가질 자유가 있다”는 헌법을 가져와 총기자유화를 지지하지만 현실은 총기업자의 로비에 의해 자유화가 되고 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다. 그런데 글자를 무기로 볼 경우 이걸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해? 서로 막 죽이라고? 옛날에는 돌 맞고 죽은 사람이 많겠지만 지금은 글자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은데?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정 안 되면 막 연기까지 하면서 치열하게 싸웠다. 정반합을 놓고 보면 서로 항상 자기가 ‘정’이라 생각하면서 토론한다. (웃음)

그러한 ‘글자’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가면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박상연 : 결론적으로는 ‘무기’가 됐다. 굉장히 좋으면서도 위험하기도 하다는 면에서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가장 비슷한 의미를 가질 것 같고, 역사적으로는 루터가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 성경을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휴대폰이 나오는 시대, SF를 해보고 싶다”
김영현-박상연 작가 “이러라고 한글을 만드신 게 아닐 텐데”
김영현-박상연 작가 “이러라고 한글을 만드신 게 아닐 텐데”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사람은 세상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는 정기준의 말은 대중을 향한 드라마를 쓰는 사람으로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텐데.
김영현 : 책임을 많이 느낀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생각을 드라마에 담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예전보다 직설적으로 쓰는 일은 더 줄어든 것 같다. 그보다는 단 하나라도 생각을 하게 하려는 쪽이고, 두 사람이 작업하면서 서로에 대한 검증을 계속 한다. 그래서 양쪽을 더 대등하게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논쟁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는지도 모른다.
박상연 : 요즘 ‘나는 꼼수다’나 영화 의 “거대한 힘에는 거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대사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어떤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되면 내가 힘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힘이 나를 움직일 수도 있겠구나.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대중을 상대하는 매스미디어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무엇으로 책임을 질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하고, 그 말을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로 변환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거기 하나 더 추가해서 책임질 수 있는 말인가를 반드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방송 전 “모두가 문자를 알고 쓰는 것이 옳기만 한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스스로의 답은 나왔나.
박상연 : 사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던지지 못했다. 반성한다. 정기준의 등장 시기나 감정 이입에 있어 균형이 좀 안 맞으면서, 노력은 했지만 날카로운 질문은 부족했던 것 같다.
김영현 : 답 자체는 간단했다. “공부 좀 하고 써라”, “남들 생각 좀 하고 써라”. 이건 우리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다. 글이라는 건 쓰는 순간 자기 사고도 재정립되는 건데, 너무 막 쓰게 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박상연 : 포털 사이트의 기사 댓글이나 익명 게시판을 보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도 드라마를 쓰며 굉장히 사악한 캐릭터를 그리고 센 대사를 생각하지만 그런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글들이 있다. 잔인한 의도를 살리기 위해 빛나는 아이디어까지 넣은 글을 쓰는 걸 보면, 윤리가 너무 없는 사회가 아닌가.
김영현 : 윤리보다 책임이라고 본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고, 그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인지를 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부재한 것 같다.
박상연 : 이러라고 한글을 만들어주신 게 아닐 텐데. (웃음)
김영현 : 세종은 드라마에서 간단하게 “그건 걔네들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해” 하셨는데. (웃음)

당시 인터뷰에서 “세상은 사실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칭하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본질적으로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그 절망적인 세계에서 대단히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 작은 희망을 본 것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상연 : 자꾸만 바뀐다. 한 때는 정말 인간과 역사에 대해 희망에 차 있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역사의 진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다 자본의 음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회의하게 됐다. 87년 6월 항쟁 당시 싸운 상대가 군사 파시즘이었다면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굴종하고 있는 자본의 언덕은 싸우기엔 너무 힘든 상태니까. 할 때만 해도, 지배자들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노예가 농노로, 노동자로 바뀐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고. 여전히 고민되는 주제다.
김영현 : 나는 그런 것들이 모두 변화고 발전이라고 본다. 조선이 고려의 부패한 시스템을 무너뜨리면서 시작했으나 500년이 흐르면서 부패하고 망하고 다음으로 넘어간 것처럼 자본주의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나에게 중요한 건 무엇이 변화냐 발전이냐 보다 그 안에서 나의 포지션, 내가 어느 방향으로 태도를 취하고 살 것이냐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이미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욕망을 표출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면 그로 인해 어떤 것은 해결되고 어떤 문제도 생겨날 거다. 그러면 그게 발전인지는 모르겠지만 변화로 인정하고 나의 포지셔닝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그렇게 이미 나온 걸 억압하고 막는다는 건 말도 안 되고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뿐이다.

, 집필에 이어 박상연 작가는 영화 각본을 썼고 올해는 MBC 크리에이터로 함께 참여하는 등 몇 해 동안 쉬지 않고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아직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다음에 쓸 이야기는 어떤 건가.
김영현 : 내년에는 우리와 오래 일했던 보조작가가 집필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크리에이터를 맡기로 했다. 그리고 2013년 MBC에서 방송될 50부작 드라마를 준비해야 한다.
박상연 : 50부작이면 아무래도 사극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많지만 우리의 오랜 꿈은 휴대폰이 나오는 시대의 이야기를 쓰는 거였다. (웃음) 60년대에 시작해서 현대로 오는 시대극도 있지만 우리는 현재에서 시작해 미래로 가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김영현 : 아예 SF는 어떨까 생각한다. 쓰는 우리도, 보시는 분들도 재미있을 것 같다.
박상연 : SF를 하겠다고 하면 방송사에선 깜짝 놀랄 거다. (웃음)

인터뷰, 글. 최지은 five@
인터뷰. 한여울 기자 six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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