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소녀시대, SM의 스페셜 에디션
[강명석의 100퍼센트] 소녀시대, SM의 스페셜 에디션
소녀시대의 ‘훗’의 (노래가 아닌) 무대는 시속 160km의 직구다. 어떤 공인지 알아도 칠 수 없다. 뚜렷한 콘셉트, 댄스음악, 군무. ‘훗’은 그동안 소녀시대의 방향과 같다. 다만 그들은 더 강하게 그것을 밀어붙인다. ‘Oh!’는 노골적이었다. 치어리더 복장으로 ‘오빠를 사랑해’를 외쳤다. 시작부터 ‘전에 알던 내가 아냐 brand new sound’를 부르고, 후반에는 ‘오 오 오 오 오빠를 사랑해’라는 후렴구로 계속 대중의 귀를 자극했다. 반면 ‘훗’은 전주-1절-후렴구-2절-후렴구-브릿지-마무리라는, 기존 노래의 기승전결을 따른다. 과한 전자음이나 오토튠도 없다. 라이브 연주가 가능할 만큼 기타, 베이스, 드럼이 곡을 이끈다.

밋밋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훗’은 곡 전체의 기승전결을 조각내 다시 작은 기승전결들을 만든다. ‘눈 깜짝할 사이 넌 또 check it out …. 다 다 다’는 1절이지만, 동시에 ‘다 다 다’를 후렴구처럼 강조한다. 후렴구도 ‘너 때문에.. 맞서줄게’, ‘trouble trouble trouble’, ‘너는 shoot shoot shoot 나는 훗 훗 훗’ 등 각자 다른 멜로디 세 개로 나뉜다. ‘후크송’처럼 특정 멜로디를 반복하는 대신 각 파트마다 반복적인 멜로디를 하나씩 제시하며 계속 임팩트를 준다. 물론 쉽지는 않다. 1절의 ‘다 다 다’와 후렴구를 바로 연결할 수는 없다. 그 사이에 ‘어딜 쳐다봐….’처럼 흐름을 끌어올리는 부분이 있다. 이 때 펑키한 기타는 사라지고, 곡의 속도는 늦어지면서 곡의 흐름이 깨진다. 또한 파트를 잇기 위해 사용된 전자음이나 신디사이저는 곡의 리듬이 가진 힘을 죽이고, 평면적인 믹싱으로 인해 산만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훗’, 소녀시대와 SM엔터테인먼트의 정점

그러나 이 부분에서 서현과 수영은 1,2절로 나눠 도도한 워킹을 이끈다. 앞 부분에는 각각 태연-티파니-써니-윤아, 제시카-유리가 등장한다. ‘단신파’인 태연의 동작은 손 위주로 작게, ‘장신파’인 윤아는 몸 전체의 선을 강조한다. 수영과 서현은 아예 긴 다리를 부각시킨다. 멤버들은 각자 자신을 드러낼 시간을 갖고, 덕분에 ‘훗’의 반복적인 멜로디는 다채로운 캐릭터 쇼의 BGM이 된다. 수영의 등장 뒤에는 태연의 갑작스런 고음 보컬이 등장한다. 반복적인 멜로디로 구성된 곡을 클라이막스로 가져가려는 고육책이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메인보컬’ 태연의 존재감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단지 태연의 캐릭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때 다른 멤버들은 태연을 중심으로 몸을 쭉 펴면서 그의 고음을 시각화 시킨다. 2NE1과 미스 A같은 4인조 걸그룹은 댄서들과 함께 무대 전체를 영화의 미장센처럼 연출했다. 하지만 9명인 소녀시대는 그들의 군무만으로 미장센을 만들어낸다. ‘물속에서 뜨면 가라앉게 / 내가 만든 Circle 넌 각지게 / 묻지 않은 말에 대답만 또 해’처럼 반복적인 멜로디에서도 세 무리로 나뉘어 곡에 다채로운 느낌을 부여한다. ‘trouble trouble trouble’에서도 중앙-좌우로 순서를 두고 ‘화살춤’을 보여준다. 옆을 쳐다 보지 않아도 동작은 딱딱 떨어진다.

‘훗’의 무대는 소녀시대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역량이 정점에서 만난 결과물이다. ‘훗’은 SM 특유의 노래/안무 스타일인 SMP의 연장선상이다. 멤버 모두 캐릭터가 강조된 파트를 소화하고, 고난이도의 군무가 있으며, 강타와 신혜성이 그랬던 것처럼 태연이 클라이막스에서 ‘질러’준다. 과거 SMP가 SM의 팬이 아닌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웠다면, ‘훗’은 펑키한 리듬의 일관성을 지키며 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선 안에서 SM 특유의 요소들을 정밀하게 집어넣었다. ‘훗’은 마치 삼성전자 같은 대규모 전자회사가 창사 기념으로 만든 수공예 휴대폰 같다. 트렌드를 쫓지도, 무시하지도 않는 선을 지키며 그들만의 스타일을 완성도 높게 구현했다.

더 이상 ‘사랑해’를 남발하지 않아도 되는 걸그룹
[강명석의 100퍼센트] 소녀시대, SM의 스페셜 에디션
[강명석의 100퍼센트] 소녀시대, SM의 스페셜 에디션
그러나 SM의 스페셜 에디션은 소녀시대 그 자체다. ‘훗‘은 ‘Oh!’처럼 노골적인 애교나 ‘Run devil run’처럼 강한 여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영화 를 연상시키는 복고적인 스파이 걸 콘셉트 안에서, 소녀시대는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것을 보여준다. 무대마다 의상과 배경의 콘셉트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그들에게 상처를 준 남자를 차버리며 ‘애교, 도도, 섹시’를 한 번에 보여준다. 2NE1 정도를 제외한 걸그룹이 갈수록 섹시함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섹시함을 앞에 놓지 않고도 여성적인 매력을 연출한다. 그건 ‘훗’의 무대와 소녀시대의 현재 위치가 결합한 결과다. 그들은 한국에서 범대중적인 그룹이자, 오리콘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톱스타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소녀시대는 ‘사랑해’를 남발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들의 위치에 걸맞는 무대로 대중을 굴복시킨다. 그리고 SM은 그들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보다 더 어려운 군무를 만들고, 소화하도록 만든다. ‘다시 만난 세계’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소녀들의 세계는 ‘훗’에 이르러 보다 높은 차원에서 완성됐다. 걸그룹은 점점 질려간다. 새로운 탈출구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소녀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그들이 해왔던 방식으로.

글. 강명석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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