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가 아닌 성장이 진행되기에 청춘은 가능성으로 가득한 시기다. KBS 과 MBC 는 이 청춘들의 이야기다. 환경과 성격, 노선마저 다른 소년들과 소녀는 성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천재소년과 평범한 소녀는 한 지붕 아래서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거나 발견한다. 이 차이에서 누군가는 아직 여물지 않은 신념을 키워가고 누군가는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조금씩 커간다. 위근우 기자와 김선영 TV평론가가 로맨스와 성장으로 압축할 수 있는 과 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지혜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 성균관 박사 정약용(안내상)의 이 가르침은 KBS 의 인물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이선준(믹키유천)을 성균관 유생의 길로 이끈 것은 과거시험장에서의 답안 때문이 아니라 과연 이 시험이 가문과 당색에 얽매이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 때문이고, 덩달아 성균관 유생이 된 김윤희(박민영)가 신방례와 대사례 등 굵직한 행사의 주인공이 된 것 역시 가난한 사람과 여자는 성균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기존 권위에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질문에 대한 세상의 답은 결국 진리가 아니기에 또 다른 질문을 부르지만 정약용의 말대로 지혜는 답이 아닌 그 질문의 과정에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의 정치 사극으로서의 요소와 청춘물로서의 요소가 조우한다.

질문하고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vs <장난스런 키스>│아이들은 자란다
vs <장난스런 키스>│아이들은 자란다" />사실 로맨스 소설 을 원작으로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기대했던 것은 KBS 같은 꽃미남 청춘물이거나, MBC 같은 남장여자와의 아슬아슬한 로맨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원작 소설이 역사적 맥락을 희석시키는 방식으로 현대적 느낌의 로맨스를 실현했다면, 은 근대화의 기로에 선 정조 시대로부터 현대적 의의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동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개혁을 원하는 군주와 그에 맞서는 기득권 세력의 구도는 KBS 처럼 노무현 시대에 대한 은유에 가깝고, 시전상인과 노론의 결탁에서 현대 정치인과 재벌의 밀월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런 묘사가 동시대의 얄팍한 복제에 그치지 않을 수 있는 건,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쉽게 나눌 수 없는 고민의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라는 좌의정(김갑수)의 신념은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조의 그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진보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신념이 하나의 독단이 되어 절대왕권만큼이나 부패한 노론의 절대 권력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왕권 강화를 정당화한다면 현명한 왕인 정조 이후의 시대가 불확실하다. 과도기의 나라에 정확한 답은 없다. 하여, 질문하고 질문하고 또 질문해야 한다.

청춘, 유예가 아닌 성장하는 시간
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실제로 인생의 과도기를 보내는 성균관의 유생들이다. 아직 현실 정치에 나설 수 없는 그들은 필연적으로 자신만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그 잣대가 현실 속에 들어맞지 않을 때마다 그들은 다시 새로운 질문과 고민을 해야 한다. 김윤희의 무죄를 밝히기 위한 수사에서 잘금 4인방은 유생들의 물품을 훔친 범인을 찾아내지만, 도둑질이 아니고서는 어머니의 장례조차 변변히 해줄 수 없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범인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선준의 말대로 도둑질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책에 나온 어떤 원칙 하나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계속해서 그 모순에 대해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성장한다.

이 잘 만든 성장물인 건, 성장이라는 말의 온전한 무게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잘금 4인방을 비롯한 유생들은 유예의 시간을 사는 청춘이지만 결코 현실과 괴리된 한량은 아니다. 그들은 각기 나름의 신념과 철학이 있지만 다른 이들과의 소통 혹은 다툼을 통해 그것을 더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만들어간다. 원칙주의자 이선준은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만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김윤희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노론을 증오하는 문재신(유아인)은 당파의 이름보다는 어떤 뜻을 품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노론 이선준에게 배운다. 마찬가지로 조선에 대한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김윤희 역시 편견 너머의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운다. 때로 그것은 아버지와 대결하는 것(이선준)처럼 괴로운 경험을 동반하지만 성장이란 질문을 놓치지 않는 치열함을 통해서만이 언제나 미완성이되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조선이 그래야 할 것처럼. 아니, 드라마 속 조선이 은유하는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그래야 할 것처럼.
글 위근우

소녀의 사랑은 꿈에서 시작되고 소년의 사랑은 장난에서 출발한다. MBC 는 이를테면 그 몽상과 현실 사이 혹은 장난과 진심 사이에 위치한 드라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소녀와 모든 것이 완벽한 소년의 로맨스가 몽상과 장난에 가까운 판타지라면, 그들의 이야기가 현실과 진심을 향해가게 만드는 것은 성장의 코드다. 로맨스와 성장, 두 요소가 나란히 보조를 맞출 때에만 의 이야기는 비로소 완전한 모양새를 갖춘다. 하니(정소민)의 유일한 장점이 승조(김현중)의 유일한 결핍을 채우며 진행되는 특유의 로맨스가 성장의 성격과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원작 만화를 각색하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그 성장물로서의 성격이 더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 성장과 로맨스의 불균형
<성균관 스캔들> vs <장난스런 키스>│아이들은 자란다
vs <장난스런 키스>│아이들은 자란다" />의 초반부가 그토록 헐거워진 것은 그 성장과 로맨스의 균형을 잃고 무리한 로맨스 판타지에 치중한 데서 비롯되었다. 승조를 보다 완벽한 왕자님으로 만들기 위해 동화 같은 ‘숲의 정령’ 상상신이 동원되었고, 그 안에서 그는 도도한 천재 소년이 아니라 다 자란 남자 어른처럼 지루해 보였다. 그가 하니에게 원작보다 더 자주 흑기사 같은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승조를 성장의 여지가 거의 없는 완성형 인물에 가깝게 그릴수록 하니는 그의 도움을 받기만 하는 민폐 캐릭터가 되고, 그 의존적인 관계는 제대로 된 로맨스도 성장도 이뤄내지 못한다. 가 전환점을 마련하는 건 승조와 하니가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MBC 청소년 단막극 에서 보여주었듯 성장 서사에 장기가 있는 고은님 작가는 승조와 하니의 대학 진학 에피소드를 원작에서보다 진지하고 비중 있게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완벽한 캐릭터처럼 보였던 승조의 유일한 결핍이 ‘꿈’이었음이 드러나고, 꿈꾸는 것이 특기인 하니는 비로소 그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하니는 꿈이 없는 승조에게 “나는 재밌게, 남은 행복하게” 살라던 할머니의 가르침을 들려준다. 인생이 너무 빨리 심심해져버린 그에게 이 말은 큰 영향을 미치고, 그는 자신의 일상을 자꾸만 재밌게 만드는 하니에게 관심을 가진다. 저 말에서 더 중요한 것은 “남은 행복하게”라는 부분이다. 아직 “나는 재밌게” 단계의 이해에만 머물러있는 승조가 더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 바로 그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다. 극중에서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된 대사 중 하나는 평범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고고한 일인자 승조는 타인에게는 좀처럼 관심이 없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꼴통이지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만은 탁월한 하니다. 그녀는 승조의 닫힌 방문을 자꾸만 두드리며 그를 바깥세상으로 끌어낸다. 수시시험 전날, 대학에 가지 않겠다며 방에 틀어박힌 승조의 잠긴 방문, 그 닫힌 마음 앞에서 하니는 말한다. “문 좀 열어봐. 넌 뭐든지 할 수 있잖아. 좋은 머리 사람들 위해서 써야지. 가진 게 많은 사람은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 난 나누고 싶어도 가진 게 없어서 못하니까…” 그 말에 끝내 승조의 마음이 열린다.

잘못 끼운 첫 단추, 아직 바로잡을 가능성은 있다
극 중반부로 접어들며 강화된,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계 맺기라는 성장의 관점은 주변 캐릭터들에게도 차츰 적용된다. 가령 하니에 대한 준구(이태성)의 짝사랑은 드라마 초반에는 과장된 코믹적 요소로 사용됐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승조에 대한 하니의 짝사랑과 동일한 무게의 진정성을 획득한다. 민아(윤승아)와 주리(홍윤화) 역시 원작보다 더 짙은 유대감으로 하니와 함께 나란히 성장해간다. 6회에서 쓸모없게 된 문제집을 시원하게 던져버린 세 친구의 뮤지컬 장면이 초반의 뮤지컬 신들과 달리 극 안에 잘 녹아들어간 것은, 이야기가 그만큼 안정되고 있다는 또 다른 증명 사례다. 7회에서 하니가 말했다. “두 사람이 서로 동시에 좋아하는 건 거의 기적인 거 같아. 언젠간 그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날까?” 이 말을 에도 적용해보면 성장과 로맨스를 황금 비율로 조율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올해는 MBC 만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비록 ‘첫 단추는 잘 못 끼웠지만’, 느리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하니 캐릭터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글 김선영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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