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의 10 Voice] <성균관 스캔들>, 학원물의 새로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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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합격도 불합격도 아니다. 이 아비도 그렇다. 먼저 조정에 출사한 선진으로서 이 아비의 눈에도 너는 아직 합격도 불합격도 아니다.” 주인공 이선준(믹키유천)의 아버지 이정무(김갑수)의 말처럼 KBS 의 성균관 유생들은 그렇게 유예의 시간을 산다. 그들은 아직 현실 정치에서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지만 언젠가는 그럴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한다. 유예되었지만 결코 정체된 것은 아닌 시간. 퓨전 사극이자 남장여자와 보수적 남자의 로맨스로서 은 여러 흥미로운 지점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학원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학교, 노스탤지어와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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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과거 대부분의 학원물은 그런 유예의 시간을 그려냈다. MBC 와 가 그랬고, KBS 시리즈가 그랬다. 이들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아직 먹고 사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사회와는 분리된 학교라는 공간에서 짝사랑도 하고, 연애도 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확인하고, 서클 활동도 한다. 물론 일진과 왕따로 상징되는 학원 폭력의 문제(), 다가오는 입시에 따른 행복한 시간의 균열()처럼 현실적이고 동시대적인 문제들이 포함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 드라마는 알고 보면 따뜻한 선생님과 알고 보면 좋은 놈인 악동들의 조건 없는 인간적 유대를 그려낸다. 말하자면 그들의 유예기간은 사회화를 위한 인큐베이터라기보다는 그 시기에 가능한 몇몇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내는 무균질 공간에 가깝다. 이러한 측면이 현실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퇴행적이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들 학원물은 입시사관학교가 되어가는 현실의 학교가 잃어가고 있는 가치들과 기억에 대한 일종의 노스탤지어였다. 한동안 뜸했던 학원물의 전통이 시험지 유출 사건을 중심에 둔 KBS 와 입시 자체를 플롯의 동력으로 장착한 KBS 으로 이어진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우정, 사랑, 신념이 아닌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테크닉이 되는 사회에서, 스스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반대해 촛불을 든 학생에 대해 국가 권력이 소환 조사를 벌이는 사회에서, 노스탤지어와 현실의 괴리는 견딜 수 없는 단계로 벌어진다. 가 그러한 현실 속에서 아직 과거의 가치를 믿는 아이들의 고민과 균열을 드러냈다면, 은 그러한 경쟁 구도를 아예 긍정적으로 내화한다. 즉 제대로 된 인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학교의 당위성을 포기하진 않지만, 그것을 현실 차원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의 논리다. 그 주장에 일견 타당한 점은 있지만 결국 이러한 경쟁 구도 안에서 어떻게 인격의 수양이 가능한지, 경쟁의 논리를 체화한 사람이 그 너머의 비전을 어떻게 제시할지에 대해서 이 드라마는 여전히 침묵한다.

성과 제일주의 너머로 발을 내딛다
[위근우의 10 Voice] <성균관 스캔들>, 학원물의 새로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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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로서의 이 흥미로운 건 이 지점이다. 퓨전 사극인 이 드라마에서 성균관이라는 공간은 현실의 학교를 재현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이 공간에서 배우는 내용 자체가 인성을 가꾸는 것이란 거다. 즉 이곳에서는 공부와 사회화가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선배들의 혹독한 신고식을 비롯해 한 줌 권력을 이용한 불합리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김윤희(박민영)가 진상한 개떡을 땅에 내팽개친 선배들을 향해 이선준이 “이는 음식이 아닙니다. 언젠가 선진께서 출사해 돌봐야할 백성의 고혈입니다. 그러니 드십시오. (떨어진 개떡 한 입 먹으며) 양반의 체면은 버렸습니다. 허나 사람의 도리는 버리지 않았습니다”라고 일갈할 수 있는 건, 그리고 그 때문에 선배들이 개떡을 한 입씩 먹는 건, 그들이 그곳에서 배워야 할 것이 결국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메커니즘이 완벽하게 작동할 수는 없겠지만 유생 생활 이후 관직에 들어서는 것은 인격의 완성과 권력의 획득을 가장 행복하게 결합한 것이라 하겠다. 때문에 김윤희에게 “배고픈 백성들에게 밥이 되는 정치를 원한다 했소? 허면 정정당당하게 출세를 하시오”라 말하는 이선준의 모습은 “억울하면 천하대에 가서 성공하라”는 의 강석호(김수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당위성을 얻는다.

다시 말해 과거의 학원물이 청춘의 아름다운 순간을 환기시키는데 만족하는 감상적인 노스탤지어였다면, 은 배움과 성장, 성공과 성숙을 하나로 묶어내며 성과 제일주의 논리 너머를 제시한다. 물론 이제 막 4회까지 온 이 드라마가 앞으로 성균관 유생들의 유예의 시간, 성장의 시간을 어떻게 그려낼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다만 “지혜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준 세상은 사라지고 없다. 스승이란 이렇게 쓰잘데기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게 되어있다”라고 말하는 스승 정약용(안내상)과 호된 신방례의 이유에 대해 “너처럼 귀한 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여본 적 없는 뻣뻣하기 그지없는 놈들, 그런 놈들 기 좀 꺾어놓으려고 생긴 거거든”이라 말해주는 구용하(송중기)와 당쟁 싸움의 폐단에 치를 떠는 문재신(유아인), “무엇이 참인지,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학문이, 진리는 무엇인지 다 너무 너무 알고 싶었소”라 말하는 김윤희, 그리고 공맹의 도리를 굳게 지키는 깐깐한 원칙주의자 이선준이 만들어 갈 성균관의 나날들과, 그들의 미래, 그리고 그들이 만들 조선의 모습은 여전히 궁금하고 설렌다. 하여, 앞서 인용한 부분 바로 뒤에 등장한 이정무의 대사로 이들 유생과 드라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겠다. “허나, 기꺼운 마음으로 지켜보마.”

글. 위근우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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