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서 중식(유준상)은 후배(김강우)와 그의 추종자들의 모임에서 피아노 즉흥 연주를 들려준다. 그것은 배우 유준상이 정말 그 자리에서 직접 친 즉흥곡이었다. 그리고 유준상은 를 찍은 경험에 대해 말한다. “감독님은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정확하게 얘기해줘요. 그게 연출자로 좋은 거 같아요. 배우는 그 정확한 디렉션을 따라 연출자를 대신해 움직여주는 거죠.”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오케이가 난 중식의 즉흥 연주는 홍상수 감독의 머릿속에 있던 것의 발현일까, 배우 유준상이 만들어낸 즉흥적인 연기일까. 현학적인 말장난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애드리브 안 했는데 남들이 애드리브 같다고 하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요. 그만큼 즉흥적인 느낌이 들었다는 거고 살아있었다는 거니까”라고 말하는 그의 연기는 그처럼 즉흥과 계산의 경계를 지우며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홍상수 감독의 와 , 강우석 감독의 , 그리고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과 장르 안에서 보여준 누구보다도 자연스러운 연기와 “이미 연출자가 다 만들어줬는데 내가 뭘 더 바라겠는가”라 말하는 계산적 연기관 사이의 간극을 유준상은 자유로이 넘나든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그 경계의 이분법 자체를 지워버린다.

유준상, 자신의 스타일 너머로 이동하다
유준상│유준상의 진화론
유준상│유준상의 진화론
사실 한동안 드라마와 영화에서 만나던 유준상은 자신만이 잘할 수 있는 연기를 잘 골라 하는 배우로 보였다. 스스로 최고의 히트작이라 평가하는 MBC 에서 조금은 마초적이되 결국 사랑 때문에 자신의 보수적 스타일을 고쳐가는 강철 역할을 맡았던 그는, 드라마틱하고 강렬하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빈틈도 있고 속물성도 있는,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을 통해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의 희철이 그 촌스러워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도 온갖 능글맞은 말과 함께 유부녀인 친구에게 수작을 걸 때, MBC 의 준호가 신영(명세빈)을 ‘간 보며’ 그 와중에 신영에게 호감을 느끼는 지훈(이현우)에게 찌질한 열등감을 드러낼 때, 유준상의 스타일이라는 것은 비교적 명확해 보였다. 지금 우리가 유준상이라는 배우에게 주목해야 하는 건, 단순히 가 칸에서 상을 타고 가 흥행을 해서가 아니라, 이들 작품을 통해 이미 성공적으로 확립했던 과거 자신의 스타일 너머에서 새롭게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의 지식인 중식은 시인인 후배(김강우)의 작품에 대해 실존주의 운운하며 비판하는 허세 섞인 자의식의 소유자라는 면에서 얼핏 SBS 의 서울대 출신 국어 선생 서상원을 연상케 하지만, 홍상수 감독 영화의 다른 인물들과 달리 속물적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섬세하고 유약하다. 연기는 여전히 자연스럽게 화면 안에 녹아들지만 정부인 연주(예지원)에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중식의 모습은 종종 적절히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수컷의 모습을 담아내던 과거 유준상의 연기와는 확실히 다른 질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마 그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남성적이고 지적인 역할이었을 의 박민욱 검사는 일상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범부와는 다른 영웅적 스타일의 인물이다.

물론 많은 배우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애쓰고, 종종 그것은 연기 변신이라는 말과 함께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낸다. 유준상의 변화가 특별한 건, 배우 스스로의 변신에 대한 욕심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느냐는 포지셔닝의 변화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뮤지컬 을 할 때 어느 날 저 멀리서 나를 보는 듯한 생각이 들었어요. 전체적인 흐름이 있는 건데 여기에만 매달려서 작품과 상관없는 걸 하고 있으면 아무리 웃겨도 작품을 망치는 걸 안 거죠.”

경계와 한계를 지운 지점에서 다시
유준상│유준상의 진화론
유준상│유준상의 진화론
그의 변화가 가장 먼저 가시적으로 드러났던 영화 부터 그가 종종 타이틀롤의 돌파력보다는 전체 배우의 조합이 중요한 작품을 선택하거나, 분량은 많지 않지만 인상적인 조연을 맡은 것은 그래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의 욱환은 근육질의 몸매와 문득 문득 드러내는 야성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작품 전체적으로 범인을 찾는 관객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역할에 충실하고, 의 고 국장은 그리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술자리에서 학생들의 하극상을 논하며 홍상수 감독 특유의 지식인에 대한 자기반영적 냉소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는 딱히 누구를 주인공으로 꼽을 수 없는 영화였고, 의 박민욱은 명백한 조연이다. 언제나 그에게 고향 같은 뮤지컬인 에서도 그는 주인공 잭이나 다니엘이 아닌 앤더슨을 “연출자의 뜻에 따라” 맡았다. 그리고 살인자를 잡는 것과 사랑을 이용하는 것 사이에서 번뇌하며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 앤더슨의 모습처럼, 결과는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말하자면 자의식을 버린 지점에서 배우 유준상은 더욱 눈에 띈다. 이것이 중요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연출자의 디렉션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며 전혀 다른 역할, 전혀 다른 장르를 오가지만 관객이 스크린 혹은 무대를 통해 확인하는 것은 말 잘 듣는 연기 기계가 아닌 생생한 질감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캐릭터다. 말하자면 연출자를 따라야한다는 그의 연기관은 단순한 관념이 아닌, 스스로 백퍼센트를 발휘할 수 있도록 몸 전체에 새겨진 각인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배우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과 연출자를 따르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지 않는다. 그 둘이 그에게는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는 그에 대해 서생의 풍모가 느껴진다고 말한 바 있지만, 이제 그는 뜻하는 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던 공자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작품 안에서 도움이 되는 것을 일치시키는 단계에 이른 듯하다. 이렇게 경계를 지우고, 한계를 지운 지점에서 그는 장르와 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 발걸음은 의 앤더슨의 그것처럼 “목표 없이 그냥 걷는” 것이지만 그것은 절망적인 방황이라기보다는 걸어가는 모든 곳을 자신의 목적지로 만드는 전방위적 진군에 가깝다. 그래서 이제 유준상에 대해 어떤 규정을 내리는 건 더더욱 어려울 것 같다. 그를 규정하는 말은 언제나 그보다 한 발 늦을 테니까.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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