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는 대본 보다 잠들고도 “자는 연기야”라며 우기는 ‘진짜 연기자’ 콘셉트로 그간 별로 인연이 없던 TV 광고까지 찍었던데. (웃음)
성동일 : 종합소득세 낼 때 어떻게 될 진 모르지만 일단 목돈이 들어오니까 광고는 좋다. (웃음) 사실 광고에서 매니저로 나오는 놈이 친동생이고 실제 내 매니저다. 섭외부터 같이 들어왔는데 동생이 안 한다는 걸 “미친놈아, 해라. 돈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우리 집안 형제간에 이만큼 좋은 추억이 어디 있냐”고 설득해서 찍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출연료의 몇 퍼센트는 스태프들 회식비로 쓰려고 한다”
성동일│“흥행 부담 없이, 투박한 연기를 계속 하고 싶다” -2
성동일│“흥행 부담 없이, 투박한 연기를 계속 하고 싶다” -2
그런데 유일하게 한 아침 방송의 고정 패널로 최근까지 6년 동안이나 출연했다. 그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성동일 : 어마어마한 도움이 됐다. 연기는 국영수를 잘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논리적으로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걸 봐야 그게 경험이 되고 표현할 수 있는 건데 아침 토크쇼에는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사연 있는 분들이 많이 나오지 않나. 그런 이야기를 가장 편안하게 들어주려고 노력한 게 연기하면서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사실 배우는 여행도 좀 많이 해야 되고 음식도 여러 가지를 먹어봐야 되고, 연애도 좀 많이 해봐야 된다.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대사를 잘 해요?”라고 물으면 여행을 다니라고 한다. 그런데 어디 가서 술 먹고 다니는 건 유흥이지 여행이 아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느끼는 게 여행이지.

동년배의 배우들 중에서도 유독 사연이 많고 인생 경험이 ‘찐해’보인다. 어린 시절, 학교생활은 어땠나.
성동일 : 가정 사정상 초등학교 3학년 때 붓을 놓았다. (웃음) 아버지 얼굴을 본 적도 없었고 그 때 학교를 처음 다니기 시작했는데 공부는 시기를 놓치면 못 따라가는 거라 일찍 접은 거다. 전교 등수가 학년 전체 학생 수와 같은, 즉 전교 꼴찌였던 적도 있었다. (웃음) 대학에선 기계설계과에 들어갔는데 연극으로 빠졌다. 비록 공부는 놓쳤지만 내가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다 보니 지금 이런 결과를 얻게 된 거고. 그래서 지금 우리 애들이 세 살, 다섯 살인데 유치원도 그냥 집에서 제일 가까운 데로 보낸다. 아파트 5층에 살면서 1층 놀이방에 보내고. 물론 공부를 잘 하면 좋지만 공부로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 0.000001%도 안 되지 않나. 부모는 다들 제 자식이 천재라고 생각한다지만 지금 봐도 내 자식은 천재가 아니다. 일단 너무 잘 삐지기도 하고. (웃음) 내 욕심은 애들에게 여행을 많이 시키고, 걔들이 세상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크는 거다. 우리 어머니가 포장마차 하면서 나를 지켜봐 주셨듯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건 걔의 인생이고 선택이다.

그런 경험에서 배운 것 가운데 연기 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동일 : 배우는 상대방을 알아야 하고, 스태프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싸움이 안 일어난다. 어떤 배우는 자기 예쁘게 나오게 해 달라고 조명 팀한테 반사판 새 걸 갖다 준다. 나는 술을 사 준다. 그럼 조명 팀은 새 반사판을 사서 나한테 대 준다. (웃음) 방법론의 차이인데 나는 후자를 통해 현장을 즐긴다. 배우들은 돈 벌고 얼굴이라도 알려지고 이름도 위쪽에 나가지만 스태프들은 정말 그 적은 돈에 힘들게 일하고 있으니까 출연료의 몇 퍼센트는 스태프들 회식비로 쓰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하면서 우리 집에 안 와 본 사람이 없는데, 어떤 스태프들은 크랭크업하고 나서 우리 집에 일주일도 있다 간다. 내가 다른 촬영가면서 “너 집에 있을 거지? 여보, 쟤 밥 좀 차려줘” 하고. (웃음)

함께 연기했던 배우들과도 친분이 깊은 편인가?
성동일 : 솔직히 말해 배우는 ‘움직이는 떴다방’ 같은 사람들이다. 그 지역 아파트 팔면 거기에 미련 없다. 오늘 수지 쪽 아파트를 팔면 최선을 다해 수지 쪽에 있고, 내일 용인에서 팔면 용인에서 열심히 한다. 하지만 수지 쪽 정리하고 용인에 있다고 해서 수지 사람들 욕을 하지는 않는다. 배우들도, 일이 아니면 자주 못 만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다들 생각하고 있는 거다. 의 (하)정우 같은 경우, (김)지석이나 (김)동욱이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나보다 훨씬 편할 텐데 술자리를 만들면 항상 나를 먼저 부르고 꼭 와서 데려갔다. (장)혁이는 끝나고 사흘 만에 중국 드라마 찍으러 갔는데 한 달쯤 지나서 자정 넘어 문자를 보냈다. “술 한 잔 먹었는데 선배님이 그리워 사무칩니다. 보고 싶어요.” 내가 “애 둘 생각해서 열심히 돈 벌어라” 했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자유가 어딨습니까, 열심히 벌고 한국 넘어가서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라고. 이렇게 서로 진심을 아니까 매일 안 보고 살아도 오해할 필요가 없는 거다.

“재래시장 같은 이야기를 제일 좋아한다”
성동일│“흥행 부담 없이, 투박한 연기를 계속 하고 싶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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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에도 출연할 작품들이 줄지어 있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들인가.
성동일 : 심혜진, 오달수, 신하균 씨하고 한 촬영이 얼마 전 끝났다.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다룬 영화 도 촬영에 들어갔다. 이번엔 진지한 형사 역이라 애드리브 같은 것 없다. 그리고 SBS 와 KBS 에 들어간다. 그래서 얼마 전 곽정환 감독님, 정지훈, 이나영 씨랑 처음 대본 연습을 하고 술을 같이 먹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들이라 오히려 내가 긴장했는데 두 사람 다 그렇게 쿨할 줄 몰랐다. 이나영 씨처럼 예쁜 사람이 “선배님 한 잔 더 드세요” 하는데 아우, 이건 뭐 몇 날 며칠이라도 먹겠더라. (웃음) 영화 의 다케나카 나오토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 배우가 에 나온다니 같이 연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혹시 나 처럼 5백만, 천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을 만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걸 하고 싶나.
성동일 : 내가? 내가 하면 무조건 망한다. (웃음) 원톱으로 시나리오를 몇 개 받기도 했지만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살아가는 이야기, 재래시장 같은 걸 제일 좋아한다. 최고의 스태프들이 모여 만드는 게 영화와 드라마지만 다큐멘터리를 못 따라갈 때가 있다. 다큐멘터리는 걸러지지 않은 건데, 나는 그런 연기,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수기도 필터가 6중, 7중이면 영양소가 하나도 안 남아서 물이 ‘물’이 아니라고 하더라. 나는 그냥 좀 흥행이나 메시지에 대한 부담 없이, 투박스런 연기를 계속 하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배우 성동일의 가치는 무엇인가.
성동일 : 명품관에 가면 여러 가지 백이 있는데 이 백이 잘 나간다고 안 나가는 백을 다 뺄 수는 없지 않나. 이 백이 있으니까 나머지가 사는 거지. 나는 안 나가는 백이라도 여기 있다는 걸로 감사한다. 잘 나가는 배우들, 예를 들어 설경구 씨나 조인성 씨나 다 각자의 색깔이 있지만 그래도 조인성이가 내 역할, 의 천지호는 못 하지 않겠나. (웃음) 그런 식으로 내 색깔을 갖고 있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 훌륭한 루이비통 매장에도 인기 있는 백만 똑같이 쫘악 깔아놓는 건 정신병자인 거고. 그래서 난 이대로 일을 즐기면서 하고 싶다. 그거면 된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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