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는 누가 봐도 이병훈 감독의 사극이다. 미천한 신분의 주인공이 선한 의지와 출중한 능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입지전적인 이야기는 여지없이 미션 클리어 방식으로 진행된다. MBC 부터 시작된 그만의 사극 브랜드는 MBC 으로 절정을 이루었고, SBS 을 기점으로 다소 파워를 잃어가는 듯 했지만 는 25%에 달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병훈 사극의 저력이 확인된 것일까? 그는 2010년, 새롭게 정립된 사극의 기준을 충족 혹은 뛰어넘고 있을까? 김선영, 조지영 TV평론가가 를 따져 보았다. /편집자주

이병훈 감독 작품에는 앞을 보고 바쁘게 달려가는 주인공을 롱숏으로 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거대한 배경 한가운데 왜소한, 그러나 꿋꿋하게 전진하는 인물의 실루엣은 홀로 세계를 지고 달려야 하는 그의 숙명을 상징하는 이병훈 월드의 인장과도 같은 것이다. MBC 에서 어린 동이(김유정)의 첫 등장신도 바로 그 달리기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그녀는 홀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옆 자리의 양민 사내아이와 경주를 벌인다. 이는 천민이자 계집이라는 이중의 굴레를 벗어야 하는 동이(한효주)의 운명을 상징하는 역동적 장면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공교롭게도 이 작품이 지닌 한계를 암시하기도 한다.

‘빛과 그림자’라는 기계적 운명론의 한계
<동이> vs <동이>│너무 쉬운 칙릿 사극은 매력없다
vs <동이>│너무 쉬운 칙릿 사극은 매력없다" />는 전문 분야에서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두는 독립적 주인공을 다뤘던 이병훈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장희빈(이소연)이라는 희대의 캐릭터와의 대결 구도를 통해 주인공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동이와 옥정은 천민 출신에 비상한 재주를 지닌 닮은꼴이다. 우아한 기품과 지혜를 갖췄으며, 동이에게 “너는 내가 본 가장 귀한 아이”라 칭해주는 옥정은 동이의 “꿈이고 빛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전하도 자식도 믿지 않고 오직 저 자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장희빈, 숙종(지진희)과 함께 바둑을 두며 국사를 논하는 장희빈, 인현왕후(박하선)조차 “늘 당당하고 빛나는 자네가 부러웠네”라고 고백하는 장희빈은 얼마나 신선한가. 그러나 의 장희빈 다시 그리기는 딱 거기까지다.

결국 극 초반의 예언대로 동이의 그림자가 될 운명인 옥정은 희빈이 된 뒤부터 비열한 권모술수를 꾀하는 전형적 악녀로 회귀한다. 장희재(김유석)의 계략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눈물 흘리며 갈등하는 장면이 잠시 등장한다 해서 그 갑작스러운 변모가 이해될 수는 없다. “날 보며 눈물을 쏟아낼 네가 아니지”라는 숙종의 경탄 어린 위로를 듣는 초반의 장옥정과 인현왕후를 모함하고 거짓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중반부의 장희빈의 괴리는, 빛인 동이와 그림자인 그녀를 대립시키기 위한 기계적 운명론이 낳은 한계다. 이러한 작위성은 동이 역시 평면적인 절대선 캐릭터에 그치게 하고, 극의 갈등 구도도 식의 궁중암투로 단순화시키는 결과를 만든다.

트렌디 여성사극을 넘어 서려면
동이 캐릭터에서 자기 의지와 욕망과 독립성이 약화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인물이 근본적으로 지닌 신데렐라적 성격 때문이다. 드라마는 이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을 아예 트렌디한 캔디렐라 스토리로 그려내고 있다. 는 이를 테면 칙릿형 사극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이 슈퍼우먼 미실과 알파걸 덕만의 대결을 통해 21세기형 여성 자기계발서사인 칙릿의 요소를 끌어들인 트렌디 여성사극이었다면, 는 그보다 더 본격적이다. 캔디렐라 동이와 숙종과의 멜로는 로맨틱 코미디 공식을 따르고 있고, 동이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에서 ‘귀한 꿈’을 품고 성장하게 되는 과정은 자기 긍정과 계발의 서사를 핵심으로 하는 칙릿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묵직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정치사극의 면모 또한 갖추고 있었던 데 반해, 는 아직까지는 동화 같은 연애 성장담에 머물고 있다. 천민들의 조직인 검계를 주요 소재로 한 도입부가 무색하게 동이의 계급적 장벽은 개인적 차원의 묘사에 그친다. 기획의도대로 동이의 계급인식이 후반부에 가서 사회적으로 확장되고 성장하려면 좀 더 섬세한 역사의식과 진지한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같은 계급에서 출발한 장희빈과의 대결도 그러한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욕망을 단순히 ‘욕심’과 ‘꿈’의 이분법으로 구별하여 진부한 선악 대립으로 그리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의 는 발랄한 칙릿 사극과 식의 궁중 암투 어디 즈음을 달려가고 있다.
글 김선영

MBC 의 동이(한효주)가 장희빈(이소연)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동이는 모든 걸 다 가진 여자이기 때문이다. 동이는 사건의 ‘증험’을 찾는데 귀신이고, 자신을 해하려는 청나라 사신과 일대 일 담판을 벌일 만큼 담대하며, 암기력도 출중할 뿐만 아니라 한 번 물면 절대 놓을 줄 모르는 ‘풍산이’적 끈질김도 겸비하고 있다. 심지어 장악원 시절에는 ‘길 가던 왕의 귀를 사로잡을 만큼’ 뛰어난 해금 실력도 갖췄으니, 동이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르네상스형 인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모로도 감찰부 내 탑 랭킹에 든다. 이쯤 되면 일국의 왕 숙종(지진희)이 동이를 키다리 아저씨처럼 지켜주는 것도 이해된다. 동이는 사상 최강의 감찰 궁녀, ‘슈퍼’ 동이니까 말이다.

역대 최강 슈퍼 히로인의 등장
<동이> vs <동이>│너무 쉬운 칙릿 사극은 매력없다
vs <동이>│너무 쉬운 칙릿 사극은 매력없다" />MBC 에서 허준의 의술이나 MBC 에서 장금이의 절대 미각은 뛰어났다. 하지만 그들도 동이처럼 ‘날 때부터’ 뭐든지 다 잘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동이에게는 유의태나 한상궁 같은 스승도 없고, 그의 멘토 격인 정상궁(김혜선)도 오히려 동이에게 배우는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만능의 슈퍼히로인이 나오는 드라마가 나쁠 건 없다. 하지만 문제는 동이가 드라마 전개를 부자연스럽게 만든다는 데 있다. 동이가 완성형 캐릭터가 되면서 다른 모든 인물들은 동이에 비해 부족한 인물이 된다. 특히 동이가 사건마다 공을 세우는 과정에서 그에게 매번 따라붙는 행운은 작품의 개연성을 해친다. 동이의 수사력 앞에서는 포청의 서종사관(정진영)의 능력도 빛을 잃는다. 남인 음모의 핵심세력인 오윤(최철호)과 장희재(김유석)도 거의 매번 동이의 기지에 무릎 꿇는다. 마치 2D 영화에서 홀로 3D 캐릭터처럼 돌출된 것 같은 이 재주 많은 캔디는 나머지 인물에게 맞춰질 포커스도 남김없이 가져간다. 그사이 기존과는 다른 장희빈을 그려보겠다던 기획의도는 저 멀리 사라졌다.

가 이나 이나 같은 앞선 선배들이 거쳐 간 성공의 길을 답습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그러나 결론이 이미 정해진 이야기에 긴장감을 부여하려면 주인공 외의 다른 인물들에게도 적절한 사연을 부여하고, 그 인물들의 능력이 서로 더해지고 부딪치는 과정이 담긴 공들인 서사가 필요하다. 남인과 서인이 그토록 뿌리 깊게 서로를 증오하는지는 생략된 채 장희재는 24시간 음모만 꾸밀 뿐이고, 남인과 서인을 쥐락펴락했다던 숙종은 아직까지 는 적적하면 동이를 찾아와 허허 웃는 마음 좋은 숙종일 뿐이다.

치트키를 써서 올린 만렙은 의미가 없다
다행히, 아직도 의 갈 길은 꽤 멀다. 장희빈과 인현왕후는 중전 자리를 뺐고 찾는 역사적 라운드를 벌일 것이다. 격동기에 인현왕후 라인을 선택한 동이에게는 시련이 예고될 것이다. 게다가 동이는 장금이가 그러했듯 궁궐에 필사적으로 들어온 이유가 있었다. 그는 제 아비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역사적인 ‘승은’의 타이밍도 잡게 될 것이다. 남은 기간, 꼭 거쳐야 할 사건과 해프닝들이, 동이의 재주에만 기대지 않고, 더 그럴법한 서사 속에서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치트키를 써서 캐릭터 능력치를 ‘만렙’으로 올린 것만큼 재미없는 게임도 없다. 스테이지 클리어는, 생각해보면 꽤 다양한 방법으로 달성될 수도 있다.
글 조지영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조지영(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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