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들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 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고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 이소라, 바람이 분다
이소라는 노래한다. 이 노래를 서바이벌 쇼에서 불러야 하는 시대에도.



고찬용: 이소라의 대학후배인 뮤지션. 이소라가 “방 밖으로 안 나가던 시절”에 전화를 걸어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그 팀이 바로 그룹 낯선 사람들. 이소라는 데뷔 앨범에서 “노래할 수 있게 해준 찬용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실제로 어린 시절 “노래 할 때 땅만 쳐다”보던 이소라의 성격상 고찬용의 연락이 없었다면 언제 노래하게 됐을지 모를 일. 그는 어린 시절 단 한 번 노래 경연대회에 나갔다 절망하기도 했고,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까지 생각했다. 대학 역시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음악이 아닌 미술을 선택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소라는 “사람을 위로하는 일”로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길 바랐다고. 그리고 낯선 사람들의 공연을 보고 김현철이 전화를 걸어왔다.

김현철: 이소라에게 전화를 걸어 ‘그대 안의 블루’를 부르자고 한 뮤지션. 이소라의 데뷔 앨범을 프로듀싱, 이소라가 “나도 모르던 내 목소리를 찾아준 현철이”라고 했을 만큼 이소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이소라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이어지는 재즈 보컬의 색깔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김현철은 그를 풍부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다듬는 대신 저음에서도 다소 얇고, 그만큼 절절한 감정의 디테일이 잘 살아나도록 디렉팅했다. ‘난 행복해’의 첫 소절은 이소라의 타고난 목소리와 김현철의 디렉팅이 결합한 결과. ‘난 행복해’ 이후 이소라는 저음이, 그리고 노래 첫 소절을 부르는 게 곧 ‘훅’이 될 수 있는 가수가 됐다. 하지만 ‘난 행복해’에서 더욱 주목할 부분은 그런 저음으로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후반부에 끝 간데 없이 질러버리는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조규찬에게는.

조규찬 : 데뷔 앨범에 “내가 노래할 수 있게 해준 찬용이”와 “나도 모르던 내 목소리를 찾아내준 현철이”와 함께 “노래는 절제라는 걸 알게 해준 규찬이”라고 적혀있는 뮤지션. 데뷔앨범에서 조규찬이 작곡한 ‘우연히’를 들어보면 이소라의 보컬은 다른 곡들과 달리 철저하게 한 톤을 유지하면서 더 애절하지도, 더 격렬하지도 않은 선을 지킨다. 그러나 2집 앨범의 ‘화’에서 얼터너티브록을 기반으로 이소라에게 격렬하게 노래 부르게 한 사람도, 그 다음 곡 ‘사랑’에서 기타 한 대만을 놓고 재즈보컬에 충실한 노래를 부르도록 한 사람도 조규찬이었다. R&B부터 하드록까지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면서도 팝 발라드의 감성을 가질 줄 아는 조규찬은 스스로를 “극단으로 왔다 갔다”하는 성격이라 말하고, 혼자 꾹꾹 눌러 담은 슬픔부터 격렬한 분노까지 모든 것을 표현하는 목소리를 가진 이소라와 잘 어울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3집 <슬픔과 분노에 관한>의 ‘분노’ 파트도 함께 작업한다.

김태원: ‘분노’ 파트의 첫 곡 ‘Curse’를 작곡한 그룹 부활의 기타리스트. ‘분노’의 마지막 곡 ‘Praise’는 신대철이 작곡, 1980~90년대 한국을 대표하던 록 기타리스트 두 사람이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 그러나 ‘Curse’는 강렬한 록 사운드보다는 부활의 히트곡들에 가까운 서정성이 중심인 곡이었다. 거친 곡들은 조규만이 작곡한 ‘피해의식’부터 시작된다. 무작정 거친 곡부터 시작하는 대신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방식을 선택한 셈. 이는 이소라 고유의 감수성과 연관된 것으로, ‘난 행복해’를 부르던 때부터 이소라는 가장 나직하고 애잔한 감정부터 가장 격렬한 감정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표현하곤 했다. <슬픔과 분노에 관한>은 그 감정 표현의 폭을 극단적으로 넓힌 앨범이었고, 록은 그 수단의 일부였다. 가장 내밀한 개인적인 슬픈 고백이 세상에 외치는 분노로 변하는 순간. <슬픔과 분노에 관한>은 이소라의 감성을 극단에서 극단으로 펼쳐 보였다. ‘분노’의 곡들이 없었다면 4집 <꽃>의 ‘제발’에서 발라드로 시작된 곡 후반에 록 기타가 깔리면서 감정의 폭이 더욱 커지는 전개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티스트에게 여전히 싱글이 아니라 앨범이 필요한 이유.

박해선: KBS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부터 <이소라의 프로포즈>까지 여러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한 PD. 이소라에게 “가수가 아닌 진행을 해봐라”라고 말하며 MC를 권했다. 방송이 어려워 신인 시절에도 “꼭 나가야할 프로그램”에만 나간 이소라에게 진행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집에서 KBS 스튜디오까지”가는 것도 “최선을 다해야 나오는 걸음”이라고 할 만큼 나가는 것이 어려웠고, 오래 서 있으면 불편하다는 이유로 앉아서 진행을 했다. 진행하는 동안 방송 펑크를 내기도 했고, “갇혀있는 기분”같다고 말할 만큼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중과는 지극히 어울리지 않는 이 개인적인 감수성이 있었기에 이소라는 ‘제발’을 부르다 눈물을 흘렸고, 대중은 그의 진심어린 노래를 느꼈다. 가장 개인적인 삶이 필요하고, 가장 은둔하고 싶은 사람이 대중 앞으로 걸어 나와 노래 부른다. 그리고 그의 슬픔이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대중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개인적인 음악과 태도를 보여주는 아티스트.

박효신: ‘제발’을 부르며 눈물 흘린 또 한 명의 가수. 이소라와 ‘It`s gonna be rolling’을 함께 불렀고, 콘서트 ‘시월에 눈 내리는 마을’과 ‘센티멘털 시티’에 함께 했다. 로맨틱한 성격의 ‘시월에 눈 내리는 마을’과 어둡고 도시적인 분위기의 ‘센티멘털 시티’ 양쪽에서 이소라는 공연의 감성을 만들어내는 중심을 잡아준다. 그만큼 이소라의 노래는 사랑이 얼마나 다양한 감정들로 이뤄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역시 두 공연에서 함께한 성시경은 이소라에 대해 “누나의 목소리에선 사랑으로 얻은 상처, 아픔, 쓸쓸함이 느껴진다. 소라 누나의 노래를 들으면서 상처까지 낫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소라는 실연 후 12일 동안 물만 마시고, 머리카락이 한 웅큼 빠질 만큼 아픈 사랑을 하기도 했고, “그간 내가 맞다고 생각한 사랑의 방식은 다 틀린 것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사랑하면 아프니까 싫고, 아프기 때문에 사랑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랑의 감정에 깊숙이 빠지고, 그 때 얻은 감정들에서 노래가 사람들을 위로한다.

이승환: 가수 이승환이 아닌 작곡가 이승환. ‘바람이 분다’를 작곡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상황이었던 이승환은 그 슬픔을 담아 한시간만에 이 희대의 명곡을 작곡했다. ‘바람이 분다’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는 것은 곡에 대한 결례일 것이다. 다만, 이 노래가 불과 3분 40여초밖에 되지 않다는 것은 기억하자. 이 짧은 시간동안 이소라는 모든 슬픔과, 모든 눈물과, 모든 감정의 정화를 들려준다. 6집 <눈썹 달>에 이르러 이소라는 자신이 가진 그 모든 넓고 섬세한 감정들을 한 곡 안에 자기 뜻대로 응축시키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건 단지 가수가 아니라 앨범 전체를 주관하는 프로듀서 이소라의 완성이기도 하다. 6집과 7집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상당부분 겹친다. 그러나 이소라의 한시기의 완성이라할 만한 6집과 소리를 최대한 비우고,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 하나하나의 질감을 살리며 또 다른 세계로 나간 7집의 음악은 전혀 다르다. 7집은 노래에 어떤 제목도 붙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가 됐다. 아티스트의 태도 자체가 중요한 앨범. 이소라는 그렇게 21세기에도 대중 속에서 가장 개인적인 아티스트로 남길 원했다. 그리고 그에게 노래를 알려준 세 남자 이상의 거장이 됐다.

김영희: MBC <우리들의 일밤>의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의 연출자. 이소라는 ‘바람이 분다’를 부르며 이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렸다. 노래 중간에 예능인들의 멘트를 넣는 무성의한 편집과 서바이벌 쇼라는 틀 안에서 노래하는 이소라를 지켜보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알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이소라의 노래는 그 상황에서도 놀라울 만큼 감동적이다. ‘나는 가수다’ 자체에 대해서는 입장에 따라 수없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힘들어할 법한 무대일지라도 대중 앞에서 노래하기 위해 무대에 선 이소라에게는 정말 할 말이 없다. 그저, 고생하시는군요. 그리고 감사합니다라고 밖엔.

Who is next
이소라가 OST에 참여한 영화 <그대안의 블루>의 주연 안성기와 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에 출연한 류승범과 뮤직비디오 ‘내가 웃는 게 아니야’에 출연한 염정아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와 사진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