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현│21세기 소년
백성현│21세기 소년
성장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의 주인공 견자 이야기다. 자신의 이름을 개새끼에 빗대 놀린다며 울부짖는 그에게 아버지는 싸늘히 말한다. “서자가 개새끼라면 너는 개새끼가 맞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그 너머의 답을 주기 전에 자객 이몽학(차승원)의 칼에 운명을 달리하고, 개새끼처럼 꿈 없이 방황하던 견자는 이빨을 드러낸 세상에게, 자신의 동반자가 된 검객 황정학(황정민)에게 여전히 개새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기고 상처 입는다. 성장은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더 큰 상처를 향해 뛰어드는 과정 안에서 일어난다. “성장을 하려면 아파야 하잖아요.” 영화 속 견자와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로, 하지만 스크린 바깥에서 캐릭터의 옷을 벗은 채 백성현이 말했다. MBC 의 꼬마에서 KBS 과 영화 의 멀쑥한 소년을 거쳐, 현재에 이른 적지 않은 필모그래피 안에서 그에게 아픔을 준 순간이 궁금했던 건 그래서다.

연기 17년차의 자의식 대신 여전한 설렘
백성현│21세기 소년
백성현│21세기 소년
“시트콤 하고 나서 많이 흔들렸던 것 같아요. 좀 무거워 보이는 연기를 고치려 했는데 오히려 자연스러운 연기라는 것에 얽매이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지금 내가 보여주는 게 백성현인지, 캐릭터인지 헷갈리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찍은 MBC 는 유의미한 도전이 될 수 있었지만 얻은 건 혼돈이었고, 잃은 건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토록 혹독한 성인식을 겪은 그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그 시절을 회상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성장통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고 마치 모든 걸 다 아는 양 구는 그 흔한 성장기의 허세는 아니다. KBS 의 황정민의 “진정성 있는 연기”에게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답을 보고, 촬영 때마다 “그 분이 오시는” 황정민과 차승원의 연기에 혀를 내두른 지난 1년을 이야기할 때, 그의 목소리에는 벅찬 떨림이 숨길 수 없이 묻어나왔다. 이준익 감독에 대해 “아우, 잴 수가 없었어요. 모니터에 들어간 순간 제 마음을 모두 읽으셨어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에 연기 17년차가 가질 법한 자의식의 군더더기는 보이지 않는다.

더 좋은 건, 그의 바람처럼 이 성장의 가시적인 한 순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세상에 분노하지만 아직 떼쓰는 사춘기 소년을 벗어나지 못했던 견자가 짧은 시간 안에 어른의 눈빛을 가지고 이몽학과 마주보게 되기까지 백성현은 외형적 스타일의 변화 없이 오직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그 변화를 담아낸다. “이 연령대 배우 중 이 정도로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없었다”고 그를 캐스팅한 이유를 밝힌 이준익 감독의 변이 조금은 과장된 것일지는 몰라도 그가 그 말에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을 만든 건 사실이다.

아직도 느껴지는 성장의 기운
백성현│21세기 소년
백성현│21세기 소년
백성현│21세기 소년
백성현│21세기 소년
그렇게 백성현은 다시, 성장했다. 안 풀리는 연기에 대해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더 큰 상처를 입을 각오를 하고 드라마와 영화에 다시 뛰어들어 이전에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보는 방식으로. “혼자 계속 레포트를 써봤자 나 혼자만 보면 잘 쓴 거 같잖아요. 교수님께 보여줘야 뭐가 틀렸는지 알지.”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기 전, 내가 연기 몇 년 차인데 굳이 학교에서 돈 내고 연기를 배워야 하나, 싶었던 치기 어린 소년은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 다시 말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시간의 관성에 기대서만은 이룰 수 없다. 황정학과 이몽학에게 칼을 휘두르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던 견자처럼 그 역시 언젠가 존경해마지않는 황정민과 차승원 같은 선배들에게 도전할 때가 오지 않을까. 물론 그 과정은 녹록치 않겠지만 배우의 성장판을 자극하는 건 결국 그 수많은 부딪힘과 도전하는 자세다. 스물둘, 이제 소년이란 말이 어색한 나이가 된 그에게서 아직 성장의 기운을 느끼는 건 그래서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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