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사랑스런 여성캐릭터가 있는 드라마
박진희│사랑스런 여성캐릭터가 있는 드라마
한국의 배우 중 40%는 우울증을 안고 산다. 그리고, 그 중 절반은 자살을 위해 약을 모으거나 물품을 사기도 했다. 연기를 할 때는 자신의 배역으로 살아가야 하고, 작품이 끝나면 다시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배우는 조증과 우울증을 자신의 장기처럼 품고 사는 직업이다. 연기 경력 13년, 올해 서른둘의 박진희는 배우의 우울증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그는 월평균 1000만 원 이상을 버는 톱스타부터 100만원 미만의 단역 배우까지 260명의 여배우를 인터뷰했고, 그 결과를 ‘연기자의 스트레스와 우울 및 자살 생각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를 끝내고 를 시작할 때 너무 힘들었어요. 의 우울한 캐릭터에서 빠져나와서 곧바로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자신의 논문처럼, 박진희는 연기를 하는 것의 힘겨움과 싸워 나가는 듯 했다. 그는 영화 에서 암에 걸린 한 여성의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인생을 살았고, 다시 MBC 에서 10살 연하의 남자 민재(김범)와 사랑에 빠지는 이신영이 됐다. 한 편의 작품에서는 “인생을 돌아보는 느낌”을 얻고, 또 다른 작품에서는 “열 살 어린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설득”한다. 그리고, 작품이 끝나면 “이제는 다시 신영이가 돼서 민재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운 직업. 박진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떠나보낸다. 그래야 박진희는 에서 자신에게 고백하는 민재를 보며 “앞으로 내가 겪을 일이 두려운” 30대 여성의 기쁨과 불안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 그가 배우의 우울증을 연구한 것은 어떤 신경안정제도 치유해줄 수 없는 자신의 우울을 바라보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진희가 와 를 순탄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나 같은 전쟁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잖아요. 그걸 보면 그래도 나는 괜찮다는 위안을 받아요”라며 괴롭거나 슬플 때 전쟁영화를 본다고 말했다. 13년 동안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여러 번의 부침을 겪으며, 그는 자신의 우울만큼이나 강하고 긍정적인 마음도 함께 가진 듯 하다. 그래서, 박진희가 자신에게 힘과 위안을 준 사랑스러운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 작품들을 골랐다. 그 역시 세상 모든 여배우들을 응원하며.
박진희│사랑스런 여성캐릭터가 있는 드라마
박진희│사랑스런 여성캐릭터가 있는 드라마
MBC
2010년. 극본 이새인. 연출 손형석
“요즘에 완전 홀릭 돼 있는 드라마에요. 손예진 씨를 너무 좋아해요. 정말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고, 손예진 씨의 찬란한 연기가 좋아요. 그리고 가 30대의 연애에 대해 고민한 작품이었잖아요. 도 그맘때의 여성이 고민할 수 있는 결혼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손예진 씨는 모든 역할을 잘 하는 배우지만, 이번 작품은 제 나이 또래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특히 시청자 입장에서 더 몰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박진희│사랑스런 여성캐릭터가 있는 드라마
박진희│사랑스런 여성캐릭터가 있는 드라마
MBC
2007년. 극본 김인영. 연출 고동선
“정말 사랑스러운 드라마에요.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정말 미친 듯이 본 것 같아요. 전쟁영화하고는 또 다른 위안을 준 작품이었어요. 이게 동네 찌질이들의 이야기잖아요. (웃음) 그리고 메리는 어디서 부모들이 자식 자랑 못하는 딸이고. 원래 삼남매면 부모는 2남매만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닐 것 같은 (웃음) 딸인데, 그런 느낌이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김인영 작가님이 쓴 걸 알고 더 놀라기도 했구요. 매번 다른 스타일의 작품들을 쓰시는 것 같아요.”
박진희│사랑스런 여성캐릭터가 있는 드라마
박진희│사랑스런 여성캐릭터가 있는 드라마
MBC
2008년. 극본 이정아, 장현주. 연출 이윤정.
“커피프린스는 여성들이 꿈꾸는 파라다이스잖아요. 커피숍이 있고 정말 멋진 남자들이 있고, 나는 그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고. 을 보면서 이윤정 감독님이 아직 그 파라다이스를 놓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의 꿈을 작품 속에서 풀어놓네 (웃음) 하면서 봤죠.”
박진희│사랑스런 여성캐릭터가 있는 드라마
박진희│사랑스런 여성캐릭터가 있는 드라마
박진희는 곧 SBS 에 출연할 예정이다. 그가 할 역할은 훗날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성장하는 여성 정연이다. 지금까지 박진희가 연기한 배역보다는 좀 더 강하고 카리스마적인 느낌을 주는 배역이 될 것이라고 한다. 30대 초반을 지나는 그가 새로운 이미지를 원하는 것일까. “지금은 를 한다는 것 말고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이 작품을 끝내고 제가 갑자기 결혼해서 은퇴를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엄마 역할을 할 수도 있잖아요? 어떤 계획을 세우려고 하지는 않아요. 미래를 누가 알 수 있겠어요. 닥쳐서 고민하면 되죠.” 많은 배우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으로 우울증을 겪는다. 하지만, 박진희는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의 알 수 없는 미래를 불안대신 희망과 기대로 바꿔 놓으며.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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