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왜 이렇게 담배를 많이 피웠지?” 공형진의 말대로 인터뷰를 진행한 테이블 위 종이컵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그만큼 그 특유의 유쾌한 웃음이 종종 터지는 가벼운 대화 가운데에서도 그가 말한 이야기들은 농담과는 거리가 먼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20년 동안 초밥을 만들었으면 초밥의 달인이 되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처럼 거의 20년 동안 연기라는 필드 위에서 자의식 있는 배우로서, 또 현장 분위기의 조율자로서 그가 쌓아온 가치관은 장동건이나 현빈 이야기 없이도 충분히 흥미롭고 경청할만한 것이었다. 다음은 왜 그가 MBC ‘무릎 팍 도사’에서 자기 얘기 좀 하자고 했는지 고개를 끄덕일만한 공형진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몇 달 동안 KBS 의 업복이로만 봤는데 이렇게 캐주얼한 의상 입을 걸 보니 새롭다. (웃음)
공형진 : 업복이가 입던 건 옷이 아니었지. (웃음)

거의 8개월 동안 그 옷만 입고 있었는데.
공형진 : 재밌었다. 첫 사극이라 힘든 것도 있었지만 헤어나 메이크업, 의상을 신경 쓰지 않아서 편한 것도 있었다. 더구나 노비니까 지저분하면 지저분할수록 좋고.

“업복이의 마지막 장면 콘티는 내 생각”
공형진│“업복이에게 공형진을 투영시키려 했다” -1
공형진│“업복이에게 공형진을 투영시키려 했다” -1
그런 면에서 업복이의 비주얼적인 면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나.
공형진 : 분명 중요한 부분이고 감독님과 그 때 그 때 많이 상의했지만 그보다는 극중 업복이가 쓰는 강원도 방언과 말투로 그의 정서를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디테일을 이야기했는데 업복이는 당신이 연기한 그 어느 배역보다 미세한 표정 변화가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공형진 : 많은 분들이 이번 연기로 나의 색다른 모습을 경험했다고 하시는데 사실 예전에 연기했던 조금 코믹하고 유쾌한 역할도 그 안에서의 희로애락은 있었다. 또 가 정통 사극이라기보다는 민초의 와일드한 삶을 담은 퓨전 사극이지 않나. 그런 면에서 업복이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에 있어 예전보다 더 큰 부담을 가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았다. 멋있게 보이려하기보다는 그냥 편하게 배우 공형진이 가지고 있는 걸 업복이에 투영시키려 했다. 다행히 시청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봐주셨고.

편하게 연기했다고 했는데 업복이가 궁 안에서 난리를 일으킬 때, 대길이(장혁)나 송태하(오지호) 같은 캐릭터와는 달리 비장하기보다는 좀 무심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더 신선했고.
공형진 : 내가 항상 연기에서 추구하는 것 중 하나는 가장 긴박하고 긴장되는 순간에 어떻게 힘을 빼느냐다. 내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자신에게 닥친 현실이 어떤 극단에 이르면 오히려 모든 걸 놓고 담담해지는 게 가능할 거 같았다. 업복이의 경우 초복이를 짝귀네 산채에 보내고 ‘절친’ 끝봉이의 죽음을 보고 넋두리를 할 때 이미 마음을 굳혔을 거다. 단순한 복수라기보다는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는 걸 알리고자 했던 사람에게 큰 표정의 변화는 없지 않을까. 업복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울분은 자기의 주인 양반을 죽일 때 다 토해냈다고 생각했다.

그 덕에 마지막 회에서 업복이가 관군에게 깔려 궁궐 바깥을 바라보고, 그걸 보는 반짝이 아버지가 주먹을 쥐는 장면이 더 인상적이었다. 만약 거기서 업복이가 비분강개하고 스스로 주먹을 쥐었다면 과했을 거 같은데 그냥 조용히 쳐다보더라.
공형진 : 사실 그 콘티는 내가 만든 거다. 대본에는 그냥 ‘업복이가 잡히고 상노와 눈빛을 마주친다’ 정도의 지문이었는데 내가 땅바닥에 깔려 얼굴을 발로 밟히는 걸 요구했다. 그러면서 상노와 공교롭게 눈이 마주치고 궁궐 문이 닫히며 모든 것이 정리되는 시점에서 업복이의 표현이 어때야 할지 생각했다. 아쉬움과 미련이 없진 않겠지만 더는 회한이 없는 표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소리를 지르고 저항했다는 그런 느낌이 반감됐겠지. 또 과연 업복이가 죽었는지 아닌지도 관객의 몫으로서 남겨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좀 더 담백한 결말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있는 현장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형진│“업복이에게 공형진을 투영시키려 했다” -1
공형진│“업복이에게 공형진을 투영시키려 했다” -1
공형진│“업복이에게 공형진을 투영시키려 했다” -1
공형진│“업복이에게 공형진을 투영시키려 했다” -1
사실 SBS 에서도 심각한 상황에서 힘을 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업복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배우 공형진의 인물 해석의 방법론이라는 게 더 궁금해졌다.
공형진 : 사실 대본을 처음 한 번 정독하고 난 다음에는 잘 보지 않는다. 물론 길과 답은 대본에 있겠지만 우선 내가 맡은 캐릭터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려 하는지 큰 틀로 잡아놓은 다음에 세세한 감정은 그 때 그 때 현장 상황이 닥쳤을 때 몸으로 느끼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리로 아무리 다양한 설정을 하고 계산을 해도 실제 현장의 분위기가 어떨지, 어떤 돌발 변수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일단 현장에 가서 상대 배우와 동선을 맞추고 카메라가 돌아갈 때 몸이 느끼는 느낌이 가장 맞는 거라고 본다. 그렇게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나라는 배우를 투영해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니 어떻게 캐릭터를 설정했느냐고 물으면 나도 설명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머리보단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데, 그것이 본능적인 반사 신경인 건가, 아니면 숙달된 운동선수의 그것처럼 경험에 의한 것인가.
공형진 : 반반인 거 같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본능적인 게 조금 더 큰 거 같다. 평소에도 큰일이 벌어질 땐 차선책이 무엇인지 빨리 판단하는 편이다. 사실 최선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건데 이미 벌어졌으면 빨리 입장을 정하고 매조지하는 게 위기관리 능력 아닌가. 물론 세월이 만들어준 테크닉을 부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0년 전, 혹은 10년 전에 지금 같은 연기를 했다면 분명 지금과 달랐겠지. 사실 솔직히 말해 지금의 나는 이번 업복이 연기에 대해 만족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1, 2년 후에는 만족하지 못할 거라는 거다. 전작들이 다 그랬다. 당시에는 만족스러운 거 같아도 나중에는 내가 왜 그렇게 했나 싶은 감정이 생긴다. 우리가 일상에서도 3년 전에 찍은 사진 보면 되게 어색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최선은 없는 거 같다. 그냥 그 때 그것이 최선일줄 알고 다 쏟아 붓는다는 느낌으로 하는 거지. 그러면 나중에 또 허점이 보이고, 다시 그걸 채우려 노력하는 거고.

그렇게 현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감각이 나 영화 처럼 사람이 많이 모인 작품에서 잘 드러나는 거 같다. 자기 혼자 하는 연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에서 자기 역할을 해내는 느낌이다.
공형진 : 맞다. 에는 업복이도 있지만, 대길이도 있고 송태하, 황철웅(이종혁), 천지호(성동일)도 있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자기 몫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진다. 지금 메시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그 친구 혼자서 잘한다고 해서 꼭 팀이 이기는 건 아니지 않나. 모두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폭발적 시너지를 내는 거고, 그래서 에서나 에서나 난 내 몫을 하려 애를 쓴 거고 그게 다른 사람들과 앙상블을 이뤘던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 바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연기만큼이나 중요했을 거 같다.
공형진 : 사실 한우 값 많이 들었다. (웃음) 스태프들과 있을 때 간식을 많이 사는 편이다. 산꼭대기에서 깐풍기 30인분 조달해서 먹이기도 하고, 가끔 간식을 걸고 일부러 NG를 낼 때도 있다. 내가 이번에 NG내면 아이스크림 산다고 미리 말하고선 NG내고 한턱 쏘고. 행복하게 일하기 위해 모인 현장 아닌가. 나는 내가 있는 현장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현장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났으면 이 정도로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내가 특별히 분위기를 주도했다기보다는 모두가 잘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거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위기, 아니 그래야만 했던 분위기였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