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 먹는 재미는 아이스크림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비슷한 기대를 주며 출발한 세 드라마가 같은 시간에 방송된다는 사실은 드라마 마니아들에게는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아직도 세 드라마의 비등비등한 매력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전우치의 분신술을 사용할 수 없는 평범한 시청자라면 , , 를 항목별로 조목조목 살펴본 다음의 분석표를 참조하자. ‘본방사수’할 작품과 ‘재방사수’할 것, 그리고 IPTV로 후에 챙겨볼 드라마의 순위를 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각 부문별 점수의 합이 반드시 전체의 점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란 모름지기 언니도 검사할 수 없는 시청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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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대성(김갑수)이 모는 자전거 뒷자리에 앉은 송강숙(이미숙)은 덜컹거리는 자전거에 놀라 구대성을 안는다. 하지만 그건 송강숙이 스스로 뒷바퀴를 친 결과였다. 이 한 신으로 는 여우 같은 송강숙과 여자를 모르는 구대성의 캐릭터를 설명하고, 둘의 연애 감정을 압축적으로 담는다. 덕분에 는 한 회 안에 모든 기본 설정을 설명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자전거가 넘어져 두 사람이 낮은 비탈길에 떨어진 뒤 구구한 설명 대신 남아있는 자전거로 여운을 남기는 제작진의 절제도 인상적이다.

: 마혜리(김소연)는 가끔 직장에서 의자 없이 앉은 자세로 일하며 요가 학원에서 배운 자세를 취한다. 마혜리는 그렇게 직장에서도 여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여자고, 그래서 딱딱한 검사 조직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뚜렷한 캐릭터 묘사와 이야기의 갈등 요소를 한 번에 설명한 부분. 다만 명품을 선호하는 여자가 마음먹고 꾸민 검사실이 장식 달린 볼펜이 늘어난 것 정도로 그치는 건 아쉽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마혜리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없었을까.

: 전진호(이민호)는 왜 중요한 건축 모형을 들고 가면서 자기 차를 운전하지 않은 걸까. 하다못해 콜택시라도 불렀어야 하지 않을까. 끝내 전진호는 박개인(손예진)과 한 버스에 타고, “설마…”하는 생각이 무색하게 건축 모형은 예상대로 부서진다. 게다가 이 사건은 전진호가 실수로 박개인의 엉덩이를 만져 성추행범으로 몰리면서 일어났다. 사건은 진부하고, 사건이 갈등을 만드는 대신 갈등을 만들기 위해 사건이 벌어지는 식이다. 드라마에서 중요한 1회 초반에 두 남녀의 캐릭터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한 채 시간만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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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그 언니고, 주인공은 모성을 원하는 대신 탈출하려 하며, 서강숙은 물론 송은조(문근영)도 찰랑거리는 긴 머리처럼 여성적인 모습으로 남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트렌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속성을 파악해서 뒤집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쓸 수 있는 캐릭터. 특히 뚜렷한 선악 대신 모든 여자가 각자의 욕망을 갖고 움직인다는 점이 탁월하다.

: 마혜리는 영화 의 여주인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마혜리가 검찰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관료 조직과 부딪치며 갈등관계가 선명해진다. 외모, 재력, 지능을 모두 가졌지만 조직 생활에 대한 개념은 없는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 역시 기존의 캔디 같은 여주인공의 설정을 배반한다. 다만 시청자들에게 마혜리가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지도록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 올해 예순일곱의 김수현 작가가 게이를 등장시키는 세상이다. 그런데 게이도 아니고 게이로 오인 받는 남자라니. 게다가 게이라는 설정을 빼면 남녀의 섹스 없는 동거, 사고 치는 친구, 무조건 응원해주는 든든한 친구, 바람둥이 전 남자친구 등 진부한 설정들이 다 모였다. MBC 이 나온 게 2005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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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의 첫 장면, 송은조는 요리를 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말아 올렸다. 휘뚜루마뚜루 위태롭게 감아 올려진 머리카락은 홍기훈의 손끝에서 풀어져 휘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송은조의 여성적인 매력은 시청자에게 증명되었고, 이것은 동시에 송은조 역시 그토록 경멸하는 그녀의 어머니와 유사하게 ‘아름다운 여성’의 운명을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하다. 구대성의 집에서 발톱을 숨긴 채 살고 있는 은조의 머리카락이 더 이상 비녀가 아닌 고무줄로 단단히 묶여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 드라마는 빨간 자동차를 추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회색 도시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그 자동차는 엄숙한 검사 임관식에서 도드라지는 하이힐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두 아이템의 주인공인 마혜리는 당연히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화려한 인물이다. 인물의 취향과 분위기, 성격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노골적이지만 효과적인 설정이다.

: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다닌다. 집에서는 주로 후드티를 입고, 안경을 쓴다. 게다가 안경다리 뒤로 후드를 넘겨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즐겨한다. 박개인의 외모와 관련한 설정들은 최대한 못생겨 보이기 위한 안간힘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연애 못하는’ 혹은 ‘눈치 없는’ 여자의 디테일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다. 순전히 취향만을 말해주는 아이템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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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연은 “어린아이처럼, 잘 몰라서 그러는 것”으로 마혜리를 이해한다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석은 다 자란 어른이며, 원리 원칙에 엄격한 검사이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성장을 못한 것 같은 불균형한 마혜리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노래방에서의 열연이나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우는 장면도 인상적이지만, 술잔을 받아들고 자연스럽게 뱉어내는 “왔구나”와 같은 애드리브는 위트 있는 해석이다. 심각했던 전작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놀랍다.

: 착하고 순수한 기존의 이미지를 뒤엎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문근영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장면에서 반항아로 몰아치듯 보여주는 연기는 보는 이를 피로하게 만든다. 사춘기 여학생처럼 시종일관 유사한 무게를 보여주기에는 송은조가 가진 내면의 상처는 훨씬 어둡고 처절한 것으로 보이는 데 말이다. 다만 한정우와 홍기훈을 대하는 태도가 3화에 이르러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내레이션 또한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 장점이 많은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조은지, 왕지혜, 이민호, 김지석 등 대사를 주고받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공격적인 말투를 구사하는데 혼자서만 다른 리듬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배우에게 작위적인 설정을 만들게 하는 것 같다. 술 취한 연기와 그렇지 않은 연기의 구분이 모호했다는 것이 가장 큰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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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호의 존재감은 을 단번에 화제작으로 만들었다. 이민호이기 때문에 전진호가 세련된 남자라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납득된다. 또한 까칠한 남자를 표현하는 데는 일정수준에 오른 이민호의 연기도 전진호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납득시킨다. 하지만 에는 그 이상으로 전진호에 대한 디테일한 캐릭터 묘사는 보이지 않는다. 제작진이 빨리 손을 써야 할 때.

: 천정명의 웃는 모습은 여전히 사람을 끌어당긴다. 하지만 천정명은 그 웃음을 고현정 같은 연상녀가 아니라 모든 걸 포용해줘야 하는 10대 반항아 송은조에게 보여줘야 한다. 자라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밝은 웃음으로 송은조를 토닥일 줄 아는 남자라면 좀 더 속 깊은 표정과 풍부한 감정 표현이 필요하다. 그리고, 에는 아직 주연 남자 배우 중 한 명인 옥택연이 나오지 않았다.

: 초반부터 장난기 넘치는 부드러운 남자와 무뚝뚝하지만 곧은 남자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잡혔다. 하지만 그만큼 의 남성 캐릭터는 전형적이다. 이런 캐릭터들을 소화하려면 상당한 스타성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정수와 박시후의 연기력과 별개로 남성 캐릭터가 밋밋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는 부분. 마혜리와의 신을 통해 캐릭터의 디테일을 살릴 수 있는 묘사가 절실하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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