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파스타>는 내게 처음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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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에게서는 오랫동안 순하고 담백한 맛이 났습니다. 때론 달콤하기까지 했습니다. 눈꼬리와 입 끝이 만나는 기분 좋은 미소와 소리굽쇠를 울린 것처럼 안정적인 진동의 목소리, 배우 이선균 말입니다. 하지만 MBC 를 끝낸 그에게서는 짜고 매운 맛이 납니다. 고소하기도, 얼얼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고약한 마조히즘의 세계로 이끌었던 마성의 ‘ㅅㅞㅂ’, 최현욱의 옷을 입은 이선균은 그 어느 때 보다 감칠맛 나는 연기로 브라운관의 메인 디쉬를 차지해버렸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기호 보다는, 싫어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가진 사람. 좀처럼 비유나 묘사 통해 실체에 다가서는 법이 없었던 이 스트레이트하면서 유머러스한 남자와의 대화는 그렇게 오후 해를 훌쩍 넘겨가며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 100’이 초대한 여섯 번째 손님, 바로 배우 이선균입니다.

100: 얼마 전 영화 로 스페인 라스팔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수상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선균: 아이고, 감사합니다. 상 받은 기념으로 아내랑 맥주 한 잔 마시면서 IPTV로 를 다시 봤어요. 결국 저는 중간에 자고. (웃음) 그런데 그 상을 전해 받기까지가 너무 웃겼어요. 갑자기 박찬옥 감독님께서 뭔가 줄 게 있다고 문자를 보내셨더라고. 그래서 뭐냐? 물었더니 상이라고 해서 아, 지난번에 도빌 영화제 가서 받아오신 상 자랑하시려고 그러시는구나 했어요. 그런데 막상 만나니 그 상이 제 것이라는 거예요. 나 참, 심지어 영화사 대표님도 그 자리에서 소식을 처음 들으신 거죠. 그제서야 부랴부랴 사람들에게 알리고. 갑작스런 상이라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기분은 좋고, 서로 오랜만에 만나기도 해서 기쁘게 다음날 아침까지 술을…. (웃음) 가 끝난 지도 벌써 2주인데 이후 생활 패턴이 3일을 한 사이클로 완성되더라고요. 아침까지 술 먹고, 다음 날은 와이프에게 미안하니까 어리광도 부리고 아기도 보고, 3번째 날은 자숙하는 분위기로 반성하고. (웃음)

“최현욱은 실제의 이선균에 제일 가까운 캐릭터”
이선균│“<파스타>는 내게 처음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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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는 화기애애한 드라마 밖 풍경과는 달리 강행군이었다고 들었어요. 거의 생방송에 가깝게 진행되었다고.
이선균: 와- 죽고 싶었어요. 진짜로. 게다가 연장 결정이 되니까 감사하긴 한데 (공)효진이와 저는 미치는 거죠. 7, 8회부터 거의 생방송에 가까웠고 9부, 10부 찍을 때부터는 일주일 통틀어 11시간 밖에 못 자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빠지는 신이 없고 대사도 워낙 많아서 거의 패닉 상태였어요. 초반에 혼자 8시간씩 찍고 나면 나중엔 누워도 내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정도로. 정말 울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100: 그래도 극이 중, 후반으로 흘러갈수록 시청률뿐 아니라 시청자 반응들도 조금씩 뜨거워져서 그나마 서로 격려하며 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선균: 예, 현장분위기도 많이 좋아졌고 또 힘든 만큼 스태프들이나 배우들끼리 많이 친해지기도 한 것 같아요. 정신없이 찍었는데 막상 방송 보면 더 잘나오는 것도 같아서 기운도 나고. (웃음)

100: ‘버럭균’, ‘지랄균’ 등의 수식이 붙었던 최현욱이란 캐릭터는 사실상 이선균을 가장 대중적으로 알린 MBC 의 ‘키다리 아저씨’ 한성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어요.
이선균: 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선균에 제일 가까운 캐릭터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제가 최현욱만큼 지랄 맞진 않지만. (웃음) 그런데 초반에는 대본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막막했어요. 그림이 안 잡히는 거예요. 처음 작가님이 생각한 최현욱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더 딱딱한 군인 같은 인물이었는데 제가 본 1, 2부의 이 친구는 굉장히 악동같이 느껴졌거든요. 코믹한 대사도 꽤 많은데 그걸 너무 카리스마 있게 소화하기를 기대를 하셔서 좀 혼란스러웠어요. 확실한 건 하나, 이 드라마는 최현욱이, 이선균이 못하면 망한다는 거였죠.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촬영 첫날 아이가 태어났고, 홍상수 감독 영화 촬영이 조금 더 남아있던 상태였고, 요리도 배워야지, 캐릭터도 확실하게 잡힌 게 아니지, 그런데 시간은 없고. 그래서 초반에는 꽤 예민해있었어요. 나중에 들었는데 처음엔 효진이가 저를 되게 무서워했대요. 제가 누구한테 살갑게 말을 거는 성격도 아니고 내가 먼저 다가설 그런 여유도 없었으니까.

100: 사실 공효진과 어떤 궁합을 만들어 낼까, 드라마를 보기 전엔 감이 좀 안 잡히긴 했어요.
이선균: 처음엔 반대가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막상 촬영에 들어갔는데 최현욱이 에너지가 크고 오버하는 표현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내심 공효진이 그간 워낙 센 역할을 많이 해왔으니 제 연기를 다 받아 쳐 줄 거라고 기대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냥 쑥 먹어버리더라고, 뭔가 더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어? 생각보다 이 배우 에너지가 작네?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막상 1, 2부 방송을 보니까 오히려 효진이가 선택한 균형과 호흡이 이 드라마에는 잘 붙고 잘 맞더라고요. 어쩌면 내가 초반에 강박에 가깝게 했던 연기와 달리 이 사람은 쓸데없는 액션이 없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효진이를 보면서 많이 깨우쳤죠. 시기적으로 보면 울진 갔다 온 다녀온 이후부터 함께 연기하는 게 편해졌고. 그때 처음으로 오래 이야기도 하고 술도 먹고. 그 전엔 쉬는 신이 없으니 같이 밥 먹으러 갈 기회도 여유도 없었거든요. 효진이 말에 따르면 자기가 먼저 다가가고 싶어도 내가 늘 단답형으로만 대답해서 불편했다고 하더라고. 진짜 까칠하다고. (웃음)

100: 하지만 극 속에서 보여준 유경(공효진)과의 호흡은 거의 두 사람 연애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만큼 잘 맞던데요. 그 유명한 ‘눈알키스’ 장면은 감독이 보기에 재미있어서 컷도 안 부르고 그냥 놔둔 느낌이 있었어요. 간질간질 설레는 연애의 초반 같은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 달까.
이선균: 촬영이 빡빡하다 보니 우리가 리허설이 없어요. 맞춰 본 게 없으니까 뭐가 나올지 도무지 모르는 거죠. 그 장면도 이게 컷이 나올 때가 됐는데 카메라는 계속 도니까 효진이 얼굴이 점점 빨게 지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상한 호흡들이 막 터져 나오고, 저도 장난기가 발동해서 아예 더 빨게 지라고 눈도 안 깜박거리고 빤히 쳐다보고 있었죠. 하하하.

“ 마지막 신은 대본 보면서도 울었다”
이선균│“<파스타>는 내게 처음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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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지금까지 작품에 비해 내뱉고 보는 최현욱이란 캐릭터는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긴 해요.
이선균: 기존의 캐릭터는 공격적이라기보다는 수비적인 느낌이 컸는데 이 작품은 끝까지 공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예전엔 기사 하나가 나와도 ‘로맨틱’에 방점을 찍으시더니 이제는 ‘까칠’로 굳어지더라고요. (웃음) 의 고든 램지를 보고 참고한 부분도 있었고요. 사실 는 캐스팅이 늦게 되고 출연 결정 후에 바로 촬영을 한 경우라 캐릭터에 대한 상의를 할 시간이 많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감독님이 지갑에서 의 조커 그림을 쓰윽 꺼내 보여주시면서 최현욱은 이랬으면 좋겠다, 약간의 광기 같은 게 느껴지면 좋겠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부터 표현을 내 마음대로 다양하게 해보자, 했죠. 즉흥적인 것도 많이 나왔고.
100: 예를 들자면요?
이선균: 젓가락? 목에도 껴보고 쳐보기도 하고, 그냥 한 건데 나중에 큰 힘이 되었죠. 그 다음부터 감독님이 젓가락을 늘 들고 다니시더라고요. (웃음)

100: 많은 시청자들이 를 보면서 연애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한 듯해요. 물론 큰일 날 일이지만 (웃음) 극중 ‘붕쉐 커플’ 이 저러다 진짜 사귀는 거 아냐? 하는 말도 나왔고.
이선균: 효진이가 쫑파티 때, 자기는 원래 드라마를 하면 연애하는 기분으로, 일종의 바람 피는 기분이 드는데, 나는 아들 사진이나 보여주고 그래서 너무 싫었대요. (웃음) 아기 사진 보여준 건 나름 친근함의 표현이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확실히 결혼을 하고 나니까 그 전에 연기했던 여배우들보다 대하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더라고요.

100: 쉐프란 주방을 장악하는 사람이고, 최현욱이란 역할을 맡은 배우 역시 현장 전체를 장악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선균: 예, 늘 1대 10으로 싸우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주방에 가면 90%가 저 혼자 떠들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게다가 정말 대사가 많은데 내 부분도 잘해야 하지만 다른 배우들을 찍는 순간에도 카메라 밖에서 다 쳐주고 있었거든요. 물론 그건 배우들끼리의 예의기도 하지만 당신들도 내가 연기할 때 그렇게 해주라는 무언의 압력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게 1대 10으로 하니까 나중엔 너무 지치는 거예요. 단 한 컷도 쉬는 시간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것만큼은 끝까지 가져가고 싶더라고.

100: 그래서인지 마지막 회, 주방에 모인 사람들을 흐뭇하게 쳐다보는 현욱의 얼굴 위로 이 고된 작업을 무사히 끝낸 배우 이선균의 얼굴이 겹쳐지더군요.
이선균: 아, 그 장면 대본을 읽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왜 이러지? 피곤해서 그런가? 한 네 번 정도 읽을 때마다 울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촬영 날에는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어요. 20부 주방 신을 방송 당일, 새벽 2시에 찍기 시작했는데 펑크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제발 NG만 나지 마라, 했죠. (웃음)

100: 만인의 연인 같았던 배우가 결혼을 했고 바로 아빠가 되었어요. 사실 개인적인 변화가 로맨스 연기를 앞둔 배우로서는 이미지적으로 꽤나 큰 걸림돌이었거든요.
이선균: 는 저에게 처음 가는 길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전에 가지 않은 길이라 두려움도 많았죠. 그만큼 시행착오도 있고 힘들다는 것도 알았고. 대신 그럭저럭 잘 헤쳐 나간 것 같은 안도감도 있고, 내가 또 다른 길을 하나 뚫었구나, 하는 희열도 있고. 어쨌든 잊지 못할 작품 같아요. 효진이한테 너무 고맙고.

“한 번도 ‘탑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진 적 없었다”
이선균│“<파스타>는 내게 처음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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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이선균은 어떤 소년이었을지 궁금해요.
이선균: 초등학교 때 육상부도 했고 중, 고등학교 때는 농구에 미쳐서 12시간씩 뛰면서 체대 갈까도 고민도 했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애였고,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었어요. 문과를 선택한 것도 그냥 과학이 너무 싫어서였거든요. (웃음) 음악을 좋아해서 막연히 라디오 PD가 되고 싶기도 했고, 광고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공부를 별로 안 해서…. (웃음)

100: 어떤 음악을 좋아했는데요?
이선균: 아무래도 막내다 보니까 또래가 듣는 음악보다 누나, 형들이 듣는 음악을 듣게 되더라고요. 특히 동아기획 뮤지션들의 음악! 초등학교 5학년 때 노래를 시켰는데 아무도 모르는 김현식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죠. 저는 이상하게 그 감성이 그렇게 좋더라고. 어릴 때 부모님은 아래층에 있고 누나랑 형들, 그리고 저는 위층을 썼는데, 거기서 매일 LP로 들국화니 산울림, 김현식, 유재하, 신촌블루스를 들었어요. 또래 애들이 모르는 음악을 듣는다는 우쭐함도 있어서, 이런 음악 아는 친구를 만나면 급 친해지기도 하고. 또 동시에 광고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광고를 하고 싶기도 했고.

100: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하고 2002년 시트콤 , 영화로 보자면 , , , , 등 꽤 오랜 시간을 무명 아닌 무명으로 지냈어요. 그런데 다른 배우들에 비해 야망이나 야심이 있어 보이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긴 시간 계속 연기를 놓지 않게 해준 원동력은 뭐였을까요?
이선균: 아마도 그 야심이나 야망이란 게 없어서였을 거예요. 전 되게 단순했거든요. 그래도 끊이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고 일이 생기니까 항상 감사했어요. 그때도, 지금도 잘하고 싶은 건 연기고, 배우가 되고 싶은 거지 한 번도 ‘탑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진 적 없었거든요. 물론 처음에 시트콤 하면서 이렇게 소모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이후 좋은 단막극을 좋은 분들과 함께 하면서 공부도 많이 했고, 그럭저럭 잘 흘러온 것 같아요.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달성하려고 뛰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100: 처음부터 배우를 꿈꾸었던 것도 아니었다면서요.
이선균: 예, 연극원 가기 전 다녔던 대학에서 연극반을 했는데 그때도 제 역할은 조명부였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배우 선배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대타로 로 첫 무대에 서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게, 참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데 좋더라고요. 처음인데 하나도 떨리지도 않고. 처음으로 기분 좋게 뭔가를 능동적으로 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고 보면 운명 이라는 게 있나 봐요.
100: 운명요?
이선균: 그게 딱 아이를 낳고 보니까 내가 이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해 연극을 시작하게 된 거고, 전혜진을 만나서 7년 동안 헤어지지 않고 결혼을 한 게 아닐까 하는. 만약 선배가 도망을 안 갔다면 저는 배우가 될 생각을 못했을 거고, 2개월 만에 극단을 나간 친구가 아내를 소개시켜주지 않았다면… 뭐 이런 가정을 해보다 보면 결국 운명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아요. 행복도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100: 2008년 의 성공이 스스로에게 준 변화는 꽤 컸을 것 같아요. 대중적인 인기나 인지도가 갑작스럽게 올라왔던 작품인 동시에 한 배우에 대한 기대치를 규정시킨 느낌도 있었고. 그 이후가 선물이기도 하고 독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좀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고.
이선균: 에이, 혼란스럽진 않았어요. (웃음) 솔직히 그런 역할은 처음이었고 작품도 너무 좋았고 그저 곤혹스러웠던 건 을 끝내고 나니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뿔테 안경을 끼기를 원한다는 것 정도?
100: 그러게요. 결국은 그 뿔테를 용기 있게 벗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건데 말이죠.
이선균: 대중들이 너무 원하는 이미지가 확고하다 보니 스스로 변할 때가 됐구나 ‘또라이’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들었죠. 사실 의 영수는 한성에 비하면 훨씬 남자답고 아예 다른 인물인데, 다 똑같다고 말하니까 답답한 느낌도 있었죠. 연기 변신이라는 게 모 아니면 도로 이분화하거나 180도의 다른 걸 원한다는 느낌도 있었고.

“아이는 내가 태어나서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
이선균│“<파스타>는 내게 처음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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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의 중식은 정말 만만하지 않은 캐릭터였을 것 같아요. 뚜렷한 선이 보이지 않는 정말 안개 속에 있는 인물이랄까.
이선균: 힘들었죠. 그런데 재미있었어요. 사실 되게 무겁고 표현이 많은 캐릭터도 아니고. 정말 나 같으면 어디로 도망가든가 절에 들어가든가 했을 것 같은 너무나 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잖아요. 그런데 시나리오는 이상하게 잘 넘어가더라고요. 뭐랄까, 작품 전체의 공기가 느껴지는 거예요. 감독님에 대한 믿음,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죠. 또 좀 더 영화적인 작업을 하고 싶은 갈증이 있었을 때 만난 작품이기도 했고.

100: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홍상수 감독과 작품을 꼭 해보고 싶다고 하시더니 결국 ,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중 ‘첩첩산중’ 에 이어서 최근에 영화까지 함께 하시게 되었잖아요.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이선균: 너무 좋았어요. 어느 날 홍상수 감독이 전화가 와서 만나자 그러시더라고요. 뭘 하자는 건지 어떤 연기를 하자는 건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영화 제목도 뭔지 몰라요. 그저 겨울을 스케치를 하고 싶다, 그 전 영화들이 색깔을 입히는 유화 적인 느낌이 있다면 이 작품은 그저 스케치를 하듯 편한 느낌으로 하고 싶다, 그런데 스태프는 4명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만 나오면 된다. 그런데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그렇게만 말씀하셨어요. 사실 부담이 되긴 했지만 술 먹다가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죠. 이 영화 찍어야 될 것 같다고. 그런데 찍다 보니 너무 재미있더라고. 아침에 대본을 받으면 묘한 긴장감도 들고 말도 꽤 많은 편인데 집중력이 생겨서 대사도 빨리 외워지고, 정유미와 함께 대부분 원 신 원 테이크로 촬영 했는데 두 배우의 호흡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홍상수 감독님은 정말 좋은 액팅 코치 같다는 느낌을 받았구요. 모니터만 봐도 재미있었어요. 기존의 감독님 영화와 완전히 다른, 또 다른 의미로 굉장히 독특한 영화가 나올 것 같아서 기대가 커요.

100: 모든 사람들이 감미롭다고 말하는 목소리이긴 하지만, 그만큼 목소리에 대한 지적도 많은 것 같아요. 혹시 콤플렉스를 느껴본 적도 있어요?
이선균: 그럼요, 있죠. 대학교 때 직접적으로 들은 말은 아니지만 단편 영화 찍다 보면 얘는 목소리가 너무 한정되어 있어서 연기하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스태프들끼리 했다고 하더라고요. 에서도 초반에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말이 많았죠. 3회까지는 혼자 원맨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중에 방송을 보니 저도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리더라고요. 나중에 안건데 저만 혼자 무선마이크를 끼고 했는데 그걸 고려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니까 목소리가 다 뭉개진 거죠. 나중엔 좀 보완이 되었지만. 물론 그걸 핑계 대고 싶다는 건 아니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는 거죠. 그래서 초반에 흔들리고 많이 예민했었어요.

100: 결혼이나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것은 한 인간에게 큰 변화인데, 특히 배우로서 이런 개인 신상의 변화가 가져온 다른 마음가짐이 있으세요?
이선균: 끝나고 좀 늦은 신혼여행을 갔는데 아빠가 된다는 게 뭘까라는 걸 딱 느꼈던 순간이 있었어요. 원래 저희가 여행을 가면 늘 오토바이 타고 동네 탐험하고 그런 걸 좋아했는데, 막상 임신한 와이프가 뒤에 타 있으니까 비포장도로를 가는 게 와락 겁이 나더라고요. 혹시나 넘어질까 무섭기도 하고. 그렇게 터덜터덜 흙 길을 가는데 이게 남편이 되는 건가? 넘어지면 안 되고 조심해야 하는 거 이게 결혼이구나. 다음날 보니까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오토바이 타고 동네를 막 다니고 있더라고요. 내가 미리 길을 파악해놔야겠다는 의도도 있었고, 혼자 타고 있는 게 너무 자유롭기도 했고. (웃음)

100: 예전에 인터뷰에서 “내 꿈은 동남아 같은 데서 카페 하다가 인터넷으로 대본 보내주면 그거 보고 ‘어, 갈게’하는 거”였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여러 환경이 이선균을 그렇게 놔두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선균: 아니에요. 그 점에서는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은 있죠. 사실 결혼은 정답이 없는 거예요. 좋게 느껴질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고. 그런데 아이는 제가 태어나서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옆에서 봤는데 태어나서 그런 눈물을 흘렸던 게 처음이었어요. 눈물이 너무 나는 거예요. 그 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거든요. 친구인 오만석이 딸이 9살인데 그전에는 몰랐다가 요즘에는 그 친구가 대단해 보여요. 그나저나 우리 아들이 이제 4개월 좀 지났는데 TV에서 를 하면 아빠 목소리 들리니까 얼굴을 돌린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안으면 5초안에 울음을 그쳐요. 엄마보다 저를 더 좋아해요. (웃음) 진짜 예뻐요. (아기 사진을 보여주며) 참 사람이 결국 이게 이렇게 되더라고요. 허허.

100: 그래서 최근에 찍은 간장 CF가 그런 아빠 이선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주긴 하지만, 가 끝나자마자 붙어 나올 때면 애인으로서의 판타지를 확 깨버리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웃음)
이선균: (전)혜진이가 제가 출연한 드라마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열심히 본 게 였어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되냐고 만날 물어보고. 그런데 나중엔 시청자로서 너무 빠져서 보니까 드라마 끝나자마자 그 광고 나오는 게 그렇게 싫었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100: 갑자기 현실감이 확 느껴지니까.
이선균: 예. 그래서 스태프들이 너 때문에 우리가 30% 못 넘긴 거라고 놀리곤 했어요. (웃음) 그런데 사실 그 간장 광고는 참 좋아요. 그 회사 사장님이나 직원들 분위기가 워낙 가족적이고 학교 같고 여하튼 독특해요. 최근에 행사하면서도 일하는 느낌이 안 들고 사장님도 너무 좋아요. 가끔 문자도 보내고… 꼭 재계약 하고 싶습니다! (웃음)
이선균│“<파스타>는 내게 처음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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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이제 주방도 마무리 되었고, 오랜만에 좀 쉬어야겠네요.
이선균: 이런 저런 시나리오는 보고 있는데 아직 딱히 확- 마음에 드는 게 있는 건 아니라서 조급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드라마는 1년에 두 편 하는 건 좀 무리일 것 같긴 한데. 모르죠 뭐. 이번엔 운동 좀 하려고요. 사실 1, 2회에 수영장 신이 있었는데 너무 준비가 안되서 빼달라고 했던 아픈 기억이… (웃음) 게다가 결혼해서 안주하고 아저씨처럼 되는 게 배우로서는 참 안 좋을 것 같고, 이대로 방치해 두어선 안 되겠다는 자각이 랄까. 또 예전에는 운동을 하고 몸을 유지하는 것이 배우에게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더 다양한 역할을 하려면 좀 더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딱히 몸을 만들겠다는 의지보다는 나에 대한 실험이랄까? 3개월만이라도 마음잡고 도전해보려고요. 아이고, 그나저나 이제 술도 일주일에 한번 밖에 못 먹겠네. (웃음)

글, 사진. 백은하 on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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