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데니 vs 낙엽 태원
풀잎 데니 vs 낙엽 태원
풀잎 데니
송도 사람 백호라 한다. 아씨를 만난 이후 사람구실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최사과의 고용인들보다 빨리 아씨를 찾고자 하지만, 번번이 한발 늦게 아씨의 행선지에 당도하는 것은 기본이요, 송태하의 한방에 풀썩, 윤지의 한 방에 풀썩 쓰러지는 것을 보면 아직 무사 구실할 깜냥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이슬 맺힌 풀잎처럼 영롱하고 순수한 체력만큼이나 마음이 여려 종종 일을 그르치기까지 한다. “집안일이오!”를 주문처럼 외고 다니더니만 송태하에게 선선히 아씨를 내어 준 것은 금계독립세며 맹호은림세를 동원해도 이길 수 없는 그의 장죽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검을 섞은 것도 인연”이라며 통성명을 청한 끝에 그의 이름을 알아낸 순간 자동으로 ‘일코’ 해제 완료되어 어르신 앞에서까지 그분을 칭송하는 그 마음은 소녀심에 다름 아니며 그렇게 사모하는 분이 연모하는 아씨와 혼인했다는 청천의 벽력은 박남정과 결혼하는 언니 때문에 망연자실한 영심이의 사춘기에 버금가는 감정의 격랑을 불러일으킬 법하다. 그러니 되도록 심한 장난은 삼가자. 풀잎 같은 마음에 남은 상처는 숭례문 개백정의 뜸으로도 치유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낙엽 태원
기타 치는 록커라 한다. 그래서 가능한 마른 몸을 유지하고 되도록이면 긴 생머리를 선호하지만 뒷모습은 핑크빛의 미녀, 앞모습은 그리운 외할머니다. 하지만 평생 운동을 멀리한 덕분에 아가씨도 할머니도 이 남자만큼은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 힘없이 떨어져 바닥에 드러눕는 낙엽처럼 언제나 앉아 쉴 곳을 갈구하는 그의 육신은 “공기 저항 때문에” 달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위태롭다. 그래서 황영조는 그에게 “뛰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진단했고, 이경규는 그를 “살아 있는 짐”이라 했으며 지긋지긋한 그의 관절염은 “쓰지 않아 퇴화된” 것으로 의심 받고 있을 정도다. 키는 고등학생 시절보다 3cm가 줄어들었으며, 콜록거리는 기침은 멈추질 않고, 건강 검진을 앞두고서는 귀가 가능 여부를 걱정해야 한다. 그야말로 움켜쥐면 마른 잎새처럼 바스러질 것 같은 체력의 소유자이지만, 그는 여전히 두 시간의 공연동안 기타를 메고 팔을 휘두를 수 있으며, 동료들의 도움을 벗 삼아 지리산을 종주하는데 성공했다.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할매를 움직이게 하는 법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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