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출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말 그대로 야생의 세계다. 그곳에는 밀림을 호령하는 1인자도 있고, 그의 옆에서 좌장 노릇을 하며 1인자를 적절히 견제하거나 힘을 실어주는 노장들도 있으며, 행동대장 역할을 하는 ‘에이스’도 있다. 남자들의 세계를 이루는 이 적절한 캐릭터들의 분배와 그들 사이의 관계는 남성 중심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기도 하다. <10 아시아>가 밀림의 생태계처럼 자기만의 영역과 생존 방식을 갖고 있는 남자들의 예능계 생태 보고서, ‘수컷 도감’을 준비했다.

유재석 (메뚝라이거)
분류 : 예능목 버라이어티과 MC속 1인자 종

원자력 실험에 오염된 메뚜기가 입속으로 들어가 메뚜기 인간으로 돌연변이한 X-MEN. 그 후 10여 년 동안 스스로 사자로 진화한 뒤 힙합계의 수장 타이거JK와의 퓨전으로 진화의 완성형 메뚝라이거가 됐다. 태생이 메뚜기였던 탓에 평소에는 ‘날유’, ‘날유’하고 울면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짐승들과 놀기 좋아하지만, 밀림이 위기에 처하면 잠재된 라이거의 힘을 보여주며 주변을 쓸어버린다. 그를 비롯한 짐승들을 사육하는 무한 동물원의 조련사 TEO가 그들을 폭우, 얼음산, 뉴욕의 동물원 등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떨어뜨리지만, 그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는 동시에 동료들에게는 “이 모든 게 놀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그들을 안심시키면서 어느새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의 동료들은 즐겁게 놀다보면 어느새 짭짤한 먹이들이 자신의 뱃속에 들어와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예능생태계에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하찮은 사슴을 말 한마디로 감화 시킨 것은 유명한 일화. 또한 메뚜기의 본성을 가진 라이거답게 밀림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아이돌, 연기자, 래퍼 등 다른 생태계의 짐승들과도 넓은 친분을 가져 언제든 자신의 조력자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강호동 (여우돼랑이)
분류 : 예능목 버라이어티과 MC속 1인자 종

여우의 머리와 돼지의 얼굴, 호랑이의 몸을 가진 돌연변이. 혹자는 예능 생태계에서 나올 수 없는 종이라 하여 씨름계의 동물과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몬스터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자신이 이끄는 밀림의 동물들이 지칠 때면 호랑이처럼 “버라이어티 정신!”을 포효하며 기를 북돋고, 흐름이 불리해지면 여우처럼 협상하며, 때론 돼지처럼 우둔한 모습을 가장해 적의 경계심을 풀어놓는다. 다스리는 동물들과 함께 한 겨울에 강을 건너야 할 일이 생겨도 동물들이 자신도 모르게 헤엄을 치게 만들 만큼 슬슬 분위기를 몰아가는 능력은 가히 버라이어티 생태계의 지존을 다툴 만하다. 다루기 어렵다는 야생원숭이가 여우돼랑이에게는 뽀뽀도 마다하지 않는 구애의 몸짓을 보내는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예능계에 단 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1인자종인 메뚝라이거와 함께 예능 생태계의 피라미드 최정점에 올라있다.

이하늘 (늙은 사자)
분류 : 예능목 버라이어티과 래퍼속 노장 종

무서울 것도, 거칠 것도 없었다. 음악계의 세 마리 사자들이 뭉친 DOC는 밀림을 호령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 날카롭던 이빨과 발톱은 무뎌져 갔고, 풍족했던 음악 생태계의 먹이들은 하나 둘씩 사라졌다. 백수의 왕이란 외로운 존재여야 한다고 믿었기에 옆에 암컷 하나 없는 인생을 살다 쓸쓸함에 몸부림치던 중 메뚝라이거의 권유로 예능 생태계에 입문, 지금은 사자들의 집단 천무에서 사자들을 조련하고 있다. 기력은 이미 벡터라이온 김성수와 꽃사자 김준 등에 뒤지지만 적이 그들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온 몸을 다해 전투에 나서 어린 사자 동호마저 각성시키는 롤모델이 되고 있다. 몇 번의 전투에서 적을 공격하다 찢어지고 접질린 팔은 그의 변치 않는 용맹을 증명하는 영광의 상처. 천무의 사자들과 헤어지면 언젠가 음악 생태계로 돌아가기 위해 홀로 발톱을 갈며 다가올 불혹의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 요즘의 꿈은 “먹이가 4분의 1로 줄어도 좋으니 천무의 사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좋겠다”는 것.

김태원 (할매영양)
분류 : 예능목 버라이어티과 로커속 노장 종

메뚝라이거는 유전자 조작에 의한 최강의 돌연변이다. 여우돼랑이는 출처 불명의 몬스터다. 그리고 할매영양은……… 그냥 변종이다. 몸의 조직 안에 근육이 단 1g도 없고, 햇빛을 극도로 싫어하며, 그럼에도 식용은 왕성하지만 입맛은 까다로운 이 생명체의 정체는 아직 학계에도 알려진바 없다. 일설에 따르면 음악 생태계에서 여우돼랑이의 손목도 안 될 다리를 이끌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먹이를 갈구하자 예능 생태계의 늙은 호랑이 이경규가 자신의 줄에 합류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때문에 같은 줄에 있던 약골 사슴 한 마리는 할매영양에 가려 더 이상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도 전해진다. 먹이를 찾으러 나갈 때도 가장 늦게 이동하고, 조금만 장거리 이동을 해도 풀썩풀썩 쓰러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할매영양이 쓰러진 곳에는 엄청난 곡창지대가 생기고, 그가 더위를 피해 땡땡이를 치러간 곳에는 오아시스가 빵빵 터진다. 덕분에 모두가 할매영양을 귀하게 여기며 그의 자리를 마련한다. 음악 생태계에 가면 갑자기 튼튼해지며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든다는 믿기 어려운 소문도 있다.

이승기 (황제호랑이)
분류 : 예능목 버라이어티과 만능속 에이스 종

그가 태어나는 순간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여우돼랑이가 크게 세 번 울었다는 소문 속의 호랑이. 태어나자마자 여우돼랑이가 밀림으로 데려와 다른 짐승들에게 ‘황제’라 소개해 황제 호랑이가 됐다. 여우돼랑이를 비롯한 밀림의 짐승들은 그를 강하게 키우려고 한겨울 얼음물에 빠뜨리고, 섬에 혼자 두고 오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황제호랑이는 놀라운 기지로 이 상황을 헤쳐 나가며 여우돼랑이가 지배하는 밀림의 에이스가 됐다. 호랑이답지 않은 부드러운 얼굴에 숨겨진 집요함과 센스는 가끔 여우돼랑이의 뒷목을 잡게 할 정도. 여우돼랑이가 뭐라고 하든 받아칠 수 있는 감각과 가끔은 다른 짐승들의 원성을 들을지라도 먹이를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고집도 있다. 이런 재능과 트레이닝의 결과로 음악과 연기생태계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는 중. 특히 암컷들을 모아 밀림을 풍성하게 만드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에는 여우돼랑이가 그를 강심장으로 만드는 담력 훈련도 시키고 있다.

김성민 (늑대개)
분류 : 예능목 버라이어티과 만능속 에이스 종

늑대의 야성과 개의 끈기뿐만 아니라 늑대의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개의 귀여움까지 가진 또 하나의 변종. 다른 밀림에서라면 모두의 박수를 받는 투사가 될 수 있었겠지만 늙은 호랑이와 할매영양, 약골사슴 등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며 말은 많은’ 짐승들 사이에서는 은근한 골칫거리다. 하지만 볕 좋은 곳에만 들어오면 무조건 자려고 하는 다른 짐승들에게는 이 늑대개처럼 24시간 내내 혀부터 발가락까지 모든 근육을 쓰는 짐승이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 특히 사냥을 할 때면 가장 앞에 나서 어떻게든 그 날의 할당량을 채우는 것은 툭 치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짐승들이 많은 주변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먹이가 필요하면 외국의 동물들과도 대화하고, 심지어는 새들에게 매달려 공중을 날기까지 하는 행동력은 예능 생태계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심지어 먹이를 요리하는데도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솔로다.

정준하 (쩌리짱)
분류 : 예능목 버라이어티과 MC속 쩌리짱 종

쩌리짱은 쩌리짱이다. 그가 쩌리짱이라는 종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한 때 쩌리짱은 예능 생태계의 무도 동물원을 비롯, 시트콤 생태계의 ‘하이킥 쇼단’에도 들어가 무도 동물원의 짐승들에게 “무도가 좋아요 하이킥이 좋아요?”라는 질시어린 질문을 받을 만큼 잘나갔었다. 하지만 인간의 술을 탄 물을 잘못 마셔 주사를 심하게 부린 뒤 아무 말도 못하는 바보형 ‘쩌리’로 변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무도의 다른 짐승들이 먹이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사이 두 세 박자 느린 감각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그의 주사 사건과 별개로 안타까워 보였을 정도. 답답한 마음에 자신이 1인자 노릇을 할 수 있는 ‘쩌리’들과 먹이 원정대를 꾸려 바깥으로 나갈 때는 금세 달라진 모습을 보이니 그것 또한 미스터리. 그러나 그가 다른 밀림으로 떠나는 것을 만류한 메뚝라이거의 정성과 자신이 ‘1인자’는 못 되도 ‘쩌리’들의 짱은 될 수 있음을 자각시켜준 하찮은 사슴의 도움으로 ‘쩌리짱’으로 각성, “뭐 그냥 이렇게 살아요. 나는 마음에 들어요”의 정신대로 살면서 비슷한 처지의 짐승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쩌리짱이 1인자가 될 가능성은 여우돼랑이가 무도 동물원에 들어올 가능성만큼이나 적지만, 그래도 무슨 상관인가. 별 일 없이 살며 고기나 뜯어 먹겠다는데.

김C (매의 눈을 가진 흑표범)
분류 : 예능목 버라이어티과 로커속 알 수 없는 종

밀림 세계의 이단적인 짐승. 사자들의 집단 천무를 이끄니 1인자 종에 속할 법 하지만, 여우돼랑이와 함께 있을 때는 그의 지시에 따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제호랑이처럼 여우돼랑이가 키우는 것도 아니고, 야생원숭이처럼 여우돼랑이를 추종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언제든지 다른 밀림으로 훌쩍 떠날 것 같은 ‘야생’ 그 자체의 분위기를 풍기고, 반대로 여우돼랑이나 천무의 사자들이 중요한 순간마다 그의 조언과 도움을 필요로 한다. 예능 생태계의 사냥 기술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생길 때, 매의 눈 같은 관찰력을 가지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이 흑표범은 단 한 마디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황을 정리한다. 먹이를 먹을 때도 너무 조용해 다른 짐승들의 의아한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일이든 말없이 묵묵히 해내면서 밀림의 야성을 일깨우는 것은 이 흑표범의 특출난 능력. 어찌 보면 예능 생태계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존재일 수도 있지만, 그 같은 존재도 있어야 밀림은 완성된다. 수컷들의 밀림에는 그들의 무리에 섞이지 않는 외로운 짐승 한 마리쯤은 있어야 한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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