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90년대 중반 청소년 드라마로 데뷔한 김소연은 10년 이상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녀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드라마 속의 그녀는 MBC <이브의 모든 것>의 허영미처럼 무서운 집착을 보여주는 서늘한 여인이기도 했고, MBC <엄마야 누나야>의 노승리처럼 털털하면서도 반항적인 소녀이기도 했다. 대부분은 SBS <순풍산부인과>나 SBS <식객>에서의 모습처럼 단정하면서도 똑똑한 모습이었지만 영화 <체인지>의 남학생과 영혼이 뒤바뀌어 엽기적인 행동을 일삼는 은비나, SBS <사랑해 사랑해>에서 자폐증 환자인 요섭(박철)을 졸졸 따라다니는 정신 지체 장애인 순영을 떠올리면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을 간단히 정리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다양한 인물들을 만들어 온 그녀는 최근 ‘전혀 새로운 역할’을 만난 기쁨에 그 어느 때 보다도 들떠 있다. “액션 영화 속의 안젤리나 졸리를 정말 좋아해요. 그냥 보이시한 게 아니라 정말로 와일드하고 차가운 인물이라서 좀 비슷한 분위기가 보여질 것 같아요”라고 소개하는 KBS <아이리스>의 김선화는 살인도 불사하는 북한 첩보조직의 여성 공작원이다. 역할이 특별한 만큼 김소연은 이 드라마가 잠시 있었던 공백기의 심적 후유증과 복귀 후 이어지던 비슷한 역할들로부터 비롯된 자기반성을 일거에 해소시켜 줄 터닝포인트가 되기를 소망한다. 희망과 기대로 가득한 그녀에게 힘든 날 그녀의 마음에 ‘약이 되어준 노래’들을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옥같은 가사로 그녀를 위로해 주었던 노래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급기야 직접 몇 소절을 불러주는 김소연은 확실히 우리가 알던 그녀와는 조금 더 달라진 사람이었다.

1. 러브홀릭스의
“최근에 가장 힘이 되었던 노래에요. 희망을 주는 후렴도 좋지만, 내 속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은 앞부분의 가사도 정말 좋아요. 가사도 꼭 써주세요. 어리석은 세상은 너를 몰라. 후회 속에 감춰진 너를 못 봐…….” 멤버를 재정비한 러브홀릭스의 싱글로 영화 <국가대표>를 통해 사랑받기도 했던 ‘Butterfly’를 소개하며 김소연은 시를 읊듯 가사를 반추했다. 음악에 앞서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에게 노래는 곧 따라서 욀 수 있는 시에 다름 아니다. “작은 언니가 글짓기를 참 잘했거든요. 어릴 때 같이 방을 썼는데, 그때 언니 꿈이 작사가였어요. 그런 감수성을 공유하면서 저도 덩달아 노랫말에 예민해 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팝송보다는 가요를 훨씬 더 많이 들어요. 가사를 이해해야 하니까요. 하하하하.”

2. 럼블 피쉬의
가사가 너무나 와 닿은 나머지 힘을 주는 동시에 우울한 날 들으면 더 서러워진다는 럼블피쉬의 ‘으라차차’는 김소연의 노래방 애창곡이기도 하다. 가사를 음미하기 위해서 한동안은 발라드만 들었던 그녀는 이 노래를 통해서 모던록의 발랄함에 매료되기도 했다. “평소에는 제가 감정을 발산하는 일이 잘 없어요. 그런데 노래방에서 음정을 잘 따라가지도 못하면서 ‘으라차차!’하면서 이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더라구요. 저에게는 마치 힘을 내는 주문 같은 노래라서 촬영 마치고 힘이 없을 때는 매니저에게 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해요. 한동안 일이 없어서 힘들었을 때도 거의 매일 이 노래를 들었어요. 이만하면 저한테는 소중한 친구 같은 노래죠.”

3. S.E.S의
“저는 음악을 주로 집에서 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나가기 전까지 선곡해 놓은 노래들을 반복해서 듣는 편이죠. 대본을 보거나 일을 할 때는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음악을 못 듣거든요. 그래서 아직 아이팟도 없어요. 아, 곧 생일인데 그때 하나 장만할까 싶어요.” 생각보다 솔직한 김소연이 선호하는 가사는 화려한 미사여구로 수식된 것보다는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담백한 문장인 경우가 더 많다. 가사가 좋은 뮤지션으로 그녀가 첫손에 꼽았던 윤상의 ‘달리기’ 역시 음표를 지우고 봐도 너무나 좋은 가사라고. “물론 원곡도 정말로 좋아요. 그렇지만 아침에 기운을 북돋고 싶을 때 주로 노래를 듣기 때문에 이번에는 S.E.S의 ‘달리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원곡이 좋은 조언을 받는 느낌이라면, S.E.S 버전은 친구가 어깨를 툭툭 치면서 힘내라고 말해주는 분위기 아닌가요.”

4. 전람회의
마음에 약이 필요한 것은 일이 어려울 때만은 아니다. 사랑으로 마음이 앓던 날에도 김소연은 노래를 통해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다. “이적의 ‘다행이다’,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도 가사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유희열과 김동률의 가사들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정말로 좋아해요. 그래서 한동안은 토이와 전람회의 노래들만 들었던 시절도 있었어요. 개인적인 사연들이 더해지면서 가사가 진짜 제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김소연이 가장 사랑했던 곡은 전람회가 ‘기억의 습작’ 이후 리스너들에게 그들의 스타일과 실력을 공고히 알린 두 번째 앨범의 수록곡 ‘취중진담’. 담담하지만 솔직하고 섬세한 가사 덕분에 아직도 많은 남성들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5.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Korean Ver.)> O.S.T
가사에 집중하는 그녀답게 최근 김소연이 빠져 있는 노래 중 몇 곡은 뮤지컬의 넘버들이다. 가사가 곧 대사인 뮤지컬에서 노래는 이야기의 한 부분이자 감정들을 담아내는 그릇인 때문이다. <지킬앤하이드>에서 소냐의 목소리에 반해 공연을 몇 번이나 관람했다거나,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친구이기도 한 바다가 부른 ‘새장 속에 갇힌 새’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배우로서 그녀가 공감하는 지점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김소연이 미치도록 반했던 노래는 저음이 인상적인 윤형렬이 부른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였다. 그리고 뮤지컬의 장면을 전해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현장의 열기와 에너지를 이어받은 듯 한층 생생하고 또렷해졌다. “목소리가 막, 절규하는데 정말 감동받았어요. 공연을 보고 나서 집에 돌아왔는데 계속 장면들이 생각나서 하루 온종일 그 노래를 들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감정적으로 더 커진 부분이 있다”

알고 보면, 드물게 출연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낯을 가리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비춰지던 김소연은 누구 못지않게 쾌활하고 꾸밈없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금은 엉뚱하면서도 친근한 김소연의 진짜 모습을 그동안은 그녀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예전엔 몰랐는데, 사진 촬영을 할 때도 음악에 영향을 더 받게 돼요. 아마 감정적으로 더 커진 부분이 있는 게 아닐까요”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 더 여유롭고 편안한 배우로의 변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파악하는 날, 아마도 시청자들은 새롭게 낯이 익는 그녀의 따뜻한 얼굴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비록, 당분간은 킬러가 되어 냉혹하게 뛰고 구르는 모습만 보여주겠지만 말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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