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이라는 작가와 대리모라는 소재, 그 어떤 것이 더 논란을 자아낼까. 현재 MBC에서는 그동안 여러편의 드라마를 통해 수많은 논란을 만들어낸 임성한 작가의 <보석비빔밥>이, SBS에서는 돈을 매개로 생명을 거래하는 ‘대리모’의 이야기를 다룬 <천만번 사랑해>가 방송중이다. 최근 <보석비빔밥>은 철없는 부모를 내쫓는 에피소드를 방송하며 “명랑 홈드라마를 만들겠다”는 기획의도를 가뿐히 넘어섰고, <천만번 사랑해> 역시 대리모, 불륜 등 소재의 자극성과 여자들의 수난기를 캔디렐라 스토리로 포장해 시청률을 높여가고 있다. 이제 방송 7주 차, 두 가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김교석, 김선영 두 TV평론가가 두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봤다./편집자주

임성한이란 거대한 그림자. 주인공은 강북의 개량한옥에 살고 그 상대는 2층집에 사는 재벌가라는 클리셰. 허영이 심한 어머니(한혜숙)는 걸핏하면 가사를 탕진하고, 바람 전과가 화려한 아버지(한진희)는 환갑이 다 된 나이에 밖에서 낳은 늦둥이를 안고 들어온다. 이에 격분한 네 남매는 똘똘 뭉쳐 부모를 쫓아낸다. <보석 비빔밥>의 가족은 그들 말대로 콩가루 집안 아니 신문에 날 집안이다. 외향만 보면 악명 높은 막장 드라마가 서서히 막이 오른다고 할 수도 있겠다.

막장의 새로운 변주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기존 (막장)드라마의 요소는 그대로인데 조금씩 변주하고 있다. 이 부부, 덜 떨어져 보이고 자주 다투지만 알콩달콩 서로를 사랑한다. 자식들도 부모를 내쫓았지만 패륜을 논하기에는 너무 많이 참고 반듯하게 자랐다. 영악한데 그게 밉지가 않다. 둘째 딸인 궁루비(소이현)의 경우 전형적으로 남자 잘 만나서 인생역전을 꿈꾸는 여우이지만 부잣집 남자친구 집안에서 모진 소리를 듣고 울고만 있거나 계략을 펼치지 않는다. 대신 당차게 차고 일어날 줄 안다. 가족을 위해 일단 자신을 희생하는 첫째 궁비취(고나은)도 눈물 많은 가녀린 캔디라 주변에서 알아서 돕는 타입이지만 기존 여주인공 카테고리에 넣기 좀 애매하다. 부모를 내쫓은 것이 불의를 못 참는 그녀의 주동 하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기가 막히게 절묘하다. 가족 간의 싸움뿐이면 지리멸렬한 눈물의 지지고 볶음이 되겠지만 스님이 되겠다고 한국에 온 미국 재벌 호텔가의 아들이자 하버드 출신의 카일(마이클)과 민생시찰을 위해 위장전입한 재벌 후계자 서영국(이태곤)이 그 집 쪽방에 세 들어 살고 있다(물론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등장인물 모두 서로 그물처럼 얽혀 있다). 이 둘은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이웃이 되기도 하다가 결국 백마 탄 왕자가 된다. 특히 사실상 시청자의 대변자라 할 수 있는 넉살좋은 카일은 웃음을 만들어내는 분위기 메이커다. 궁루비와 카일의 만담은 결명자(김영옥)-백조(정혜선) 할머니의 슬랩스틱과 함께 깨알 같은 웃음을 쏟아낸다. 카일 역의 마이클이 보여주는 넉살 연기와 한국인보다 더 반듯한 품행은 어르신들을 탄복시키기에 충분하다.

심각한 상황을 코미디로 변화시키는 또 다른 임성한의 모습

그래서 설정자체가 삼강오륜이 위배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웃기다. 방 안에서 대화로만 한 시퀀스를 25분 이상 이어간 장면은 이 드라마가 웃음과 울음 기쁨과 분노를 얼마나 잘 배합하는지 보여준다. 같이 일하던 PD가 찾아와 행패부리는 장면이나 점집에 쳐들어간 장면, 루비와 카일의 갈등 등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길어지지 않고 웃음으로 넘어가는 호흡이 재빠르다. 이 호흡 때문에 지루함은 저 멀리 몰입은 배가 된다. 울다 웃으면 신체 특정부분에 이상이 생긴다고 하지만 <보석 비빔밥>은 유려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만큼 그 조화가 탁월하다.

이 드라마가 자랑하는 맛깔스런 대사는 웃음뿐만 아니라 메시지에도 잘 드러낸다. 속물스런 가치관을 대화 속에 잘 포개놓았는데 고리타분하지도 않고 솔직해서 막장이라기보다 현실성이 느껴진다. 무조건 효도 대신 현실 이치에 맞는 결단이 내려지고, 자식들과 어쩔 수 없이 함께 살게 된 두 노모는 혼자 사는 게 나쁜 것이 아니었다며 불만을 터트린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장식한 자수성가 스토리도 이젠 낡았다며 요즘 여자들은 판검사든 의사든 개천에서 용 난 ‘개용’은 쳐다도 안 본다고 한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접할 수 없었던 대사들이 적절한 상황과 대화 속에 있다 보니 선정적이긴 하지만 억지스럽기보다 이해가 된다.

<보석비빔밥>은 울음과 웃음, 행복과 어려움이 비빔밥처럼 섞여 있다. 소재는 센듯하나 여느 막장처럼 시도 때도 없는 반전이나 무리수를 둔 인과관계가 없다. 막장이란 수식어에 대한 임성한의 대답일까. 바게트처럼 겉은 딱딱하나 속은 부드럽고 말랑하다. 최근 진행되는 러브라인의 낯간지러움이 만약 또 다른 웃음 포인트라면 그 또한 새로운 재미다.
글 김교석

SBS <천만번 사랑해>는 마치 21세기에 당혹스럽게 불시착한 전래 여성 수난담처럼 보인다. 아버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리모를 선택한 은님(이수경)의 현대판 심청전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불임이라는 이유로 시어머니로부터 “사람 노릇도 못하는” 존재로 취급받는 선영(고은미)의 며느리 수난담과 만나더니 급기야는 같은 아이를 사이에 둔 두 여성의 <미워도 다시 한 번> 식 모성 멜로를 연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여기에 고전 신파 멜로드라마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 한 세훈(류진)의 정부 연희(이시영)의 이야기가 가세한다. 이 주요 여성 인물들의 겹쳐지고 반복되는 수난기의 암울함은 이 드라마가 메인 플롯으로 설정하고 있는 은님과 재벌2세 강호(정겨운)와의 발랄한 캔디렐라 스토리로도 덮어씌워지지 않는다.

가부장제하 가족의 위기와 여성 수난기 재생산

이 여성들의 수난은 근본적으로 가부장제하 가족의 위기에서 발생하고 있다. 은님의 수난은 아버지가 회사의 부도와 함께 급성 간경화로 쓰러지고 온 식구가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가 되면서 본격화된다. 그녀의 대리모 역할로 아버지가 생명을 구하고 집 문제가 해결되자 은님의 가정은 다시 평온한 외양을 되찾게 된다. 선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대리모의 아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그녀에게 이혼을 종용했던 당사자인 시어머니 향숙(이휘향)이 과거에 남편의 외도의 결과인 강호를 받아들였던 과정과 동일하다. 연희의 고통 역시 친부의 죽음과 계부의 폭력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위기와 균열에 처한 가족의 중심에는 하나같이 가부장의 부재 혹은 위기가 있고, 그 위기를 봉합하는 것은 바로 여성들의 수난과 희생이다.

그런데 은님과 선영, 연희는 모두 모성 결핍에 시달린다. 이는 그 위기가 이미 그녀들의 전 세대부터 지속되어 왔다는 징후다. 은님의 고통은 친모의 죽음 뒤 팥쥐 모녀인 애랑(이미영)과 난정(박수진)의 이기심 때문에 가중되고 그녀는 힘들 때마다 외할머니나 엄마의 무덤을 찾는다. 선영은 남편과 이혼한 뒤 자식들을 홀로 키우느라 바빴던 엄마 청자(김청)의 무관심에 상처받고 “엄마처럼 안살아. 무책임하게 이혼하지도,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지도 않을 거야”라며 애증을 드러낸다. 연희 역시 계부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그를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백번 천번 죽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 이러한 양상은 유빈을 사이에 둔 은님과 선영의 갈등에 세훈의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연희의 이야기까지 가세하며 또 다른 모성 드라마로 이어진다. 여성들의 수난담이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것이다.

트렌디한 포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낡은 이야기

그러나 <천만번 사랑해>에서 여성들의 수난보다 더 불편한 점은, 이 드라마가 그러한 소재를 문제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어두움을 희석시키기 위해 ‘캔디렐라 스토리’라는 트렌디한 옷을 입혀 의도적으로 밝고 따뜻한 이야기로 포장하려는 뻔뻔한 태도에 있다. 그것도 ‘천만번’ 되풀이된 클리셰들의 짜깁기를 통해서. 때문에 강호를 만날 때마다 “날 때린 건 네가 처음이야” 클리셰를 열심히 실천하는 전형적 캔디렐라 캐릭터와 신파 멜로의 주인공을 오가며 관습적 사건들에 의해 규정되는 은님은, 시청자들이 그녀의 수난에 깊이 공감하며 문제를 환기하기보다 학습효과에 의해 해피엔딩을 얻어내리라 쉽게 예상하는 기능적 인물에 머물고 만다.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의 초반부는 정통 신파 멜로가 이끌어내는 과잉의 정서로 인한 카타르시스와 정통 캔디렐라 드라마가 줄 수 있는 소원 성취의 만족감, 어느 것 하나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한 채 어정쩡한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글 김선영

글. 김교석 (TV평론가)
글. 김선영 (TV평론가)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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